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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8. 3. 8.

참 광고도 많았던 리틀 포레스트였다.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본 데다가 힐링 영화류에 대해 약간 반감이 생긴 나는 처음에는 리틀 포레스트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기사며 방송을 본 끝에 광고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주 좋다던데? 보려고 마음을 먹자 이번에는 영화를 보려고만 하면 자꾸 아내가 탈이 났다. 인연이 아닌가 했지만 결국 오늘 보게 되었다. 




영화는 만족스러워웠다. 전주에서 아내와 조조영화로 본 리틀 포레스트는 우리 부부에게 멋진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다. 나의 선입견처럼 지겨운 힐링영화가 아니었고 일본 영화보다 오히려 더 좋은 면도 있다. 아무래도 일본영화쪽은 너무 정적이라서 공감이 덜했는데 한국의 힐링 포레스트는 인물이 살아있다. 시골가서 도통한 도인처럼 잘살라는 수준은 아니다. 


이 영화는 도시 생활에 지친 한 젊은 아가씨가 마트도 없는 고향 시골 마을로 내려와서 보내는 1년의 생활을 보여준다. 혹자가 이것을 삼시세끼 영화판이라고 평한 것이 그럴만하다 싶을 정도로 영화는 대부분 계절의 변화속에서 이런 저런 음식들을 만드는 장면들과 그것을 먹고 마시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이 영화는 시골 생활의 아름다움을 선전하는 면이 크다. 사실 과장 광고에 가깝다. 귀농한 사람들이 고생한 이야기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장면들이 많이 나오니까 말이다. 그러나 도시가 좋은가 시골이 좋은가같은 질문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뿐더러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도시 생활만 해야 한다거나 시골 생활만 해야한다는 식으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영화는 도시와 시골중 어디가 좋냐는 질문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생활하는 오늘날 시골에서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도시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해주고, 나아가 우리에게 삶 그 자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도시에서 시골로 돌아간 여자주인공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 도시인의 가난함이다. 도시인이라고 해서 모두 가난하지는 않을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가난함은 반드시 돈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도시인은 종종 어떤 기준으로든 가난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삶이 단조롭다. 그 단조로운 삶의 결과중의 하나가 도시인이 먹는 음식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까, 돈이 드니까 어느새 도시인들은 그저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 정성이 들어가지 않고 싱싱하지 않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생활을 계속한다. 이것을 지적하면서 여자 주인공은 말한다. 자신은 말 그대로 배가 고파서 고향에 돌아왔다고.





도시가 본래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도시에 너무 사람이 몰렸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경쟁도 너무 심하고 공간도 없다. 그러니 음식을 직접 해먹을 여유도 없고 물가는 매우 비싸다. 도시에서 혼자살면서 매끼를 직접 해먹는다면 사먹는 것보다도 돈이 더 든다. 뭐 든지 사야하고 비싸기 때문이다. 도시에만 살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런 도시에서 한적한 시골로 물러나면 삶이란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골은 비전문화되고, 인구밀도가 적으며, 삶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그래서 돈의 가치가 다르고 몸을 움직이면 먹을 것이 생긴다. 시골에는 나물이며 과일이며 농산물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 게다가 가게가 없으니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직접 몸을 움직여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직접 해보기 시작해 보면 그것이 도시의 진수성찬보다 더 훌룡한 음식이 될 수 있다. 주인공은 그래서 최고의 음식이란 바로 직접 해먹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시골의 삶은 단조롭고 도시의 삶은 즐겁고 유쾌한 일로 가득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선입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삶의 다양성, 여유 그리고 문화이다. 사람을 많이 가진 도시는 물론 그런 것들을 많이 가질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도시의 삶도 그 도시가 지나치게 밀집되게 되면 어느 새 시골에 사는 것보다도 다양성이 없고 단조로워 질 수 있다. 그래서 일년 내내 단조롭게 바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자신은 일년에 한번 리조트에 가거나 시골 펜션에 놀러가는 일도 사치스러워 하면서 일년내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시골사람들의 삶을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말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문제는 도시냐 시골이냐가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았을 때 그것이 실제로 다양함과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영화는 시골에 산다고 해도 적어도 오늘날에는 아주 멋진 삶이 가능하지 않냐고 반문한다. 시골의 집은 지저분하다고? 낡은 한옥을 고쳐서 만든 시골집은 도시의 아파트나 원룸들을 부끄럽게 보이게 할 정도로 멋지다. 시골에 사니까 오히려 주거의 질이 훨씬 더 올라갈 수 있다. 이 영화는 그걸 보여준다. 


