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원을 가족과 함께 아이맥스 3D로 봤다. 보기 전까지 망설임도 꽤 많았는데 워낙에 시중의 평이 왔다갔다였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극찬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일반인들의 평은 극과 극이어서 도대체가 이걸 비싼 돈주고 봐야 하는지 망설이게 만들었다. 나는 혹시 광고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녀온 김에 감상을 짧게 쓰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것같지도 않고 매트릭스나 아바타처럼 기념비적인 영화가 될 것같지도 않다. 그러나 그것은 호들갑스런 과장광고덕분에 생긴 기대이며 그런 과도한 기대를 접고 보면 흥미로운 액션 영화이며 어떻게 보면 매우 화려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돈이 아깝지는 않다. 그냥 아주 화려한 오락 가족영화다. 다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라.
이 영화의 가장 화려한 점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인기 컨텐츠들의 파편에 있다. 나는 부분적으로 평론가들이 좋은 점수를 이 영화에 준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슈퍼맨과 아이언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식의 꿈의 장면들을 계속해서 나열하는 것이 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건담팬들은 슈퍼 고질라를 건담이 공격하는 장면에서 감동할 것이다. 평론가라는 사람들은 직업이 문화 평론이니 사실 다 매니아다. 매니아가 아닌데 그런 직업을 가지겠는가. 그러니 평론가의 평이 높은게 아닐까?
그런데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과거의 문화 컨텐츠에 대해서 오타쿠 수준으로 빠졌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 영화의 매력이 그렇게까지 엄청나지는 않다는 의미다. 이 영화는 평생 문화 컨텐츠 생산에 빠져 살았던 노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영화에 나오는 음악과 캐릭터들을 하나도 모른다면 이 영화의 중심 얼개만을 보게 될텐데 그렇다고 할 때 이 영화는 그냥 괜찮은 디즈니 가족영화 수준을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 영화보다 더 대단한 액션과 감동적인 줄거리를 가진 영화는 많을 것이다. 이런 면들이 레디 플레이어 원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이유다. 인디아나 존스가 훨씬 더 좋은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인디아나 존스를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웨이드 와츠를 사랑하게 되는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다.
영화의 중심적 설정은 인터넷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것이다. 게임에 빠진 사람은 사실 가상현실기술이 없어도 가상세계속의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예전에 국산게임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라는 RPG 게임을 열심히 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가상현실 기술같은 것이 전혀 없어도 내 친구와 함께 식음을 전폐하며 그걸 했었다. 그래서 영화속에 나오는 신기술들은 전혀 미래적이지 않다.
모든 영화나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어떤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싶기에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기본적으로 가상현실 게임 세계는 어떤 곳일까라는 질문을 쫒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여기서 말하는 기술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기에 어떤 면에서 현실적이다. 어쩌면 이런 일들은 10년안에 현실화될 수 있다. 아니 이미 현실인지도 모른다. 아바타나 매트릭스 이야기가 현실화되는 날은 오기나 할지 알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시한 걸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어쩌면 우리는 미래를 생각할 때 괜히 터무니 없는 것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미래는 어떤 곳일까에 대한 스필버그의 답은 콜럼버스의 달걀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그 완전히 새로운 것이 뭘까? 우리는 모른다. 스필버그적인 답은 좀 더 상식적이고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좀 더 강력한 답일 수 있다.
스필버그의 답은 그런 건 없다는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가상현실 게임의 세계는 수없이 많은 과거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곳이다. 우리는 너무 미래적인 것에만 빠져 있다. 그래서 과거가 없는 미래를 주로 상상하는데 그는 과거의 연장에서, 과거가 더욱 풍요롭게 소유되는 미래를 상상한다.
우리는 가상현실 세계를 새로운 것이 펼쳐지는 세계라기 보다는 우리의 과거를 재현한 테마파크들의 세상으로 볼 수도 있다. 오프라인에 존재하며 여전히 인기가 좋은 디즈니 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결국 과거의 컨텐츠로 만든 테마파크다. 그런 테마파크를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서 온라인에 훨씬 더 다양하고 크게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 안에서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속 세계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테마파크의 직원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당신은 서부시대나 조선시대를 재현한 마을의 일원으로 살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단순오락과 현실의 경계는 많이 무너질 것이다. 사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단순오락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진 적이 있다. 아니 오히려 역전되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종종 오락삼아 농사를 체험한다.
한국에서는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인기였고 일전에는 일본드라마 심야식당이 인기가 있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깨비 촬영지에 가기도 하고 심야식당의 분위기를 찾아서 일본에 놀러가거나 한국에 그와 비슷한 식당을 만들어 영업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상현실 세계속에 그런 세계를 아주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심야식당에서 친구와 만나 술한잔 하는 것을 체험하며 사는 것은 인기가 있지 않을까?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골목은 어떤가. 달려오는 미래에 지친 우리는 가상현실을 통해 그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나면 어떤 사람에게 이 영화는 좀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게임좋지.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하지마. 이런 꼰대의 메세지는 왠지 부당하게 들린다. 그는 영화산업계의 승자다. 저 먼 과거에 누군가가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란 단순히 시간낭비이니 아주 가끔만 보라고 말했다면 그가 누려온 명예와 돈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먼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에 이미 우리 코앞에 다가온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이미 우리 곁에 있는 현실에 잘 적응하라는 메세지라면 그 말은 좀 다르게 들린다. 황당한 꿈만 쫒는 대신 이걸 하라고, 현실은 이거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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