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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술집 유감

by 격암(강국진) 2019. 6. 25.

19.6.25

영국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안주 없이 그냥 맥주만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안주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서 안주 없이 술만 먹는 사람은 알콜중독자처럼 바라본다. 하지만 서양은 좀 다르다. 안주보다 술자체에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1990년대에 처음 가본 미국이며 유럽의 펍은 맥주가 50가지쯤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뭘 골라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와인도 와인을 골라주고 추천해주는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로 종류가 많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한국에서 술이라면 맥주나 소주였고 맥주는 두가지 종류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본래는 우리나라도 아주 다양한 전통주의 전통이 있었는데 그걸 법으로 금지해서 다 없앴을 뿐만 아니라 맥주 시장도 독과점이 되도록 법이 있다. 주류를 생산해서 팔려면 그 규모가 작아서는 안되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서양은 그렇다치고 일본만 해도 지역마다 자기 맥주나 사케를 자랑할 정도로 다양한 맥주나 청주가 있는데 우리나라만 전국민이 한두개 맥주만 마셨다. 이런 상황은 최근에야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진정한 극복과는 아직 거리가 먼 것같다. 다시 말해 우리의 술문화에서 아직 술 자체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였는지도 모른다. 술집이 술에 집중할 게 없으니까 차별성을 노린다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안주와 인테리어정도일 것이다. 파전이나 두부김치, 닭튀김, 감자튀김과 소세지는 예로부터 흔한 안주였고 회나 매운탕과 함께 술을 먹는 문화도 있으며 노가리나 황태구이 그리고 오징어 구이는 인기 있는 술안주였다. 전주에는 막걸리 집 문화가 있다. 이것은 정식 음식점 부럽지 않게 화려한 안주들을 내놓으며 막거리를 마시는 문화다. 나는 이 모든 문화를 애주가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파전이나 치킨을 보면 한잔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는데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이게 다 삶의 낙이며 특히 서민의 낙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이 음주 문화가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커다란 변화의 예감을 받는다. 일본에서 살다온 내 입장에서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날 거대 체인점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자영업 술집들을 대부분 문닫게 할 것같다. 이것은 자영업자들의 입장에서는 큰 비극이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그 자영업자들 당해도 싸다 싶은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한국에서 술집 장사하는 사람들은 참 성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술집이라지만 한국의 술집은 술에 별 차별성이 없으며 따라서 술집의 상품이란 상당부분 안주와 인테리어다. 그런데 술집주인이 인테리어를 하는게 아니고 인테리어는 돈을 주면 업자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인테리어라는 것도 돈을 들였다는 것이지 대단한 차별성이 있어 보이는 집도 별로 없다. 그러니까 결국 안주만큼 술집에서 중요한 게 없다. 술집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상품이란 안주 뿐인 셈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한번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술장사를 하는가? 여러분이 장사를 하려고 하는데 삼계탕집이나 육개장집이나 중국집을 돈이 있다고 그냥 시작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맛이 없으면 그런 음식 누가 먹을까 싶어서다. 이에 비하면 술집은 치킨 체인점, 커피숍과 함께 심리적 저항선이 낮다. 술집은 이상하게 같은 음식이라도 더 비싸게 받고, 음식의 질이 떨어져도 부끄럽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술집안주가 이정도면 훌룡하지라고 자부심을 가질지 모르지만 그 술집에서 술을 안팔고 음식만 판다고 하면 그 가격에 그 맛에 그걸 사먹으러 올 정도의 술집은 한국에 별로 없다. 

 

아주 많은 술집이 조금 생각해 보면 소비자입장에서는 화가 날 정도로 무성의 하다. 첫째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안주도 음식이라는 생각이 흐리다. 음식점에서 파는 프로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의 음식인데도 안주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관대해 진다. 둘째는 안그래도 본래 제품개발의지가 없는 단순한 안주들인데 그걸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형편없다. 그건 대개는 아주 짧고 부실한 교육을 받은 알바가 요리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국의 술집이란 종종 사장이란 사람이 가진게 돈밖에 없는 가게다. 새로운 레시피도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가 계속 요리할 성의도 없다. 몇십년전의 한국 술집들은 지금보다 허름했지만 그래도 요리의 기본이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했다. 무슨 무슨 할머니가 구워주는 파전이며 오징어 구이가 맛있다더라하는 것은 재료 이전에 그 할머니들이 평생을 요리하면서 나름 쌓은 요리에 대한 기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주로 인테리어에 돈을 좀 들였을 뿐 라면도 안끓여먹어본 것같은 사람들이 장사를 하는 것같아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게 과장인지 두가지 음식을 생각해 보자. 맥도널드나 버거킹에서 싼 세트 메뉴는 5천원이 안된다. 햄버거 체인점의 감자튀김은 악명이 높지만 그건 어디와 비교하냐의 문제다. 한국 술집에서의 감자튀김은 종종 햄버거 체인점의 몇배나 비쌀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맛도 그보다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요즘은 혼자 집에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도록 재료도 잘 판다. 코스트코같은 대형매점에 가면 냉동감자튀김따위는 싼값에 판다. 그걸 사다가 집에서 데워먹어도 한국 술집의 감자튀김류보다는 훨씬 맛있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몇번 먹어본 소세지 모듬 같은 경우에는 그냥 먹을만하네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슈퍼에서 사온 소세지를 끓는 물에 데치기나 하면 되는 이 요리가 어떻게 이정도 밖에 맛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갈정도인 경우가 많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일본에서는 가볍게 맥주한잔하자고 하면 그건 대부분이 체인점에 가자는 것이 된다. 물가가 서로 다르므로 싸다고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위에서 한 불평같은 것은 대개 하기 어렵다. 체인점에서는 원가계산해서 열심히 제품개발하기 때문에 그 안주를 내가 집에서 해먹으면 그 맛도 안나고 그 가격에 해먹기 어렵다. 

 

그럼 자영업 술집은 없는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대개 좀 더 비싸고 허름하다. 대신에 더 음식맛이 좋거나 더 손님에게 친화적이다. 일본가게야 체인이든 자영업가게든 다 친절하지만 자영업 술집은 말하자면 단골을 만들어 그들과 인간적 관계를 가지는 그런 술집인 경우가 많다. 일종의 클럽같은 느낌인 것이다. 

 

결국 지금의 한국의 술집 상황은 매우 위태롭다. 아마 5년후쯤이면 제품개발 제대로 하고 직원교육 제대로 시킨 체인점들이 시장을 싹쓸이 하게 되지 않을까? 수 많은 술집들이 지금도 금방 금방 망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그럴 것같다. 아무쪼록 소비자에게도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자영업자에게도 모두 좋은 일이 될 수 있는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가볍게 맥주 한잔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수없이 많은 가게가 있는데도 별로 갈 곳은 없는 이런 상황은 유쾌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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