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개혁의 성공과 우리 시대의 과제

by 격암(강국진) 2018. 5. 25.

우리는 누구나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혁에 대해 말할 때 이 좋은 세상이란 적어도 대다수 사람에게 좋은 세상을 의미한다. 소수의 특정인들에게만 좋은 세상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런 개혁이란 사회적 합의에서 나오는 힘으로 이뤄지며 따라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하나의 인식을 공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떻게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이 인식의 문제 다음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세 개의 개혁을 생각해 보자. 개혁이란 사실 무수히 많은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지만 나는 사회적 권리와 분배의 불평등에 대해 말할 것이다. 먼저 개혁 A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 차별당하는 상황이다. 그 개혁을 그림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이 그림은 경우에 따라서 조금 변형될 수도 있다. 일단 왼쪽의 삼각형은 훨씬 더 끝이 날카로운 모습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더욱 더 소수의 사람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오른 쪽의 타원은 두께가 없고 완전히 평평한 직선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완벽한 평등상태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완벽한 착취 상태도 완벽한 평등도 존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착취에도 사회적 구조가 필요하며 완전한 평등이란 이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는 대개 왼쪽 상태의 사회에서 오른쪽 상태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개혁에 대한 그림은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 보다 극적인 예는 노예 해방일 텐데 그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이 된다. 



여기서 왼쪽편의 사각형중 아래의 사각형은 물론 노예들을 의미한다. 노예 해방이란 이 노예들이 이제 자유인들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 개혁을 노예해방 개혁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노예 해방 개혁은 물론 훌룡한 것이지만 모든 현실의 개혁에서는 누구나 같은 혜택을 입지는 않는다. 위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윗층의 맨 아랫계급 그러니까 자유민 중의 제일 하층 계급일 것이다. 그들은 노예보다 위에 있는 존재였는데 노예를 해방시키고 나면 사회적으로 가장 하층 계급이 되고 만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노예해방이란 거의 사회적 몰락에 가깝다. 사회 전체를 보면 노예 해방이란 훌룡한 일일지 몰라도 자기만 보면 상황이 반대다. 이것은 이들로 하여금 노예 해방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 


이제 마지막으로 개혁 B를 소개할 차례다. 그것은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정리된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 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집단을 보게 된다.  나는 좋은 예가 남자와 여자 집단의 비교이고 지역 차별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개혁 B에서 고려하는 두개의 집단은 그 내부에도 많은 차별과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집단에서 가장 특혜를 받는 사람들은 설사 그 사람이 차별받는 집단쪽에 속해 있어도 여전히 우대받는 다른 집단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특혜를 누린다. 개혁 B는 이러한 차이를 개선하여 두개의 집단이 평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 B의 경우에는 개혁이지만 개혁이 아닌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전반에 더 강하게 존재하는 불평등에 눈을 감고 그저 이 집단과 저 집단의 평균이라는 애매한 숫자에만 신경을 쓴다. 그러니까 의사의 평균수입과 약사의 평균수입을 비교하면서 적당한 차이는 얼마가 되어야 합리적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몰두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의사 내부에서나 약사 내부에서도 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도 이렇게 되면 의사는 의사끼리 뭉치고 약사는 약사끼리 뭉친다. 평균으로 보면 의사들은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전혀 다를 수 있는데 개혁을 평균의 조정으로 생각하면 부자 의사들은 한없이 느긋해 지고 가난뱅이 의사들은 생사가 걸린 문제처럼 다급해져서 투쟁에 나설 수 있다. 그러면 개혁은 실패하는 것이다. 


