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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이상적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

by 격암(강국진) 2019. 9. 9.

19.9.9

인간은 모두 자궁에서 왔다. 하나의 세포가 한명의 아이로 자라나는 것이 자궁이지만 자궁바깥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는 자궁은 아이가 일생을 보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곳이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아이는 결코 세상에 충분히 준비가 되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탄생후에는 모두가 성인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특히 독특한 생명체중의 하나인데 태어나고 나서도 성인이 될 때까지 아주 오랜기간 부모에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만 봐도 완전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거의 20년이 걸린다. 사회적으로도 대개는 20살을 성인으로 여기고 대학에 들어가거나 대학에 졸업한 무렵의 사람은 이제 성인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예전처럼 대가족을 이뤄서 가족안의 삶이 보통의 삶이었던 때는 설사 나이가 20이 되고 30이 되어도 부모로부터 독립했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 집에서 결혼하고 또 부모와 함께 살면서 나이들어가며 인간의 삶이란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식의 삶이 가능했던 시절에는 말이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하던 농사를 짓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에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란 무의미한 말이었을 것이다. 

 

예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요즘에도 집안에 상속될 재산이 많은 집들은 여전히 종종 이렇게 산다. 뭔가의 이유로 집안에 이미 재산이 많고 그래서 그 재산을 관리해서 다음 대로 물려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는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인 예는 재벌집안이겠지만 그 정도가 되지 않아도 집안 재산이 몇십억, 몇백억인 집들도 그렇다. 그런 집안은 여전히 봉건적 구조를 유지하는데 왜냐면 그 재산때문에 사람들이 기꺼이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집안에서 인간의 삶은 가문속의 삶이 된다. 즉 가문안에서의 역할을 하고 제약을 받는대신 그 혜택을 노리는 것이다. 뭐로 봐도 독립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 독립이 전보다 더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 되었다. 역시 변화가 빠르고 복잡한 현대에는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삶이 보다 자연스럽다. 국가공동체 차원에서의 보호도 훌룡하다. 이럴 때는 집안의 보호라는 것이 거추장스럽고 오히려 사적인 보호와 간섭이 불합리한 속박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독립을 꿈꾸게 된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면 학생들에게 자주 내가 부모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때의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때 이런 일을 경험했는데 당시 부모님들은 건강하게 잘 살아계셨지만 나는 어느날 밤 문득 언젠가 나를 보호해주는 이 부모라는 벽은 무너질 것이며 나는 홀로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하필이면 그날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날에는 아무 특별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평소에 부모님의 가정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면이 있었고 그 세계를 넘어서는 더 바람직한 세계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 아닌가 싶다. 내 평생의 사색의 주제가 되었던 합리성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모님의 가정을 구세계라고 할 때 내가 더 합리적인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욕망에서 출발되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오랜동안 그렇게 내 인생을 바라보지 않았지만 지금와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내가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을 시작한 때였고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생각한 때였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가 말하는 것에 무조건 따르기 보다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꾸려가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는 부모없이 살아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비로소 세상에 첫 발을 내민 셈이랄까. 

 

개인적인 차원에서 또 가문같은 사회적 구조의 차원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보호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따금 그 보호막이 영원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린 새는 언젠가는 홀로 허공으로 뛰어올라 날아야 한다. 부모의 도움이며 집안의 관습이라는 것이 언제까지고 우리를 보호해 줄수는 없다. 이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작은 새와 마찬가지로 비약을 꿈꾸고 준비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 비약의 순간만큼 인생에 중요한 때도 없을 것이다. 부모역시 자궁과 같다. 부모는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아이는 결코 준비가 다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 나는 좋은 부모가 뭔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부모가 엉망이면 아니 부모가 여기저기 구멍도 있고 좀 인간적으로 느슨하면 자식은 자연히 독립을 더 빨리 꿈꾼다. 그런 경우 부모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이는 자연스레 부모를 잠시 머물러야 하는 곳이며 언젠가는 떠나야 할 단계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사려깊고 자상한 부모는 자식에게 크고 무거운 감옥이 된다. 자식은 그 대단한 부모에게 어떤 식으로든 반항할 수가 없는데 왜냐면 나보다 훨씬 더 생각이 깊고 경험도 많은 부모의 판단이 실제로 대부분이 아니면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식의 독립은 필요하다. 그래야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단하고 좋은 부모란 자식을 삐뚤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서 빨리 나를 넘어보라고 요구하지만 자식은 그 벽이 너무 높아 보일 수 있다.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풍요롭고 치밀한 현대의 교육환경은 거의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를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뭐가 좋은 가를 고민하여 그것을 모두 구비해 놓은 현대의 도시야 말로 아이들에게는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한가지 경험이 내게는 있다. 내가 외국에 있었을 때 한국책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있던 책을 자주 다시 읽었고 구할 때는 잘 선별하여 읽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니 도서관에 가면 산더미처럼 책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외국에 있었을 때만큼 좋은 독서를 한다는 느낌이 없다. 반드시 책 열권이 책 한권보다 더 좋은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갖춰놓은 현대란 아이들을 바쁘고 불안하게 만들뿐 오히려 열악한 환경이 아이에게 좋았던것이 아닐까 싶은 때가 있다. 결핍과 무소유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아이들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이 소화하지도 못할 만큼의 것을 아이들에게 쏟아붓는 식이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다. 근시안적으로 보면 피할 수 없는 선택들인데 멀리서 보면 아이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어딘가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시스템안에 갇히고 마는 것이 아닐까?

 

이런 현실에는 인간적인 변명도 있다. 어린 아이가 비오는 날 거리를 홀로 배회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어째선지 가슴이 먹먹해 진다. 자기 자식이 아니라도 그렇다. 어쩌면 그런 감정은 우리의 기억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들이 언젠가 부모의 보호막으로부터 뛰어올라서 외롭게 거리에 섰을 때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는 것은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세상은 무섭기만했다. 그럴 때 부모의 품은 너무 그리운 것이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의 모습이 우리를 울리는 것은 우리의 이런 기억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과보호로 크는 일이 많다. 한국이 후진국이던 시절 흙탕물에서 뒹굴며 크던 세대의 관점인지 몰라도 그렇다. 하지만 그 결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전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 되었고 요즘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런 영향이 클 것이다. 요즘의 상식적 수준으로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해보면 그걸 어떻게 하나 아득한 것이다. 애를 7-8명 낳아 길렀던 옛날 사람 생각을 하면 신기할 정도다. 이것만 봐도 우리는 아이를 위해서나 부모를 위해서나 뭔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인생에는 여러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부모로부터의 정신적 육체적 독립이다.  부모란 아이를 평생 보호해주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존재이며 아이는 결코 다 준비되어 독립할 수 없다. 복잡하고 빨리 변하는 현대에는 독립이 더욱 중요한데 세상의 흐름은 거꾸로 가고 있다. 풍요로움과 복잡함은 아이를 자꾸 주저 앉힌다. 좋은 부모가 뭔지, 좋은 사회가 뭔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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