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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교육에 대하여

교육에 있어서 절대란 없다.

by 격암(강국진) 2019. 3. 14.

얼마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올해는 우리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해였다. 그런데 나는 큰 아이의 입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말이 이것이라는 점을 느꼈다. 그 말이란 바로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뭔가를 알고 있지만 아는 것 이상으로 모르는 것이 존재한다. 어찌보면 누구나 이것을 아는 것같지만 사람들은 흔히 행동으로는 자신이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일이 많다. 



나는 오랜동안 외국에서 살았고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 돌아온 4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에 돌아온다고 말할 때 우리에게 12년 특례에 대해서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말인 즉슨 아이가 12년특례를 받을 수 있도록 더 시간을 끌다가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12년 특례를 얻는 길을 포기하는 것을 지극히 어리석은 것으로 단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주장은 아이는 어차피 한국에 들어오면 제대로 한국 수업을 쫒아 갈 수 없을 것이며 특례가 아니면 대학을 제대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에 수긍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큰 아이처럼 고등학교로 들어오면 한국 입시공부를 쫒아가서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12년 특례의 길을 무슨 로또 맞는 것처럼 말하고 반드시 그 길을 쫒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는데 나는 실제로 그렇게 특례로 대학에 들어온 동기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공부를 쫒아가는 것이 어려운데 그럼 대학공부는 문제가 없을까? 어떻게든 대학에만 들어가면 교육은 되기 마련이란 말인가? 내 동기중에 특례로 들어온 친구는 4년내내 고생만하다가 결국은 물리학전공학위를 포기하고 다시 미술쪽 공부를 했다. 12년 특례란 준다고 해도 그렇게 로또가 되는 것이 될 수 없는 코스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 고생도 한 탓인지 몰라도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했고 한 해를 재수한 끝에 올해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 일본유학으로 진로를 잡자 큰 아이에게 그 코스는 알고 보니 매우 유리한 코스였다. 왜냐면 일본 유학생 시험점수의 절반이 일본어인데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일본에서 공부한 우리 아이는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편한 일본인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가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유리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다른 과목도 기본적으로 일본어로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큰 아이는 와세다, 츠쿠바, 교토 대학에 모두 합격했다. 


특히 교토대학은 일본의 양대명문교로 아이가 일본에 계속 있었더라면 갈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해지는 대학이다. 한국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세계인의 눈으로 보면 교토대와 서울대중에 더 좋은 대학을 말하라고 하면 대개 교토대다. 이미 백년전에 노벨물리학상을 배출한 명문대이며 학문분야에 있어서 일본이 한국보다 전반적으로 위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게다가 교육비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같다. 유학을 가는 것이 한국에서 대학을 보내는 것보다 학비가 더 싸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렇게 과장은 아니다. 교토대학의 경우에는 1년학비가 6백만원이 안된다. 그나마도 많은 사람들이 학비탕감을 신청하고 받는다고 한다. 


결국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우리 큰 아이는 한국에 돌아온 덕분에 고생도 했지만 더 좋은 대학도 가게 된 면이 있다. 그런데 이런 걸 누가 미리 알겠는가.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학가는 것에 대해서는 4년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으며 12년특례의 중요함을 말하던 사람도 지금 보면 한국고등학교에서 한국대학가는 것만 생각했지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살다보면 인생은 이런 일이 사실 아주 많다. 특히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면 거의 반드시 그렇게 된다. 우리의 예측은 대개 아주 엉망이라서 어른들은 초등학생을 두고 아이가 뉴욕에서 크면 좋니 서울에서 커야 좋니를 말하는데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재태크는 이래야 하고, 교육은 이래야 하고, 결혼은 이렇게 해야하고 하는 식의 이야기가 많고 그걸 강력하게 믿고 장기적 계획에 충실하게 집착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이야기들은 그게 왜 틀렸는지를 부정하기 어려울 때도 많지만 대개는 어떤 것을 과신하는 잘못들을 저지르고 있다. 예를 들어 12년 특혜밖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12년 특혜 조건에 모든 걸 걸거나 군대에 대한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서 다른 모든 것을 그것에 희생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인생에는 절대적인 게 없다. 아주 공평하게 말해도 거의 없다고 해야 한다. 우리는 대개 실패를 피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가 꼭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장기적 계획을 세울 때 한 번의 실패도 인생의 끝처럼 생각하고 세우는 경우와 실패는 약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세우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게 된다. 우리는 종종 너무 실패를 피하려다가 돈과 시간을 쓰고 결국 실패하게 되기도 한다. 


인생의 진로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너무 많으므로 이 글의 문맥과 관련된 한가지만 말하자면 나는 다시 원래의 말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희안한 코스를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이 코스를 따라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장한 일로 보여지고 어쩌면 유일한 길로 보여지지만 종종 그것은 우리가 큰 길을 외면하고 잔 꾀를 쫒는 일이 된다. 이것은 바로 노자가 말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노자의 책 도덕경 53장에는 큰 길은 지극히 평탄한데도 사람들은 유난히 그 길을 벗어나서 흩어지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큰 길을 가는 것이 뭔가는 사람마다 해석이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대개 이게 뭘 말하는지는 알거라고 생각한다. 큰 길이란 상식적인 길이고 중심적인 가치를 잊지 않는 길이며 다른 무엇보다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길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큰 길을 따른다는 것은 확실한 보장이 없는 길이라는 것이고 힘든 길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지키는 것, 예를 들어 자기 꿈을 지키는 것은 힘이 든다. 게다가 인생이란 알 수 없다라는 말은 그 길을 따라가도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큰 길은 일은 많고 성공할 확률은 희박한 길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큰 길이 아닌 작은 길은 어떤가? 큰 길의 반대니까 성공할 확률이 더 커보이는 확실한 길이며 특히 일이 많지 않은 쉬운 길일 것이다. 그런데 확실해 보이는 길이란 게 바로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망각한 길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우리가 모든 인생길을 아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 어떤 길은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또 쉬운 길에 대해서 우리는 강한 매력을 느끼지만 따지고 보면 그 길이 쉬운 것은 실은 그 길이 어떤 중요한 가치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 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빚내서 부동산을 사면 큰 돈을 번다는 주장이 있다고 해보자. 그런 말은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지, 왜 이것이 나만의 기회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농구선수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다면 당신은 농구선수가 될 수 있지만 그런 재능이 없는 타인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부동산을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특히 빚내서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왜 모든 사람에게 쉬운 이 길이 나에게 지금 열려 있을까? 흔히 쉬운 길은 큰 위험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큰 위험은 당신의 인생의 핵심적 가치를 가진 것을 파괴할 수도 있다. 1억을 벌 수도 있지만 신용불량자가 되어 실직하고 가정파탄을 일으킬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 쉬운 건 대개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박을 노리고 아주 쉬운 길을 찾을 수 있다며 자신의 잔꾀를 자랑하는 태도는 길게 보면 오히려 자기를 함정으로 빠뜨리는 것이 되기 쉽다. 직장에 다니며 일하는 것이 도박장에서 노름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반드시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가 대개 직장쪽이 작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너무 많은 사람들은 자기만 꾀가 있고 자기만 그 정보가 있는 것처럼 뭔가에 빠진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되돌아 보면 우리는 항상 같은 말을 하게 된다.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평범하게 살았으면 지금 대박이었을 텐데. 나는 왜 쓸 데없는 일들로 내 인생을 망쳤을까? 


그러게 말이다. 노자가 벌써 몇천년전부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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