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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덧셈의 여행, 뺄셈의 인생

by 격암(강국진) 2019. 7. 2.

19.7.2

주말에는 교토로 유학을 간 딸아이를 만나러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는데요. 모처럼의 먼 여행이었기에 재미도 있었지만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뭔가를 하는 것보다도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특히 일본처럼 내가 익숙한 곳을 여행할 때 더욱 옳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누구나 어딜갈까, 뭘 해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히 내가 가는 곳에서 유명하고 인기있으며 그래서 추천받는 곳이 어디인가를 신경쓰게 됩니다. 설사 교토처럼 몇번이나 전에 가 본 곳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아주 살았던 것도 아니고 또 언제 오랴 싶어서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행은 절제를 하려고 하더라도 그리고 청소년이나 청년의 들뜸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연히 차츰 차츰 할 것, 가 볼 것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본래는 상당히 여유있는 일정이었더라도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간 김에 서점에 들러볼까, 돈카츠 가게나 꼬치집에 가 볼까 그러고 보니 여우신사라는 곳도 매력이 있던데 하는 식으로 생각이 하나 하나 떠오름에 따라 일정은 쉽사리 붐비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행이란 예상밖의 지체가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때문에라도 일정은 여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유명하고 인기있는 곳이 가 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 이름도 없고 전혀 내가 여길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는 곳이 가 볼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실질적으로는 이 두 개의 장소는 실제로 가보기 전에는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지를 미리 전혀 알 수 없는 것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남이 좋아하는 곳이라도 내가 가보면 별로 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기 관광지는 사실 대개 현지인들에게는 인기가 없습니다. 유명한 곳은 넘쳐나는 뜨내기 관광객들이 망쳐놓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은 틀에 박힌 이미지가 넘쳐나는 곳이기 쉽습니다. 일본이라고 하면 사무라이나 닌자가 생각나고 교토라고 하면 절이나 신사 그리고 게이샤가 생각난다면 이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곳, 다시 한번 상업화를 통해서 그 이미지가 더욱 과잉되게 된 곳이 바로 유명한 관광지들인 것입니다.

 

게다가 과잉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관광지는 관광객들의 욕망이 넘쳐나는데 관광객들의 욕망은 교토에 왔으니 내가 이것이 교토라고 알고 있는 선입견에 부합하는 낯설고 이국적인 것을 봐야겠다는 욕망뿐만 아니라 내가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욕망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이 넘쳐나는 곳은 미국화되고 서울사람이 넘쳐나는 곳은 차츰 서울화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교토의 관광지는 가장 교토적인 것같으면서도 가장 진짜 교토와는 거리가 생겨나는 곳이 되게 됩니다. 

 

인기관광지에서 손님들은 바보 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단골들만 오는 칼국수 가게에서는 어떤 의미로 손님도 주인만큼이나 그 가게에 대해 전문가입니다. 오랜 기간 그 가게에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돈을 내고, 어떤 예절을 지키면 어떤 정도의 서비스와 맛을 돌려 받아야 정당한 손님대접을 받는 것이라는 것에 대한 손님과 주인간의 오래된 계약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뜨내기들이 넘쳐나는 곳에서는 손님이 약간 바보나 어린애 취급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아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주인도 차츰 차츰 너는 뭘 모르니 내가 골라주마, 여기서는 사람들이 다 이걸 먹어 그러니 괜히 머리쓰지 말고 주는대로 먹어라하는 식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뜨내기 손님들로 넘쳐나는 곳은 뭔가 어설픈 가짜 이미지만 가득한 곳이 되는데 이것은 오늘날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이미지가 참 구하기 쉬운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유명 관광지의 가치를 더욱 떨어트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달이나 남극처럼 사람이 가보기 어렵고 저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다큐나 언론보도를 통해 우리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많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곳이 오늘날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에펠탑과 일출봉이 실제로 거기에 가서 내 눈으로 본 에펠탑과 일출봉이라면 그 사람은 운이 좋은 것입니다. 왜냐면 실제로는 믿을 수 없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찍은 사진과 동영상속에 나오는 에펠탑과 일출봉만큼 멋진 광경을 그저 관광객으로 가서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일상적이고 흔한 것의 귀함과 특별함을 느끼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김치만큼 한국사람에게 익숙한 음식이 없지요. 어딜가나 공짜로 주는 김치라는 음식 그리고 한국인이 흔하게 먹는 이 김치라는 음식이 외국에서는 귀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진짜 김치가 귀한거지요. 우리는 당연히 김치에는 온갖 양념이 들어가고 잘 익혀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설픈 사람들이 보면 김치란 그저 소금에 절인 배추에 고추가루를 뿌린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일본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음식에는 돈가츠나 우동, 라면이 있고 밥이 있습니다. 초밥도 있지요. 이번에 새삼 느낀 것이지만 일본의 슈퍼에 가보니 한국에서 보다 일본이 역시 초밥이 싸더군요. 또 일본 사람들은 온천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식당이 붙어 있고 노천탕이 잘 되어 있는 온천이 일본 전국에 있습니다. 저는 오랜간 일본에 살아서 그런지 서민적이고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소비하는 음식들이나 장소가 좋았습니다. 

