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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이라는 감옥

한국이라는 감옥 2 : 연공서열

by 격암(강국진) 2018. 2. 5.

미국에 있을 때 내가 참 한국과는 다르다고 느꼈던 일중의 하나가 철학과를 졸업하고 몇년 세계를 여행한 후에 신경과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만났던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한국 사람은 그렇게 살기 힘드니까요. 왜 그렇게 살기 힘드는가.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따져보겠지만 그것은 상당부분 어딜가나 나이와 깃수를 따지는 연공서열이 한국에서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나이 좀 지긋하신 분들은 걸핏하면 너 나이가 얼마냐고 묻는 경우가 생깁니다. 나이를 따져서 한살이라도 어리면 갑자기 그 사람은 '나이도 어린 놈'이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이렇게 까지 나이와 깃수를 많이 따지는 곳은 한국 이외에는 없습니다. 유교문화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도 한국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연공서열을 따지는 것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일관성이나 있으면 다행입니다만 사실 한국에서의 관행이란 일관성도 없는 엉망진창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를 따진다지만 한국에서만 만나이로 안하고 연초에 나이를 일괄적으로 먹는 시스템을 고집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한두달 나이차이 때문에 나이가 다르거나 학년이 달라집니다. 그런데도 학교의 입학년도나 회사의 입사년도를 따져서 꼬박꼬박 형 누나 아니면 선배라는 호칭을 쓰라고 강요당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대학입시에서 재수를 하는 경우나 군대나 취업재수로 취업년도가 달라지는 경우, 심지어 결혼을 한 남자의 나이에 따라서 갑자기 이 중요해만 보이던 이 연공서열이 뒤집어 지기도 합니다. 대학교때는 선배라고 꼬박꼬박 부르라고 하면서 하나님처럼 굴던 사람이 군대다녀오는 동안 취직한 여성은 회사가서는 그 사람의 선배기수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 적폐 청산과정에서 악명을 떨쳤던 우병우가 바로 일찍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대학선배들에게 꼬박꼬박 반말했던 사람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은 연애를 할 때만 해도 언니 언니하면서 따르던 후배를 알고 있었는데 그 후배가 남편의 형과 결혼하면서 손위 동서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존대말을 해줘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번 본적도 없는 친척끼리 촌수따져서 머리 허연 사람이 어린애한테 아저씨뻘이니 뭐니 하면서 대접해 줘야 한다고 따지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한국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연공서열은 악용되기 딱 좋은 애매함과 무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기반으로 사람들 간에 벽을 세우고 상명하복의 질서가 만들어 집니다. 이런 연공서열 질서에 대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할 것입니다. 유교전통에 따른 것이라던가 일제의 권위주의 잔재라고도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지독한 연공서열제는 21세기 현재에는 그저 군사독재 문화가 만들어 내고 유지하고 있는 악습에 불과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건 그냥 군대에서 통하고 군대에서만 통해야 하는 관습을 온 세상에서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상명하복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전쟁이 나면 상관이 돌격하라고 명령할 때 스스로 따져서 죽을지도 몰라도 돌격해야 하는 것이 군인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군인교육과 군대문화의 가장 큰 핵심은 그것입니다. 명령이 내려오면 따지지 말고 살인이던 자살이던 즉각 행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쟁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본질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니까요. 


유교적 관습운운하지만 조선시대에서 가장 유명했던 논쟁인 사단칠정논쟁을 벌였던 이황과 기대승의 편지들을 보면 아들뻘로 나이차이가 나고 사회적 지위도 비교가 안되는 기대승에 대해서 이황이 얼마나 예의바르게 글을 쓰는지 보는 사람이 짜증이 날정도 입니다. 편지를 쓰는데 한참을 인사로 채웁니다. 일제의 잔재운운하지만 적어도 지금 일본에 가보면 일본도 한국식의 연공서열 질서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는 그런게 있지만 한국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이 연공서열의 질서는 한국인의 자유를 빼앗는 감옥이 되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선배 후배로 관계가 달라지면 권한과 책임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에 누구나 전속력으로 빨리 취직하고 빨리 출세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나이가 자신보다 좀 어리다던가, 직급이 한단계 아래라던가, 깃수가 아래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어린애 취급하고 따돌리는 일이 많습니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나이가 몇살 차이나면 껄끄러워합니다. 연공서열질서를 중시하는 한국의 관행이 부자연스러운 일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엠에프 사태같은 것이 터져서 취업 재수생들이 양산되면 이들은 단지 한두해 인생이 늦어지는 것에 멈추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몇년지나면 회사에서 더 젊은 사람들을 뽑으려고 하지 이들을 뽑으려고 하질 않는 겁니다. 취업경쟁이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는 한가지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인생을 천천히 산다던가 혹은 빨리 산다던가 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전력으로 엘리트코스를 달려서 서바이벌 게임을 벌입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없습니다. 심지어 머리가 좋은 경우에도 문제가 됩니다. 한국에서는 연공서열 질서때문에 월반을 하면 나이가 작다는 이유로 제대로 적응하기 힘듭니다. 정해진 코스만 달리기 싫다고 해서 남들과 다르게 살면 한국 사회에 다시 끼어들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것이고 그러니까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야 합니다. 당연히 이런 연공서열의 질서가 만들어 내는 권위주의적 질서는 한국인의 피땀을 착취하는 시스템이 됩니다. 부패가 만들어 지는 이유가 됩니다. 