심심하다고? 그렇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반드시 시골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재미있게 살려면 문화적 소양이 있고, 시골에서 하는 일들에 재미를 느끼면 된다. 노동과 놀이는 종종 구분이 안된다. 심심함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도 그렇다. 


시골에서 음식만 만들어 먹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이 스스로 음식에 대한 지식이 있고 문화적 양식이 있을 때 시골의 삶도 요즘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집을 나서면 멋진 산책할 곳이 있고 더우면 가볼 개울가가 가까이 있으며 무엇보다 지식과 노동을 투자한다면 계절마다 아주 양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게다가 시골의 삶을 견뎌냈을 때 우리는 하나의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바로 고향이다. 도시의 삶은 워낙 흘러다니는 것이 되기 쉬운데다가 사람이 밀집되어 사니까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나고 자란 고향이 별 의미가 없어지기 쉽다. 어떤 동네에서 10년을 살았는데 그 동네에 무슨 맛집이 있는지, 공원이 어떤 것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학교다니거나 출퇴근에 바쁘면 뜻밖에 동네 산책한번 해본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거길 다시 가봐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삶은 지역을 사람과 보다 강하게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기 나름에 따라서 진정한 내 집과 내 동네가 생길 수 있다. 누가 쉽게 뺏아가지 못하는 것이 생기니 그런 고향이 있는 사람은 뿌리없는 도시인보다 부자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보다는 덜 도시같았던 부산을 처가로 뒀고 미국과 이스라엘과 일본에서 16년을 살았으며 지금은 지방 소도시인 전주에 살고 있다. 그래서 비교적 다양한 삶의 방식을 봤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속의 세계는 그렇게까지 판타지는 아니다. 물론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시골에서의 삶의 질도 이미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졌고 앞으로도 더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시골풍경은 이미 30년전쯤의 시골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주는 시골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도시의 삶과는 다르다. 어머니는 전주에 올 때마다 하늘이 보여서 좋다고 한다. 고층아파트로 하늘이 안보이는 도시의 삶이 그렇게 답답한 줄 몰랐다는 것이다. 철마다 나오는 과일과 채소의 가격도 전주만 해도 수도권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물론 주거비도 확연히 다르다. 전세값으로 비교하자면 우리 어머니의 작은 수원 아파트는 내가 사는 집보다 더 비싼 곳이지만 어머니는 전주에 오실 때마다 우리집이 대궐같다고 말하신다. 면적으로 보면 두배이상 우리집이 크고 채소를 키울만한 넓은 베란다도 있기 때문이다. 


시골의 삶에 대해 막연히 동경하거나 찬양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도시의 삶에 대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남들이 잘 산다는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우리 삶은 어떤가 들여다보고 도시나 시골이 무조건 좋다는 확신은 버려야 한다.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린 문제다. 


도시가 사람들을 빨아들인 덕분에 이제 한국인들은 대개 고향이 없다. 너무나 적응도가 심해서 도시에서 밖에 살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시골이든 도시든 다 사람이 행복하자고 사는 거 아니겠는가. 리틀 포레스트는 누구에게나 통할 완벽한 대안적 삶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이란 본래 이런 거라고 말하는 도시인들에게 꼭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해볼 만한 예쁜 영화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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