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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전주에 사는 장점들

by 격암(강국진) 2019. 4. 5.

내가 친인척하나 없는 전주를 택하여 살게 된지도 이제 만 4년이 넘었다. 그간에 전주에 사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건 나에게 이따금 왜 전주에 살게 되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아내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에 대해서 내 답은 여러가지였는데 그건 실제로 그 답이 여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면들을 제외하고 하필이면 나는 왜 전주를 택해서 살기로 했을까? 블로그를 뒤져 보니 이에 대해서 써둔 것이 없는 것같아 몇마디 정리해 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전라도를 꼽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전주가 아니라도 전라도로 오고 싶었다는 것이다. 대개 전라도는 다른 도에 비해 뒤진 지역으로 여기며 강원도보다도 수도권에서 멀기 때문에 이런 나의 선택이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라도가 좋다고 느끼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이제까지의 개발논리에 상처입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전라도는 아직 순수하게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서 가까운 괜찮다는 공원이며 해변이며 산이 어떨까? 금새 더러워지고 금새 카페며 술집으로 채워지고 만다. 나는 제주도나 전주도 관광객이 늘면서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나라고 해서 사람하나 오지 않는 오지가 좋고 문명의 힘이 닿지 않는 깡촌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천천히 개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데 한국은 대개 그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많은 곳에서 개발논리는 금방 과열된다. 역사를 지우고 사람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마치 한두해 장사하고 그 지방을 다 더럽히고 나면 쓰레기만 남기고 다른 곳으로 떠날 것처럼 군다. 한국의 대도시가 그렇다. 


제주도도 전주도 상업화가 지나치게 이뤄지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그건 어디와 비교하냐의 문제다. 제주는 그저 신혼여행때나 가는 섬에서 힐링을 이미지로 가지는 섬으로 다시 태어났고 전주도 아파트촌을 짓는 대신에 개천을 깨끗하게 하고 문화적 지원을 해서 관광지로 다시 태어난 공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서울이나 부산같은 대도시나 한국지방중 사람이 많은 경상도나 수도권을 가보면 사람이 곧 공해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을 미워하게 되기 쉽다. 막히는 차는 기본이고 뭔가 한호흡 쉰다는 느낌없이 몰아치는 것같은 그 빡빡함이 답답하다. 하늘도 보이지 않게 솟은 고층아파트나 고층 상업 건물들은 사진을 찍거나 잠시 보기에는 장대하고 멋지지만 그곳에 계속 산다면 나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줄 것같다. 


수원에 사시는 우리 어머니는 전주에 내려오실 때마다 하늘이 보여서 전주는 좋다고 말한다. 수도권은 이미 고층 아파트 숲으로 하늘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가까운 수목원이며 모악산이며 옆 도시에 갈 때도 그저 반시간이면 가게 되는 것에 놀라시고는 한다. 예쁜 편백나무 숲이나 연꽃 호수에 가서도 사람에 밟히지는 않는다는 것에 감탄하시기도 한다. 전주도 시내쪽은 교통정체가 있지만 그래도 수도권같지는 않고 전주 외곽으로 빠지면 국도가 곧 고속도로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한가함이 있다. 그러니까 전라도에 와보고서야 수도권 사람들은 자신이 그간 갇혀 지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고작 10킬로미터정도 떨어진 곳을 가는데에도 온갖 교통신호와 정체를 뚫고 가야 하기에 대도시 사람들은 전라도에 사는 사람과 거리관념이 다르다. 전주를 떠나서 전라도의 보다 외진 곳으로 가면 말할 것도 없다. 남도의 뻘건 흙을 가진 밭이 봄날의 햇볕에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앉아 있으면 한가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알 수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전라도에서 전주에 사는 것은 그러면서도 전주는 이지역의 문화적인 중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서관이 많고 잘되어 있다. 보고 싶은 책들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고 검색도 잘되어 책을 대부분 살 필요가 없다. 게다가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도 몇개나 된다. 전주하면 유명한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전주사는 사람은 타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고 싶으면 전주로 오라고 말하게 된다. 타지역이라고 해서 맛있는게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외식을 하고 외식을 즐기며 그러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게 되는 그런 음식문화가 전주에는 있고 그것은 전주에서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또한 전주는 교육도시이기도 하기 때문에 전라도의 타지역보다는 젊다. 타지역에서 고등학교며 대학교에 가기위해 전주로 학생들이 온다. 그래서 여러가지 공연이며 대학축제같은 것이 존재한다. 즉 전주는 한가한 전라도의 삶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문화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도시인 것이다. 같은 전라도라고 해도 다른 도시가 아닌 전주를 택한 이유는 내가 두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도시의 자극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라도에서는 전주였다.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세번째로 그리고 이 글에서는 마지막으로 거론하고 싶은 내가 전주에 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복층구조를 가진 주인세대다. 내가 사는 전주의 신시가지는 4층 원룸형태의 건물로 채워져 있다. 이 건물의 맨 윗층은 옥탑의 한층과 합쳐져서 복층구조를 가진 세대가 되는데 여기서는 이걸 주인세대라고 흔히 부른다. 그건 그냥 2층집을 3층집 옥상에다가 올려 놓은 것같은 구조를 가졌다. 