 

물론 슈퍼에서 파는 초밥이며 꼬치며 계란말이는 대단한 음식이랄 것이 없으며 유명 온천도 아니고 그저 그 부근에서나 알려진 목욕탕에 달린 음식점이 일본의 음식을 대표할 것도 아닙니다. 나름 일본 사람에게는 유명하다면 유명하지만 그래봐야 체인점 우동이고 라면인 음식이 일본 우동이나 라면을 대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게 대개는 관광지 음식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특히 가성비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죠. 

 

예를 들어 저는 이번에 커피 체인점 도토루에 갔었고 돈가츠 체인점 와코에 갔었으며 햄버거 체인점 모스버거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저로서는 다 좋았습니다. 한번은 교토대학생들이 버글거리길래 무조건 들어가서 먹은 가정식 음식점같은 곳도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도 매우 좋았습니다. 특히 계획하지 않고 보이길래 들어가 봤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계획에 따른 스트레스와 기대가 없었기에 좋았던 것이죠. 

 

관광객이 가는 곳은 피하고 현지인들이 가는 곳이 좋다라는 원칙은 널리 알려졌지만 생각만큼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관광객들은 맨처음에 말한 피하기 어려운 선입견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역시 유명한 곳, 다녀오거나 먹어 보면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기가 쉽고 그러다보면 차츰 차츰 관광객들만 다니는 곳을 다니게 됩니다. 정신 차려서 주변을 둘러 보면 일본에 왔지만 일본인은 거의 없고 외국인 관광객들만 가득한 곳으로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본의 주택가나 현지 일본인들이 주로 가는 슈퍼나 작은 공원같은 곳을 가는 관광객은 별로 없습니다. 첫째로 관광객은 그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로 설사 우연히 그런 곳을 지나가거나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평범함이 우리에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고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신사도 없고 게이샤도 없는 주택가 골목이나 동네 주민이나 애들과 함께 나와보는 작은 공원이 뭐 볼게 있다고 돌아다니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사진찍을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중요한 것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진짜 사람이고 진짜 음식이며 진짜 자연이죠. 상업화를 위해서 과장된 이미지로 범벅이 된 테마파크의 건물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짜로 생활하고 희노애락을 겪는 진짜 건물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제일 흔한 것이 아파트입니다. 아파트를 보면 뭐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특정인이 생활하고 숨쉰 공간이 이 눈앞에 있는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한국에서 특정장소에 있었던 그 흔한 한 채의 아파트야 말로 진짜 한국의 한조각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교합니다만 이렇게 여행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우리 인생에 대입해 보면 역시 배울 것이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도 중요한 것은 덧셈보다 뺄셈입니다. 남이 좋다고 하는 것, 인기가 좋은 것을 이것저것 모두 기웃거리기에는 인생은 짧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에서는 뭘 하는가 이상으로 뭘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귀한 여유를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귀한 여유가 있어야 선입견과 객관적 이미지 너머에 있는 진짜 일상의 가치를 느끼고 보게 됩니다. 

 

인기가 좋아서 너도 나도 해야 한다고 하는 분야에는 앞에서 말한 유명 관광지의 폐해가 그대로 있습니다. 그걸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서 뜨내기들이 모여서 그 분야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대중적 과학자의 이미지가 좋아서 과학을 하고 학위도 받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학문 커뮤니티가 엉망이 되는 것이죠. 진짜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오히려 왕따를 당하게 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뺄셈이 없을 때 우리는 일상의 귀중함과 가치를 볼 수 있는 여유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새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화려하고 물질적인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선입견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성공이란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등지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되며 자신이 애타게 찾던 것이 눈앞에 있어도 등돌리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시인의 시를 본 사람이 어쩌면 시인들은 이렇게 대단한 경험을 했는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론 있었던 것은 그저 흔하디 흔한 일상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인식하여 자신의 일상을 기적같은 순간들로 만든 시인의 재능과 감성이었죠. 그 시인만 재수가 좋아서 귀한 경험들이 넘쳐나는 삶은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생이란 먼 곳에서 뭔가를 찾겠다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도, 내 손위에도 이미 있으니까요. 그걸 볼 눈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번 여행은 이런 흔한 것의 귀중함을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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