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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한옥마을에 대한 아쉬움

by 격암(강국진) 2019. 4. 23.

오랜만에 전주 한옥마을에서 아내와 산책을 했다. 스카프를 사고 싶어하는 아내가 가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전주에 사는 나지만 한옥마을에 가 본 것은 오랜만이다. 이 사실이 한옥마을에 다녀온 뒤에 더욱 깊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오랜만에 본 전주 한옥마을은 아쉬움이 짙었던 것이다. 전보다 활력이 줄어든 것같고 남아 있는 것들이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오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오류는 자기를 모르는 오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물고기는 물을 모르고 새는 하늘을 모르는 오류랄까. 사람들이 왜 전주에 올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한옥마을에 올까?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답이 있지만 가장 안전하고 인정할 수 있는 답은 바로 전주를 보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전주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뭘 보여줘야 하는 것일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은 전주의 현실을 보면 우리는 흔히 손님이 이런 걸 좋아할꺼야라고 생각하면서 그걸 주려고 하는 것같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큰 착각이 되기 쉽다. 말하자면 이런 오류다. 매일 같이 산삼을 먹는 마을이 있다고 하자. 이 마을에서는 산삼이 너무 흔하다. 그래서 타지에서 사람들이 구경을 오는데 손님이 오니까 그 마을 사람들은 손님에게 그 흔한 산삼을 주는 대신에 그 마을에는 별로 없는 더덕이나 도라지 무침을 대접한다면 뭔가가 크게 잘못된거 아닐까? 게다가 더덕이나 도라지 무침이 장사가 잘돼서 산삼이 사라진다면 진짜로 잘못된거 아닐까?

 

한옥마을의 현재를 보면 나는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커피숍이 흔하고 족보도 모르는 만두가게며 무슨 떡갈비가게며 문어꼬치같은 것이 가득하다. 뭘 팔건 음식의 종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전주 사람들은 그런 걸 안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주 사람들은 그런 걸 잘 만들 줄도 모른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전주에 4년 이상 산 내가 발견한 전주 음식점에 대한 거의 절대적 법칙이 있다. 그것은 전주 현지인이 없는 가게는 절대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가게는 맛없고 비싸다. 전주 사람들은 좋은 가게는 정말 귀신 같이 안다. 그리고 굉장히 냉정하다. 그래서 어딘가에 길을 걷다가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으로 북적대는 가게가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줄서서 먹으면 맛있다. 그것도 대개는 아주 싸다. 반대로 그 동네 전체가 손님으로 북적여도 손님없는 가게는 손님이 정말 하나도 없는데 그런 가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돈이 문제다. 한옥마을이나 유명한 삼천동 막걸리 골목같은 곳은 유명해져서 관광객이 드나들더니 전주 사람은 거의 안가는 곳이 되었다. 뜨내기 손님들이 돈을 뿌리기 시작하면 그 지역이 엉망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돈이 욕심을 부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돈 버는 가게 따로 있고 그 지역을 매력적이게 하는 가게 따로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옥마을에 가면 손님을 대접하는 곳은 남노물갈비집이다. 돼지고기를 푸짐한 콩나물과 함께 주는 남노물갈비는 분명 전주의 맛집이라고 말할 만한 집이다. 그런데 이런 맛집이 사실은 한끼에 만원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돼지갈비를 곁들인 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는데 그렇다. 그런데 그 옆에서 커피팔고 무슨 꼬치같은 걸 팔면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는데도 남노물갈비 이상으로 돈을 번다. 전주를 매력적이고 가치있게 만드는 가게는 돈을 못벌고 전국 놀이공원에 가면 어디나 있는 것들이 돈을 번다. 지난 몇년 동안 한옥마을에서 그나마 내가 곧잘 가던 가게가 둘이나 사라지거나 이사했다. 하나는 치즈빵집이었고 또하나는 외할머니 찻집이다. 반면에 내가 안가는 가게들은 다 성업중이다. 

 

나는 음식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 음식의 기본이 그렇고 특히 전주 음식의 기본은 장맛이다. 고추장 된장에 양념장과 젓갈의 맛이 바로 전주의 맛이다. 그러니까 전주의 맛은 김치에 있고, 청국장이며 시레기국같은 국물에 있고 각종 나물반찬류에 있는 것이다. 고급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전주 음식의 본령이 아니고  심지어 전주 사람은 잘 먹지도 않는 비빔밥조차 전주 음식의 핵심이 아니다. 