이것은 여성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선 여성이 출세하는 것에 장벽이 만들어지는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연공질서하에서 상사는 부하직원을 마치 아버지나 형이 되는 것처럼 다루는 문화가 한국에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적 질서와 여성지도자란 충돌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성추행사건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런 성추행이나 성폭행 문제의 본질도 권위주의이며 이런 의미에서 연공서열질서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있고난 후에 그 서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검사를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죠. 이 일만해도 그렇습니다. 이런 성명서는 물론 훌룡한 것입니다. 하지만 왜 그냥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는 검사들이 아니라 동기들의 모임일까요? 서검사보다 하나나 둘 기수가 높거나 낮은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일까요? 검찰안에 존재하는 권위주의가 성추행사건의 진짜 범인인데 해결도 권위주의로 한다면 과연 그것이 해결될까요?


인터넷이 보급될 때 한국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세계 어디나 상당히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광풍이어서 외국에서는 한국을 별세계 취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정부의 정책적 선택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이 컴퓨터 통신시절부터 이 분야에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오랬동안 유럽에서는 이메일 확인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터넷 보급이 늦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연공서열질서뿐만 아니라 정보의 차단을 만들어 내는 많은 장벽들이 한국에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연공서열질서가 기본적으로 없는 공간으로서 사이버공간이 큰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모든 한국인들에게 다 큰 부담이 되었고 지금도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냥 한 개인이 됩니다. 인터넷에 엉터리 정보가 흘러다니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장벽들 때문에 흐르지 않던 정보가 흐를 수도 있는 것이 인터넷 공간입니다. 


인터넷 바깥에서는 같은 사람도 사회적 관계에 따라서 되고 안되는 것이 너무나 많이 바뀌는 것이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는 몇다리 건너서 따지면 다 연결이 되는데도 그 연결고리를 인식하게 되면 서로 비판 못하는 것이 한국 사회입니다. 한국에서 평론가의 의견보다 이름없는 네티즌의 의견에 종종 더 믿음이 가게 되는 이유도 이런 것입니다. 평론가로 이름걸고 이 사람 저 사람 알게 되면 또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대해서 신경쓰기 시작하면 진짜 사심없는 의견이 나오지 않을 것같으니까요. 


우리는 참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해 보이는 인간들이 일단 이름을 얻으면 바보같이 행동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봅니다. 정치인들이 그렇고 티비에 출연하는 전문가나 평론가들이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평범한 상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세상에서 번잡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패거리로 얽혀있는 사람들은 자꾸 자신의 사고를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그런 왜곡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지요. 그래서 기록을 뒤져보면 참으로 일관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왜곡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자기도 자기를 속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제 합리성이란 완전히 존재하질 않게 됩니다. 미친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연공서열 질서에 기반한 이 사회관계는 바로 그런 일을 합니다. 누가 좀 똑똑하다 싶어도 그 사람도 여기저기 초대되어 악수좀 하고 밥좀 먹고 이런 저런 친절을 주고 받으면 바보나 미친 놈, 미친 년이 되는 겁니다. 한국 사람은 똑똑한데 지식인이나 정치인이 유독 바보같은 이유는 상당부분 이때문입니다. 사회적 질서가 이성을 억압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는 이 연공서열 질서의 감옥이 파괴되는 날, 그날이 바로 한국이 진정으로 해방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한국이 합리적인 공동체로 일보전진하는 날입니다. 한국인은 이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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