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CVID는 과학인가?

by 격암(강국진) 2018. 6. 13.

한반도 평화정착에 큰 의미가 있는 북미정상회담이 끝났다. 언론들은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인 회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 회담이 누구에게 유리한 것인가에 대한 말도 하고 있다. 뉴스들을 보면서 나는 북한이 미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가지는 것을 내심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세상에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 중의 하나가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entlement 소위 CVID가 합의문에 있는가 없는가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의) 해체라는 말에 대해서는 좀 오해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작은 오해라서가 아니라 이것이 상당히 자명한 것인데도 그 말의 사용이나 이해 그리고 해설에 있어서 지적되지 않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몇줄 적어볼까 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CVID는 과학적 표현이 아니다. CVID는 정치적, 문학적 표현에 불과하다.  왜 이것이 핵심이냐고 하면 핵무기는 기술적 과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핵협상을 기술적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도 과학자에게 핵무기 해체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CVID를 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묻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대한 불확실성이 발생한다. CVID는 과학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과학자에게 물으면 CVID의 자의적 해석이 발생하는 것이다.  


CVID가 왜 과학적 표현이 아닌가는 잠시 미뤄두고 비과학적 대상의 과학적 연구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하나 생각해 보자. 내가 좋아하는 예는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자면 과학자는 사랑이 뭔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정의가 있어야 측정이 되고 측정이 되어야 과학적 논리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미국에서 부부간의 사랑은 어느 쪽이 깊을까? 이에 대해서 과학자는 부부간의 섹스횟수를 측정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국보다 섹스를 더 많이 하기 때문에 한국의 부부가 사랑이 더 깊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함으로 해서 사랑은 곧 섹스라는 가정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의 사랑에 대한 과학적 연구라는 것은 오해의 소지를 가지게 된다. 


CVID가 과학적 표현이 아닌것은 현실 사회속의 문제를 논할 때 과학적인 수준에서는 완전히 검증가능한 것도, 비가역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핵기술이라는 것은 무슨 다이아몬드처럼 발견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것이다. 북한에 사람이 한명이라도 남아있고 종이와 연필이라도 있다면 '과학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핵기술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이 아무리 작아도 말이다. 


한국은 비핵화된 국가일까? 한국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아주 많다. 한국은 엄청난 수의 기술자를 가지고 비행기도 만들고 거대한 빌딩도 짓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만들고자 하면 핵무기를 못만들것 같은가? 핵무기기술은 이미 나온지가 반세기나 지난 기술인데 말이다. 만약 국가가 총력을 기울여 어떤 댓가를 치뤄도 해내겠다고 한다면 나는 몇년안에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1년안에도 될지 모른다. 따라서 한국도 이런 의미에서는 CVID된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까 북한 비핵화는 갑자기 되지 않고 심지어 15년이 걸린다같은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과학자가 말했어도 과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과학적인 의미에서 가장 엄밀하게 말하면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영원한 시간이 걸린다. 그것에 대해서 소위 과학자라는 사람들 몇몇이 자기 마음대로 '상식적인' 조건을 집어넣어서 15년이 어쩌고 하는데 이것은 별로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다. 


20년뒤의 사회에 대해서 자신있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를 들어 요즘 화제가 되는 인공지능이 10년뒤 20년뒤에 어떤 성능을 발휘할지 누가 아는가? 20년쯤 뒤에는 인공지능기술같은 것때문에 핵기술 개발에 걸리는 시간이 극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핵무기도 3D프린트로 즉각 찍어내는 시대가 올지 어떻게 아는가? 그러면 어떻게 비핵화를 하는가? 또 정치적 변화는 어떤가? 15년뒤까지 정치적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러니까 이런 계산은 마치 15년동안 바람이 한번도 불지 않는다면 탑을 쌓는데 걸리는 시간은 15년이라고 말하는거나 마찬가지다. 


반면에 북한이 그렇게 할리가 없는 것이지만 북한의 정보를 완전히 공개한다면 실질적 의미에서 비핵화는 순식간에 일어날 수도 있다. 왜냐면 정보가 다 공개되면 핵을 개발할 수도 어디에 숨길 수도 없기 때문에 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진짜 권력은 정보에 있다. 그리고 정보의 공개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정보의 완전한 공개란 주권의 포기이므로 그렇게 할 리가 없지만 부분적 공개는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이 지적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핵제거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일상속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나 나아가 한반도에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를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일상적인 의미'에서 그걸 이해하면 된다. 아침에 면도를 할 때 우리는 일상적인 의미에서 면도크림의 완전한 제거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과학적인 의미에서 완전한 제거라고 부르지는 말도록 하자. CVID같은 말을 과학자에게 질문을 던질 때 쓰거나 객관적이고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는 국가간 합의문에 등장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그건 모르고 하면 바보고 알고하면 용어의 혼동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악의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국가간 합의문에 완전하고 비가역적인 제거같은 표현이 등장할 수가 있을까? 정상적 합의라면 있을 수가 없다. 왜냐면 완전하다라는 말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이 만약 북한 체제의 완전한 보장을 요구한다고 해서 합의문에 완전히 보장한다고 단순하게 쓸 수 있나? 그럼 북한이 앞으로 어떤 짓을 해도 미국은 북한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 권리를 주게 되는 것일까? 미국대통령을 암살해도 한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해도 북한은 완전한 체재 보장을 받는 건가?  무한한 책임의 해석에는 끝이 없는데 그걸 하겠다고 해버리는 조약문을 정상적인 경우에 누가 쓰겠는가? 


CVID는 조약문에 등장해서는 안되고 과학적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비핵화나 평화정착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가 용어의 사용에 혼동을 일으키면 그 프레임에 빠져든다. 그런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그 프레임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만들어 낸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