 

전주에 산다고 해서 내 입맛이 곧 정답은 아니겠지만 결국 냉면, 보쌈, 칼국수나 소면, 팥칼국수, 코다리찜, 육개장, 보리밥, 물갈비, 청국장이 전주음식이고 이도 아니면 그냥 있는 반찬주는 백반인 것이다. 일전에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전주에서 가까운 충남 서산 해미골목을 할 때 백종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리굴젓이면 그냥 끝이라고. 그게 메인이 아니고 그저 반찬인데. 

 

본래 한국음식은 장맛이라 맛있는 전라도 음식에는 내가 보기엔 태반이 이름이 없다. 왜냐면 맛있게 무친 나물 한그릇이 맛집에 가면 그렇게 맛있는데 그건 그냥 공짜로 얼마든지 주는 반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주의 나물반찬이 타지의 나물반찬과 같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서 전라도가 음식으로 유명한 것이다. 전라도가 무슨 한우나 돼지고기의 육질이 뛰어나서 유명한게 아니다. 

 

그러니까 전주한옥마을이 전주의 관광지라면 거기에 있어야 하는 것은 평범한 백반집골목이나 팥칼국수골목에 보쌈집골목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족보도 없는 이상한 타지 음식을 팔거나 아니면 현지 사람들이 매일 먹는 만원내외의 가성비좋은 음식이 아니라 초호화 음식들로 업그레이드된 것을 판다. 엄청 비싼 한정식 같은 것말이다. 전주 음식축제에 가봐도 무슨 화려한 궁중음식들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다. 전주 일반 시민들이 그런 걸 매일 먹고 있는가? 비빔밥축제? 전주 사람들 비빔밥 먹는 사람 별로 없다. 

 

전주입맛과 문화가 그렇게 고급스럽지 않다. 예를 들어 한옥마을의 유명 음식점 중의 하나는 베테랑칼국수인데 여기도 그저 좀 특이한 6천원짜리 칼국수를 파는 분식집이었다. 요즘은 가격도 7천원으로 올랐지만 무슨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니다. 그저 가성비다. 나는 전라도에 와서 팥칼국수를 처음먹어봤다. 첫째로 특이하다. 둘째로 좋은 집에 간다면 그 팥칼국수의 팥죽이 어느 다른 서양식 단밭죽집의 팥죽보다 훌룡하다. 이런 걸 거의 국수그릇으로 한대접을 주는데 7천원이다. 내가 종종 가는 코다리 집은 만원짜리 세트를 시키면 코다리찜을 주고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포함한 반찬이 무한리필이다. 전주의 문화라는 가맥은 가게 앞에서 슈퍼맥주를 마시는 습관에서 나왔고 푸짐한 안주를 주는 막걸리집도 싸구려 술집이지 부자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이게 전주 음식이다. 싸고 푸짐하며 깊은 맛이 있어서 그 맛에 중독되면 타지에 가면 밥이 맛이 없다. 그런데 그걸 관광객용으로 화려하게 만들면 제일 먼저 본질부터 사라진다. 

 

어떤 의미로 한옥마을은 그 인기때문에 사라졌다. 한옥마을은 이렇게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기전에는 전주 시민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고 한다. 나는 겨우 4년전에 전주에 왔으니 그 이전의 모습은 모른다. 하지만 전동성당과 경기전이 있고 향교가 있으며 여러 오래된 가게들이 있었으니 예전에도 지역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했던 것은 맞는 것같다. 

 

그런데 한옥 마을에 타지인들이 미친 듯이 오고 부터 전주 사람들은 안 가는 곳이 되었다. 은근한 옛날동네라기 보다는 놀이동산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옥마을은 더이상 전주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 면이 있다. 전주 사람의 향기가 점점 줄었기 때문이다. 

 

전주는 화려한 색칠을 하지 않을 때 그 본질이 빛난다. 그런데 돈때문인지 아니면 허풍을 치면서 꾸미기 좋아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그 본질이 개발로 사라진다. 이제 제발 전주의 진짜 모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힘을 발휘해 줬으면 한다.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뭐 이런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뭔가, 그런데도 전주 시민들은 먹고 즐기고 있는 것. 실은 그게 진짜 경쟁력이 있는 전주의 보물이다. 그걸 치장하지도 말고 본래 스타일대로 대접하면 된다. 그러면 타지 사람들은 기꺼이 전주 스타일을 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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