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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의 정상화란 무엇일까?

by 격암(강국진) 2017. 8. 22.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하다. 급기야는 MBC 직원들의 제작거부가 진행중이고 공범자들이라는 고발 영화가 상영을 시작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로서는 그간 있었던 이 공영방송들의 편파적인 방송행태에 질릴만도 하다. 덕분에 나는 이 방송들을 거의 보지 않는다. 하지만 공영방송을 살려야 한다던가 혹은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나는 그렇게까지 구미가 동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방해나 하지 않을 정도랄까. 솔직히 말해 인정받고 싶으면 외부의 힘으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힘으로 개혁해서 바뀌었으면 한다. 그러지 못할 거면 축소되고 잊혀지는 쪽이 공영방송의 정상화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약간 이야기를 돌려서 종편의 탄생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한국에 종편방송이 생긴다고 할 때 당시의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정확히 지금의 반대였다. 그 사람들로서는 보수 신문들이 공중파 방송으로 진출하는 것이 바로 종편의 탄생이었고 그래서 종편방송의 탄생은 분명히 재앙일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도 지금과 비슷한 태도였다. 종편을 탄생시켜야 한다고 열렬히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종편의 탄생을 격렬하게 막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왜냐면 한국 언론 환경에 있어서 KBS MBC SBS의 독점이 너무 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종편이 탄생되고 나면 공영방송과는 달리 시청률에 목을 매야 하는 그들이 과연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나쁜 역할만 할지 나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로서는 만약 종편이 탄생하여 종전의 조중동 신문이 하던 일을 계속하려고 하면 그것은 조중동을 망하게 하는 재앙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방송과는 달리 종합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하는 것은 훨씬 더 돈이 들기 때문에 시장을 무시하면 망할것이기 때문이다. 즉 종편을 허용하고 그들의 행태가 그대로면 내가 좋아하지 않던 조중동은 더 빨리 망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조중동을 싫어하는 내가 왜 그걸 꼭 반대해야 할까. 사실 더 가능성이 큰 쪽은 그 반대였다. 종편방송은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시장에 순응할 것이고 그때문에 실은 개혁적인 방송이 될 가능성도 크다고 나는 생각했다.


운이 좋아서 였겠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적중했다. 지난 최순실 사태에 이르러 사람들은 종종 말하곤 했다. 종편 그중에서도 JTBC가 없었더라면 도대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 뻔했냐고 말이다. 심지어 티비조선조차도 탄핵정국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반면에 KBS나 MBC는 반시대적이기 한이 없었다. 종편에 반대하고 그런 방송만으로 한국을 채우자는 과거의 주장이 정말 말도 안되게 들릴 정도로 말이다. 정말 종편을 편성안했다면 어쩔뻔했는가. 이건 손석희의 힘이라고? 그말도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손석희를 불러서라도 시청자를 모아야 했던 종편의 입장이다. 결국 그것이 좋은 방송, 대중의 편이 되는 언론을 만든 것이다. 


이런 점은 드라마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3사가 한국 컨텐츠를 독점하다시피하던 시절보다 나는 지금의 한국 방송이 훨씬 좋다. TvN이나 JTBc의 드라마나 예능이 공영방송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내 맘에 든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공영방송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공영방송이 무너졌기 때문에 시청자도 제작인력도 그 바깥쪽으로 눈을 돌렸고 새로운 한국에 걸맞는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요즘에는 공영방송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가끔 혹시나 해서 보면 정말 역시나다. TvN이나 JTbc의 방송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지만 공영방송 드라마는 혈연과 돈을 강조하는 막장드라마 이야기만 줄창 반복한다. 예를 들어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공영방송에서 만들었으면 보나마나 권력자와의 친분과 애정이야기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거를 돌아보면 두가지 주제가 떠오른다. 하나는 정보채널의 독점이고 또하나는 언론이 시청자에게 목을 맬 때 그 언론은 대중을 위한 방송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뒤집으면 언론이 시청자로부터 독립할 때 그리고 정보채널을 독점할 때 그들은 반드시 썩고 대중을 배신하는 방송이 된다는 말이 된다.


그걸 잘보여주는 예가 바로 조중동 신문과 공영방송이었다. 공영방송은 막대한 자산을 가지고 막대한 국가 자원이 투자되며 정보채널을 독점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엘리트로서의 우월의식만 넘쳐났다. 그들은 진짜 대중을 위한 방송이 되지 못했고 나쁜 권력자가 청와대를 차지하자 바로 부패해 버렸다. 공영방송에서의 출세는 반드시 시청률이나 국민의 지지로 이뤄지는게 아니다. 그래서 공영방송이 썩었다. 인맥과 평가하는 상사의 눈에 드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중이 등을 돌리면 금방 망할 위기에 빠지는 작은 방송사와는 다르다. 


신문은 그다지 운영비가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광고주에만 충실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의 신문은 그 안의 컨텐츠를 팔아서 그걸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광고면을 팔아서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메세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존재다. 이것은 그다지 큰 비밀도 아니다. 그래서 신문이 삼성에 굽신거리는거 아닌가. 신문의 이런 속성때문에 조중동 신문은 물론 소위 한경오조차 사람들의 비판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경오도 광고주에게 굽신거리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안받는다고 해도 거저 주겠다는 신문은 컨텐츠를 파는 게 아니라 광고 전단지다. 그런데 한국 신문이 다 그렇지 않은가?


같은 문맥이지만 반대되는 예가 있다. 요즘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들이다. 팟캐스트 방송은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인기만 얻을 수 있다면 홍준표가 나와서 팟캐스트를 운영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인기가 없다면 돈을 투자해서 팟캐스트같은 것을 억지로 운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누구도 듣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돈도 인력도 없는 팟캐스트 기반의 방송들이 우리 시대에서 중요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특별히 능력있고 착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들은 독점방송을 하지 못하고 대중에게 의존하여 방송을 하기에 대중을 위한 방송이 된다. 대중에게 버림받으면 그들은 끝장이 나고 만다. 


이쯤 되면 공영방송의 정상화에 대해 내가 왜 스스로 개혁하라고 주문하고 그럴 수 없다면 오히려 공영방송을 해체하고 그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지 분명해 졌으리라 믿는다. 나는 그렇다고 해서 공영방송의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랏돈을 퍼붓고 거대한 규모로 독점을 실시하고 외부의 힘으로 정상화를 시키는 그런 형태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종편 이전의 시절에 공영방송들이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던 그때를 그리워하면서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옛날의 대단하던 공영방송은 정상이 아니다. 그건 마치 공무원 조직이 삼성이나 현대자동차보다 더 돈을 많이 버는 그런 모습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가. 그것이 반드시 박근혜 정권같은 정신나간 사람들의 집단이 만들어서가 아니다. 누군가가 대중에 대한 공개적 설득없이 내 것만으로 가르치겠다는 태도로 나오는 것이 터무니 없기 때문이다. 


신문 잡지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그래서 종편진출에 신문들이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공중파 방송을 보던 시대도 그리 많이 남은 것은 아니다. 기술의 발달 그리고 노하우의 축적을 통해 미래에는 더 작은 인력이 더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권력과 재벌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것은 정말로 끝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다른 양상으로 바뀔 것이다. 팟캐스트가 그 싹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버가 그 싹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이 먼 미래라고 해도 우리가 10년전쯤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상화라고 생각하면서 역사를 되돌리려고 하는 것은 시대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살아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스스로 살려라. 도저히 안된다면 나와서 새로 만들어라. 남의 힘으로 개혁을 이뤄내기를 바래서는 미래에도 외부의 권력에 의해 흔들리는 언론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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