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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라는 시대적 모순

by 격암(강국진) 2018. 1. 16.

2018.1.16

저는 전문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져서 전문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전문가는 특정분야에 대해서 장기간 공부하거나 경험을 쌓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는 그 특정분야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더 잘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즉 우리가 뭘 잘 모른다고 느낄 때는 그 분야의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합니다. 

 

그런데 이 당연해 보이는 행동도 많은 전제를 깔고 있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전제들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서 사회적인 위기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 행동이야 말로 우리가 흔히 취하는 의사결정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 고질화된다면 당연히 사회의 합리성은 추락하고 우리는 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한다는 의사결정방법이 가진 가장 큰 전제는 이 세상에는 시간에 따라서 변하지 않거나 적어도 천천히 변하는 지식의 분류체계가 존재하며 그 분류체계는 상당히 단순해서 우리는 주어진 문제가 어떤 분야에 관련된 것인지를 쉽게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적분 수학문제를 풀고 싶다면 우리는 수학자를 찾을 것입니다. 김밥을 맛있게 만드는 법을 알고 싶다면 우리는 요리사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그 상황에서 결정을 하는데 어떤 지식이 필요한가를 결정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눠서 정복한다 (divide and conquer)라는 매우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분명 강력한 방법으로 남을 것입니다. 다만 보편적으로 언제나 옳을 수가 없을 뿐입니다. 

 

문제는 이런 접근 방식이 지식의 체계가 매우 매우 커지거나 새로운 상황이 자꾸 생겨서 전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애매한 경우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비트코인의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어떤 분야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지 전문가라는게 존재하기나 하는지 애매합니다. 설사 비트코인을 만든 사람도 사회적 경제적 의미를 따지자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찐빵을 만드는데 있어서 어떻게 찐빵을 만들 것인가를 가지고 요리사들의 의견을 듣는게 아니라 전국민 투표에 의존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잘 모르겠으니 적당히 전문가인 것같은 사람들을 모아다가 의견을 듣는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그 전문가들의 의견을 평등하게 평가해야 할까요 아니면 특정인의 의견에 가중치를 주어야 할까요.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그게 합리적인 일일까요? 우리의 의사결정시스템은 흔들립니다. 

 

전문가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문가를 존중해야 합니다만 전문가란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별거 아닌 사람들입니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그 존재의미가 순식간에 약해지기도 합니다. 이걸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선왕조실록의 전산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해서 전산화를 하자 아주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지식을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지식의 전산화 이전에는 조선시대에서의 코끼리의 삶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하자면 방대한 사료를 뒤져서 관련된 자료를 찾는데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물로 그걸 하기 위한 번역실력같은 것도 필수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몇년을 노력하여 코끼리 자료를 정리해서 논문을 쓰면 그 사람은 조선시대 역사 전문가중의 하나로 취급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코끼리 문제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산화를 하면 키워드 검색으로 조선왕조 실록에 코끼리가 몇번등장하는지 알 수 있고 자료를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코끼리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는 것으로 전문가가 된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역사에 관련된 일만이 아닙니다. 사실 전문가의 일이란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나아가 추상적인 이론을 만드는 일인데 추상적인 이론을 만드는 일은 대개 수학이나 이론물리학의 경우에나 많이 필요할 뿐 대부분의 학문은 데이터를 모으고 그걸 '나름대로' 정리하는데 그칩니다. 자본주의가 번성하는 가운데 과연 소유의 불평등은 더 심화되었을까요 아니면 완화되었을까요? 이게 유명한 토마 피케티라는 경제학자의 책의 주제입니다. 한국번역서는 820페이지나 되는 책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 책이 820페이지가 아니라 그 열배의 두께를 가져도 경제학자의 책은 물리학 이론처럼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일 수가 없습니다. 엄청난 데이터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리일 뿐이죠. 그것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통계 데이터의 누적과 분석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때로 이런 종류의 책을 1초만에 기계가 써내는 시대가 얼마지나지 않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데이터 분석은 점점 기계의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전문가들의 책을 펼치면 예외없이 그 책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메세지에 부합하는 온갖 데이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최근 저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라는 책과 타일러 코웬의 강력한 인간의 시대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들은 그런 좋은 예입니다. 저는 이 책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그 데이터들이 좀 허망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책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전형적인 전문가의 책이라는 것이죠. 세상에는 워낙 데이터들이 많기 때문에 자기의 메세지에 어울리는 예들을 수집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서 그렇지 계속 그런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으로의 기술발전이 눈부실거라는 주장을 하고 싶으면 그런 기술개발들의 예를 계속 나열하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통계를 내는 것이죠. 

