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
우리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사고의 벽이라고 부르는데 때로 우리가 왜 불행한지는 이 사고의 벽 너머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통상 가지는 사고의 벽중의 하나는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돈이 뭔지 안다고 생각하고 그 돈을 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가 당연한 것을 하는게 아니라 어떤 규칙을 따르기로 한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늘상 축구를 하면서도 자신이 축구를 하고 있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데 그 이유는 그 사람은 농구나 야구같은 다른 게임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눈에는 그저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모든 인간은 축구를 하는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바뀐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전에는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러면 우리중의 몇몇은 뻔해 보이지만 답은 간단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은 돈이란 무엇인가 라던가 국가란 무엇인가 라던가 직업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그 시대에 꼭맞는 답이 무엇이든 간에 그 질문들 자체는 자꾸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우리는 구글이라던가 페이스북같이 전통적 시각으로 보면 돈을 벌 것 같지 않은 사업을 하는 회사가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신문 방송은 비트코인 같은 것으로 부자가 된 사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4차산업혁명이라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이야기도 떠들어 댄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우리는 직업이 사라진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돈이 의미가 알쏭달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불신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2008년의 세계 경제위기였다. 그 경제위기 이후 미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나라는 돈을 뿌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허공에서 돈을 만들어 은행을 살렸고 그때에 비하면 2019년 현재 세계에 돌아다니는 달러가 4배가 늘었다고 하니 이런 모습을 보고도 돈이라는 것이 확고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는 믿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 무렵에 바로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시작되었다.
이희우의 토큰 이코노미는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첫 부분은 일반적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거래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고 두번째는 스팀이라는 구체적인 회사의 사례를 통해 토큰 이코노미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책 자체는 부실하고 순서도 좀 엉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큰 이코노미라는 것은 학문적으로 잘 정리되어진 분야가 아니다. 그래서 현장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을 장점으로 가지는 이 책은 나름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걸 무조건 맹신하지 않겠다는 생각만 한다면 말이다.
비트코인의 시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토큰 이코노미라는 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보상 시스템 혹은 경제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여기고 그에 대한 대안을 내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데이터자본주의라는 책도 이런 종류의 문제의식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돈으로 경제를 돌린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가치 기준을 돈으로 삼는다. 그런데 돈은 그 자체로 한계가 명확하다. 무엇보다 그것은 1차원적이다. 그래서 자동차가 5천만원이고 책 한권이 만원이면 자동차는 책 한권의 5천배 가치가 있다는 가치비교를 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말도 안되는 가치비교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조언이며 다정한 말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만들어 준 음식의 가치는 얼마일까? 돈으로 치면 공짜다. 그래서 집에서 가정일을 하는 전업주부는 자기가 가치없는 삶을 산다고 느끼게 되기 쉽고 훨씬 가치없는 일을 하면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자신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왜냐면 전업주부는 월급이 없고 직장인은 얼마가 되건 월급이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측정한 가치는 공짜 물건은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한다. 이런 가치평가와 보상은 물론 현실과 거리가 멀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돈을 버는 이유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거기서 컨텐츠를 뿌리기 때문인데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이것을 뒤집으면 그들의 행위는 가치가 없다.
토큰 이코노미와 데이터 자본주의의 말을 합치면 토큰 이코노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가치평가 시스템 그리고 보상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누적된 현실의 모순들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훨씬 더 편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정보기술의 발달로 필요없어진 중간 매개자들이 훔쳐가는 부분들이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중간매개자들의 힘은 엄청나다. 예를 들어서 그것에는 국가가 있고 포털이 있다. 내가 미국으로 돈을 보내려고 하면 환전수수료가 붙는다. 그런데 내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데 왜 내가 세금을 내야 할까? 포털은 더 하다. 포털은 컨텐츠를 보여줄 뿐이고 기사는 언론사가 쓰고 인터넷 카페며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은 사용자들이 쓰는데 엄청난 돈을 버는것은 포털 회사의 주인들뿐이다.
저자인 이희우는 책에 나오는 자신의 취업담속에서 암호화폐를 만드는 일을 이렇게 정리한다.
그것은 국가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개 개인들이 쉽게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암호화폐같은 것을 만드는 일이 그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 일은 점점 더 쉬워져 가고 있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을 짜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과 통찰력을 담아서 국가를 설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설계가 엉망이면 아무도 그 나라에 머물지 않을 것이고 설계가 좋으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인터넷 공화국에 신뢰를 표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인터넷 공화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게 되면 그 국가는 실제로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국가를 능가할 정도의 힘도 가지게 될지 모른다.
사실 돈이란 국가규모에서 말하면 거의 허공에서 만들수 있는 것이다. 전자시대에는 종이에 찍을 필요도 없다. 다만 국가가 가지는 신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이 2008년 경제공황이후 그렇게 엄청난 돈을 찍었어도 달러의 가치는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대안, 자본주의의 대안이 없으므로 신뢰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 말은 뒤집으면 누구나 신용 혹은 신뢰만 만들 수 있으면 그 사람도 허공에서 돈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내가 종이에다가 1억이라고 썼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걸 1억이라고 믿으면 그 순간 나는 1억을 만든게 된다. 나는 그 종이를 주고 1억을 달라고 할 수 있고 신용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기꺼이 1억을 나에게 줄 것이다.
블록체인기술은 정부가 보증하지 않아도 맘대로 위조할 수 없는 화폐를 만들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화폐를 설계하고 있다. 화폐의 설계란 경제의 설계고 결국 국가라고도 생각되어질 수 있는 경제공동체의 창설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설사 지금 나와 있는 여러가지 암호화폐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여러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상당기간 유지될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미래는 이제 오프라인의 직장에 있는게 아니라 이런 경제 생태계들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더 많이 달려 있을 지도 모른다.
이희우의 토큰 이코노미는 이런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를 준다. 다만 현실은 아직 혼란스러우므로 사기꾼과 비전가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스템의 설계가 아주 투명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흐름을 고전적인 시각에서 엉터리라고 무시만 할 수는 없다. 분명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사람도 많이 나올테지만 그런 시각만으로 산다면 우리는 여전히 농경국가에 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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