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수평적 시각, 수직적 시각.

by 격암(강국진) 2019. 8. 30.

세상을 보면 사람들이 수평적 사고와 수직적 사고를 반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직적 사고란 강자와 약자로 사람이나 국가를 분류하고 약자를 강자의 은혜로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장과 사원이 있으면 사장이 사원을 먹여 살려 준다, 사원을 보살펴 준다는 식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수직적 사고는 이 세상의 관계를 쌍방교환이라기 보다는 일방교환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한 쪽이 한 쪽에게 은혜를 베푸는 관계라는 겁니다. 세상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런 관점은 흔히 약자의 기여와 노력을 무시합니다. 뼈빠지게 일해도 약자는 여전히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이고 하는 일없이 놀고 엉터리 판단을 하는 강자는 여전히 은혜를 주고 있다고 파악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수평적 사고는 세상을 협동과 교환의 관점에서 봅니다. 수평적 사고를 한다고 해서 세상에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는 여러가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서로간의 계약에 따라 도움과 물건을 교환해줄 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등가교환이죠. 그러니까 강자를 사장으로 보고 약자를 사원으로 본다면 사장과 사원은 노동계약에 따라서 일을 해주고 봉급을 돌려받는 관계이지 일방적으로 사장이 사원을 돌봐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장이 사원을 돌봐주는 면이 존재하겠지만 사실 사원이 사장을 먹여살려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수평적 사고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수평적 사고는 사회를 평등한 개인의 합으로 보는 현대적 사상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적어도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변에 대한 고마움을 망각하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기주의적 인간을 만들기 쉽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등가교환에 의해서 이뤄진다면 강자건 약자건 우리는 모두 남에게 빚을 진게 없겠죠. 반면에 수직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인연이나 기회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왜냐면 결국 세상일은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은혜를 베품으로써 진행되는 것이니 어떤 하나의 만남이 인생을 바꿔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수직적 사고는 봉건 시대의 잔재인 것이 맞지만 부모, 인생의 멘토, 가장 소중한 친구등 아주 가깝고 소중하고 개인적인 만남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수평적 사고의 문제를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등가교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소중한 것을 우연한 인연으로 인해 받는 경우가 분명히 있는데 수평사고에 중독되면 그걸 못보기 시작하고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구시대적 사고나 부패한 사고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자꾸 일반론적 관점에 빠져서 내 코앞에 있는 소중한 것을 잊게 될 수 있습니다. 


수평적 사고의 두번째 문제는 앞에서 말한대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일반론적 관점만을 자꾸 취하게 만든 나머지 일이 비효율적이 되게 만든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에서 공고도 안내고 그냥 총장이 아는 사람으로 교수를 뽑으면 부정한 취업이라고 야단일 겁니다. 하지만 짜장면집에서 배달원을 고용하는데 주인이 그냥 아는 사람 불러다가 내가 너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면서 기회를 준다면 그 것에 대해서 부정취업이니 특혜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형식으로는 똑같은 일인데 말이죠. 


아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게 왜 다른가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사실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세상에는 회색지대가 있고 의견이 다양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평적 사고에 중독되어 세상을 다 정의롭고 평등하게 하자고 하기 시작하면 그 극단에 이르러서는 효율성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시스템이 지나치게 복잡해 지거나 모순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짜장면 배달원뽑는데 최소 한달이상 채용공고를 내고 엄격히 감사를 받은 채용 과정을 거쳐서 주인의 호불호에 상관없는 객관적 수치에 따라 채용을 하도록 하면 정말 좋은 세상 올까요? 그게 공평한 세상이니까? 


수평적 사고에 중독된 분들은 회색지대를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모두 투명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천원을 횡령한 버스 운전사를 해고할 수 없다면 3천억쯤 횡령한 재벌 총수도 처벌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하나의 일반론적 관점으로 이 세상을 전부 집어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개 천원횡령한 버스운전사는 해고되고 재벌총수는 절대 벌안받는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왜냐면 버스운전사는 시스템과 싸울 돈과 시간이 없고 재벌총수는 그 반대니까요. 현실이 이래도 좋은 세상 만들겠다면서 계속 관념만 논하는 이상론자들은 많습니다. 


수평적 사고와 수직적 사고를 둘러싼 가장 흔한 문제는 세상을 어떻게 보건 사람들은 그것을 자명한 것으로 생각하고, 습관적으로 한쪽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한미일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는 사람은 가장 작은 한국은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를 먹여 살렸으며 우리는 그에 대해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강대국의 은혜로 이만큼 먹고 살게 되었으니 강대국이 뭘 요구하면 다 들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수평적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분노가 이는 말들이지요. 


그렇다면 세상을 수평적으로 보는게 맞을까요 수직적으로 보는게 맞을까요? 세상에 100%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두가지 방식을 다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의 관점은 모두 믿음의 영역에 있지 과학의 영역에 있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로 증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은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평등한 거래를 한다고 해도 우리는 뭔가를 믿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은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누가 우리를 믿어 준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기회를 준 것이죠. 내가 만원짜리를 내밀고 만원짜리 빵을 사는 것은 등가교환이지만 이런 자명한 등가교환도 실은 상호간에 숨어 있는 신뢰가 있으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던가, 내 돈이나 빵은 믿을 수 없다던가 하면 거래는 이뤄지지 않을테니까요. 


세상을 지나치게 수평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일종의 어떤 사회적 게임이 존재하며 그것이 앞으로도 영구히 계속될거라는 것을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법칙이 존재한다는 거죠.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우유가 배달와 있고 수도를 틀면 수돗물이 나오고 컴퓨터를 켜면 인터넷이 됩니다. 이렇게 정해진 틀안에서 당연히 되는게 되는 가운데 등가교환을 계속하는게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질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방에 시장은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존재하는 질서를 존중하고 그것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것을 지나치게 당연시 해서는 안됩니다. 실은 누군가 숨어있는 의인들이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그 질서를 지켜나가고 있는 겁니다. 개인의 의지와 타인의 은혜에 의해서 그 질서를 우리가 누릴 수 있을 뿐이죠. 


반면에 세상을 지나치게 수직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세상을 너무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을 믿지 않고, 질서를 믿지 않고, 사기당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믿을 건 권위와 강력한 개인적 유대뿐이라는 겁니다. 믿지 않으니까 그것이 질서를 파괴하는데 이를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줄설거라고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부터 줄을 안서니까 줄의 파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평등과 정의따위 믿을 수 없다는 거지요. 


아마도 현실적인 태도는 이 두가지를 다 기억하면서 주의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수직한 관점과 수평한 관점 중 하나에 중독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비극이 많은 이유중 하나입니다. 














'주제별 글모음 >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왜 조국 의혹에 무관심한가.   (0) 2019.09.24
아베와 박근혜  (0) 2019.09.02
소통의 순간  (0) 2019.08.28
정부와 국민 그리고 최종무기  (0) 2019.08.04
한일 마찰에 대한 시국단상  (0) 2019.08.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