 

그런데 만약 구글보다도 더 발전된 인공지능 비서가 나와서 인간의 질문에 답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니까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자료가 권위있는 것인지 찾을 필요 없이 그냥 북한 사람들은 얼마나 가난하지라고 묻거나 뉴튼은 얼마나 부자였지라고 물으면 인공지능이 자료를 검색하고 요약해서 인간에게 보고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것이 가능하면 두가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첫째로 아주 많은 전문가가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누구도 기계가 외우고 있는 수의 책만큼을 외운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구글이 자료를 찾아 내는 것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자료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과거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미 다른 학자가 한 일을 다른 학자가 또하는 일도 흔했죠. 지금은 인기없는 잡지에 실린 논문도 구글이 잘 찾아냅니다. 

 

둘째로 지금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매우 편협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유한해서 결국 아주 제한된 데이터만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견해의 왜곡을 가져옵니다. 전문가일 수록 그 편견은 더 심하기 쉽습니다. 특정분야만 집중해서 읽는 것이 전문가니까요. 턴테이블이 쓰이던 시대의 오디오 전문가에게 새로 나온 카세트 테이프 기술이 어떠냐고 묻거나 CD기술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그 답이 어떨까요? 그 답은 때로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LP판의 음질보다 새 기술이 더 나쁘기 때문에 이런 기술들을 억눌러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오늘날의 전문화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식이 너무 많이 쌓인 결과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더욱 더 어려워졌으며 따라서 전문가가 전문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맹목적으로 한 분야를 파고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상식이 없는 아주 편협한 인간으로 만들게 되기 쉽습니다. 전문가들은 어쩌면 미래를 맞이 하는데 있어서는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보다도 더 준비가 안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미래에 지금의 시대를 미래인들이 돌아본다면 어쩌면 우리의 시대는 전문화의 신화가 무너지던 시대라고 요약될지도 모릅니다. 즉 거대한 객관적인 지식의 시스템을 구축해서 각각의 분야를 전문화한 인력이 담당해서 그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전략이 실패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시대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변한다고 할 때 지금 시대의 패러다임에 가장 중독된 사람들이 바로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문분야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데이터를 동시에 보는 프로그램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서점에 가면 많은 전문가들의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보면 특징이 대개 두껍고 아주 많은 데이터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촘촘하게 자신의 메세지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결과 대중을 위해서 쓴 책들이라는 것이 가장 애매모호하고 읽기 어려운 책이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꺼운 책이 곧 그런 책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는 학문적 훈련을 따르고 있으며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는 표시는 종종 그 사람이 자기 주장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늘어 놓고 있는가에 의존합니다. 내년에 경기가 좋지 않을 것같다라고 말하면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 말뒤에 아주 길게 여러가지 통계며 데이터를 늘어놓으면 전문가입니다. 그 분석이 아주 바보같은 것이라서 사실은 다 의미가 없어도 그렇습니다. 대중은 길게 데이터를 늘어놓으면 뭔가가 증명되었다고 느낍니다. 사실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렇게 데이터를 늘어 놓는 이유는 종종 당신이 만약 데이터를 늘어놓을 수 없다면 전문가가 아니므로 입을 닥치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터넷의 보편화는 언론의 권위를 추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쉽게 정보와 기사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죠.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시대에는 인간처럼 판단하는 기계가 나오기 전에도 전문가의 권위는 추락할 것입니다. 왜냐면 점점 전문가만이 한다던 데이터 분석이 쉬워지기 때문이죠. 지금만 해도 구글검색으로 10년이나 20년전에 비하면 데이터 분석이 아주 쉽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합리적 결정은 어떻게 내려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그 질문의 답이 뭔가하는 것과는 별도로 예전의 방식이 더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지극히 자명해 보입니다. 전문가는 이제 시대의 골치덩어리이자 타도해야 할 낡은 권위로 변해가고 있는 것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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