개혁 B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종 실제로는 현재의 상황이 B의 상황이 아니라 노예 해방의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즉 개혁 B에 대한 그림처럼 차이가 작은 게 아니라 차이가 노예 개혁수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많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도 얻었던 여성이 태연히 자신은 다시 태어나면 꼭 남자로 태어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신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고 훌룡한 외모와 높은 학벌을 가졌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남자였기만 하다면 그 삶은 지금의 삶보다 더 훌룡했을 거라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여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행운이나 권리는 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단지 성별만 바꾸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공평한 불평일까? 이것을 지적하는 남자는 여성차별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인간은 현실을 과장하고 자기와 자기 주변만 보면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불에 타 죽어갈 때도 냉담하게 굴던 인간이 자기 발가락이 아프고 자기집 앞의 주차장에 문제가 생기면 세상이 이래서는 안된다면서 펄펄 뛰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남자란 옆집 남자보다 돈을 많이 버는 남자거나 동서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남자라는 농담이 있다. 다시 말해 엘지 회장쯤 되는 남자도 삼성 회장 옆집에 살면 당신은 왜 그렇게 돈을 못버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농담만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주변만 보게 되기 쉽다. 온 세상이 어떤 상태에 있건 일단은 내 동기 보다, 내 이웃보다 내가 약간이라도 못하다는 것은 참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대다수 사람들이 큰 혜택을 볼 개혁 A에 집중하는 대신에 노예 해방을 주장하면서 개혁 B에 집중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개혁 B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학벌에 민감한 사람은 학벌철폐만이 당면과제라고 생각하고, 지역 차별이나 성차별에 주목하는 사람은 그것만이 당면과제라고 생각한다. 정치가들은 선거법개정이 당면과제라고 생각하고 학부모들은 대학입시정책이 당면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당면과제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실은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차별의 뿌리로 부터 우리의 눈을 돌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보수적인 기득권층은 이러한 효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대중을 분열시키려고 한다. 개혁 A는 아주 훌룡한 것같다. 반대할 명분도 별로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지금의 상황은 개혁 A의 상황이 아니라 노예 해방의 상황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보자. 위와 아래의 어딘가에 경계선을 긋고서 위를 아래로 내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흔한 방식은 개혁에 대한 주장을 극단주의로 모는 것이다. 좌파니 빨갱이니 공산당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단어들이 우리나라에서 난무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노예 해방의 경계선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극심한 불확실성을 느끼게 만든다. 개혁이 어떻게 성공하냐에 따라 그들은 새 시대의 특권층이 될 수도 있고 최하층민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이 택하는 것은 대개 지금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층층이 권위주의적인 구조를 가진 사회는 생각보다 잘 무너지지 않는다. 윗 사람에게 당하고 사는 것이 싫은 사람도 개혁의 소동속에서 자기가 그 나마 가진 권위적 특권이 무너질 것이 두렵다. 개혁이후에 최하층민이 될 것이 두렵다. 그러므로 평등 개혁을 아랫사람들의 반란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개혁을 어렵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혁의 성공은 핵심적으로 다음의 질문에 달려 있다. 


우리 시대의 과제는 무엇인가?


즉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가 가장 보편적으로 불평득과 모순이 누적되어서 개혁 A의 상태에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다른 개혁의 과제들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가지 개혁의 과제들을 고르게 추진하는 것은 어떤 결실도 가져오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다른 개혁과제를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20년전에 비해서 한국 사회는 남녀평등이 향상되었는가 아니면 악화되었는가? 만약 평등이 진전되었다면 그것은 남자에 비해서 여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주장이 통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과는 상관없이 사회 전체에서 있어서의 인권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인가? 나는 군사독재와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은 여성의 권리 운동과는 상관없지만 결과적으로 보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기본적 문제였던 인권을 무시한 불법 독재 통치야 말로 모든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핵심적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 자체는 개혁에 대한 일반적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2018년 현재의 한국에서 가장 크게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방향은 무엇일까를 질문하게 된다. 그걸 간단히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나는 그 것이 세습과 분단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세습의 문제. 이것은 혈연에 근거한 소유의 세습이 너무 커져서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근거가 무너질 지경에 처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이나 재벌 세습 소동들을 통해서 겪고 있다. 한 사회가 고도화되면 집값과 교육비는 올라간다. 그런데 부모가 재산을 자기 자식에게만 세습하면 자연스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쟁에서 미리 탈락하게 되고 만다. 정유라, 이재용, 조현아 재판들에서 이걸 느끼는 사람들은 이미 많을 것이다. 부모가 재벌이면 다른 모든 차이가 다 극복되고 있지는 않을까?


한반도 분단의 상황. 한국은 기본적으로 이 분단이라는 상황을 통해서 많은 댓가를 내고 있다. 국방비는 오히려 작은 것이다. 국토의 사용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 분단때문에 정말 작은 나라로 억압되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가 있다면 남북이 통일되어 있다면 일자리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고 내수 시장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지금의 한국이라면 중국으로 러시아로 몽고로 훨씬 더 활발한 진출을 할 것이다. 상당한 문화적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독일 통일과 비교하면서 남북통일의 비용운운하지만 분단의 비용은 생각하지 않는다. 서독은 유럽대륙 안에 있었다. 한국처럼 섬보다 더 고립된 상황이 아니었다.


세습과 분단은 주로 반공주의와 자본을  통해서 남한 대중을 억압해 왔다. 지금 이순간에도 가장 바보같은 소리들이 언론들을 통해서 세상에 울려 퍼진다. 그래서 모든 상식적이고 생산적인 개혁과제들이 진전이 없다. 국회가 멈춰서고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예산 집행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한국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