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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주정과 우리의 욕망

by 격암(강국진) 2018. 11. 3.

알콜은 진정제이고 수면제다. 술을 마시면 여러가지 효과가 나타나지만 그 중의 하나가 우리안의 억제가 제거되는 것이다. 술은 우리의 자제력을 줄이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술을 마시는 한가지 이유는 우리가 평상시에 유지하는 자제력에 대해 피곤하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긴장하고 걱정한다. 우리가 가진 생각들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계속 긴장하고 걱정하라고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구가 그렇다. 너는 더 잘해야 한다, 너는 더 발전해야 한다, 너는 직장인으로서,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자식으로서 자기의 할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식의 사회적 요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우리는 계속 긴장하고 계속 걱정한다. 세상은 대개 실제보다 더 걱정하라고 말하지 "괜찮아. 걱정할 필요없어. 너는 잘하고 있어."라고는 좀처럼 말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술을 마신 나는 내가 아니라고 여겨진다는 사회적 핑계도 있다. 술주정을 한 나는 내가 아니라 술에 의해 조종되는 사람이므로 우리는 취한 상태의 행동에 대해서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여도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너그럽다. 술주정으로 폭언을 하거나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바보같은 행동을 하거나 심지어 폭력을 휘두른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흔하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대개 "술때문이다"라는 핑계로 대충 수습되는 일이 많다. 


우리는 평상시에 유지하는 자제력에 대해서 피곤하게 여기며 그것을 해제하는 것에 대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기분좋게 여긴다. 우리는 정장을 입은 침팬지일 수 있다. 술을 마시고 다시 침팬지가 되면 인간으로서는 창피하지만 자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무한정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술을 마시면 사람도 마구 죽인다면 술은 당장 절대 마셔서는 안되는 금지마약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술을 통해 자제력해제가 일어났을 때 일어나는 행동은 우리가 그것을 워낙에 강하게 원하고 있었던 것이거나 평상시에도 사실 그런 행동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할 수도 있는 행동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즉 매우 강하게 원하고 있는 행동이거나 아니면 그다지 강하게 자제하고 있지 않았던 행동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술마시는 문화와 술주정을 사회적 진실을 밝히는 한가지 수단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즉 술주정은 우리가 뭘 강하게 원하고 있는지 혹은 우리가 무엇에 대해 그다지 강하게 억제하고 있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수단이며 술을 많이 먹는 사회란 그만큼 사람들이 감정적 억제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자제력이 해제되는 것을 기분나빠한다면 애초에 우리는 술을 먹는 것을 덜 즐기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먹을 때마다 코피가 나거나 배변을 전혀 참을 수 없어지는 음식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마시고 싶어할까? 그러므로 술권하는 사회란 감정적 억제가 심한 사회인 동시에 그 억제를 해제하는 것을 기분좋아하는 사람들의 사회인 것이 아닐까?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에 미국 드라마를 보던 중 떠오른 생각이다. 미국 드라마 속에 나오는 미국인들의 전형적인 술주정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감각적이고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 용감해 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영화에 나오는 미국인들의 술주정은 술로 시작해서 마약과 가벼운 섹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참 많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마약은 심각한 마약인 경우가 많고 여기서 말하는 가벼운 섹스란 좋아하던 미혼남녀의 섹스나 불륜정도가 아니라 집단난교와 근친상간등 거론하기 어려운 수준의 것일 때도 많다. 물론 모든 미국인이 이렇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사회에 대해 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 사회에 대해서는 술주정은 뭘 말해 주는가? 한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전형적인 술주정을 떠올려 보자. 그것은 미국의 술주정과 뭐가 다른가? 미디어 속에 나타난 전형적인 한국식 술주정은 단순히 자유와 쾌락이라기 보다는 권력욕이 더 두드러진다. 한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술주정은 주로 갑자기 윗사람인 척 하는 것이거나 평상시에 남에게 굽신거리던 사람이 술먹고 반말을 한다던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잘 것없는 사람들이 술집 접대부들에게 권력자인척 행세하는 것이 흔한 한국식 술주정이다. 


미국인들은 성적인 윤리가 약하고 평상시에 자유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는 면이 크다. 그래서 알콜이 자제력을 약하게 하면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좀 너무 막나간다는 식의 윤리적 성적 일탈을 하게 되는 일이 많은 것같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미국인들이 꿈꾸는 천국이란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곳일 것같다.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일이 무제한으로 주어지는 그런 곳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게 미국 록스타의 삶이던가?


반대로 한국인은 사회적 위계질서가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우리는 빨리 권력자가 되어서 남들에게 헛소리 해대며 권력을 남용하고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술이 들어가면 갑자가 권력자처럼 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인의 꿈이란 사회의 정점에 앉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말도 안되는 갑질을 하면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게 현실에 있는 재벌가족들의 삶이던가?


30년쯤 전에 비하면 요즘 젊은 세대는 술을 적게 마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건 어쩌면 사회적 억압이 주는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젊은이들조차 서로 서로를 취하게 만들어야 진심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지는 시대에서 이제는 왜 그런 약물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젊은이가 사는 시대가 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술을 맛으로도 먹는다. 하지만 그 맛이란게 알콜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우리는 술을 약으로 먹는다. 맛뿐이라면 술을 먹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술에 반대하지 않으며 술을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술이란 우리의 정신적 긴장을 풀어버리는 쉬운 수단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을 먹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버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쉬운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때로 술한잔에 의존하는 것도 뭐 괜찮을 것이다. 사람이 힘들게만 살필요는 없지 않은가. 세상일은 종종 뜻대로 되지 않고 좋은 날은 너무나 멀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때도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시는가, 술을 마시고 술주정이 심하다면 그런 술주정은 우리에 대해서 뭘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이왕 술을 마시는 거라면 가끔은 그런 주제를 안주삼아 술을 마실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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