내가 한국에서 살 곳을 고를 때 나는 지역뿐만 아니라 집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나는 많은 시간을 보낼 집이 좀 좋았으면 했고게다가 이제까지는 집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그냥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번에는 좀 좋은 집에 살고 싶었던 것이다. 친인척을 초대해서 같이 시간을 보내도 좋을 그런 집을 나는 원했다. 


누구나 좋은 집에 살고 싶어한다. 그러니 한국에 좋은 집이 많을 것같지만 사실은 좋은 집은 한국에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그리고 단순하게 말하면 나는 한국에서 제일 좋은 집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꼽았기에 오게 된 면이 있다. 이렇다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는 근사한 전원주택같은 것을 떠올리면서 도대체 내가 얼마나 좋은 집에 살기에 이렇게까지 말하냐고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비판하고 불평하자면 문제는 많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의 단독주택같은 집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좋은 집은 어떤 것인가? 첫째로 그 위치가 외진 곳이 아니어야 한다. 나는 어디 경치좋은 시골에 드문 드문 집 몇채가 있는 그런 곳에 있는 집은 원하지 않는다. 나는 시끄러운 것이 싫다고 말했지만 상가를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아내와 밤산책을 하다가 멋진 호프집이나 카페에서 가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외진 국립공원의 산책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 공원을 원하는 것이다. 말했듯이 우리집 근처에는 큰 도서관이 몇개나 있다. 큰 마트도 있고 천변 산책로도 있으며 좀 걸어가면 전북도청앞의 번화한 술집거리도 있고 빵집도 많고 카페같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둘째로 나는 아파트가 싫었다. 특히 거리나 바깥과 지나치게 분리되어 있는 구조가 싫었고 넓은 베란다나 작은 정원이라도 있었으면 했으며 평수가 충분히 크고 2층집의 구조를 가져서 아내와 내가 집에 같이 있을 때라도 마치 출근하는 것처럼 각자의 공간에 있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이 모든 것을 아주 싼값에 할 수 있기를 바랬다. 7억이니 15억이니 하는 돈이 아니라 전세금으로 1억 5천미만이 되기를 바랬다. 나는 돈도 없지만 설혹 있다고 해도 그 돈을 부동산에 집어 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알겠는가. 몇년후면 나는 또 다른 곳에 가서 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조건은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조건이다. 서울에서 외지지 않은 곳에 있는 단독주택은 전두환이나 박근혜같은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몇십억씩 한다. 전주에서도 농소마을이라는 단독주택 단지의 주택가격은 7-8억씩 하고 그 단독주택들은 그 나름의 문제가 따로 또 있다. 예를 들어서 정원을 가꿔야 하고 건물을 살피는데 따로 돈이 들어가며 냉난방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문제같은 것들 말이다. 한국의 단독주택들은 관리가 힘이 든다. 또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이사를 가려고 하면 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조건들을 들으면서 세상에 그런 게 어디있냐고 할지 모른다. 확실히 이런 모든 조건들을 다 만족하기는 힘이 든다. 그러나 드물게 그런 곳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이 집도 이런 저런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집의 이상에 가깝다. 관리하기 편하고 돈이 그다지 들지 않으면서 외지지 않은 곳에 있다. 복층구조를 가지고 넓어서 한번은 열명 이상의 손님을 받아서 우리집에 재운 적도 있었다. 베란다는 파라솔과 탁자를 놓고 꽃과 채소를 키울 만큼 크고 이 건물도 주변건물도 다 4층이어서 거리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도 없다. 


이게 내가 전주에 사는 이유다. 물론 이것들말고도 이유가 있지만 이 이유들도 아주 중요한 이유들이다. 사실 나는 가끔 한국에서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산다면 어디로 가면 될까하고 생각해 보는데 아직까지는 이거다 싶은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부산이나 서울근처로 가는 것이 탐탁치 않다. 대도시의 번잡함이 싫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도 지금 살고 있는 곳정도는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는데 돈을 어느 정도 더 쓴다고 해도 어딘가 오지로 가지 않는다면 내가 살게 될 집은 훨씬 작은 아파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나에 대해서 개성이 강하다던가 까탈스럽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변명을 해두자면 나의 이런 스타일은 내가 이스라엘,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살아본 다음에 나온 것이다. 나도 젊었을 때에는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어린 두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고 일본의 우리집은 지금의 집보다 훨씬 더 작았다. 첫째로 나는 그래서 이제는 좀 괜찮은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 아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둘째로 일본에서는 내가 요구하는 조건이 그렇게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집세는 좀 더 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저층빌라와 단독주택으로 이뤄진 마을이 좋다. 그런 마을에 공원이 있고 가게들이 드문 드문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이런 곳이 엄청나게 가격이 비싼 곳이 아니면 시골에나 있지만 일본은 대도시 한복판이 아니면 많은 곳이 이렇다. 나는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살러 왔다. 하지만 한국에 내가 좋아하는 마을이 이미 거의 없다는 사실은 좀 슬프다. 한국의 평범한 사람은 대개 닭장같은 아파트에 갇혀 있다. 서울에서는 30평아파트가 6억 7억씩 하니까 그런 아파트라도 빚없이 자기 집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꽤 성공한 사람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건 나로서는 잠시 잠깐 참을 수 있는 환경일 수는 있어도 그다지 마음에 드는 삶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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