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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일반적인 조언, 구체적인 조언

by 격암(강국진) 2019. 9. 15.

19.9.15

명절이다. 나는 그다지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교훈적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친척모임이 있다보면 와서 말을 거는 조카가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몇마디 인생과 학업에 대해 조언을 하게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조카와 헤어지고 보니 뭔가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강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다 더 강조해서 말해야 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것이다. 

 

일반론의 함정을 피하라. 인생의 성패는 결단과 세부사항에 있다. 

 

우리가 남들에게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일반론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아주 구체적인 지식을 묻는 일이 아니라 가치에 대해 물을 때는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수학문제의 답을 묻는다던가 지금 삼성주식이 비싼가 현대자동차 주식이 비싼가를 묻는다는 식의 지식을 묻는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일반론으로 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내가 그 사람과 다르고 오늘이 작년과 다르기 때문이며 누구도 남의 인생의 결정을 대신해놓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성공했다고 해서 지금이 바로 피겨스케이팅을 할 때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실패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피겨 스케이팅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잘못이다. 문제는 갈림길에 선 사람의 결단이며 그 사람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도 자신이며 결단을 내리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 남에게 조언을 할 때 일반론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 무책임한 사람이다. 남의 손바닥의 아픔을 내가 모르듯 그렇게 살아서 행복할지는 솔직히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도 남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고 책임질 수도 없다. 남에게 전해줄 수 있는 지혜는 오직 일반론의 넓은 그물안에서만 다시 말해 확률적인 언어로만 말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정책을 따라 행동하면 이러저러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면 죽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것이 타인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의 선택이 반드시 어리석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빌게이츠가 성공하지 않았다면 하버드를 자퇴하고 회사를 세우는 일은 일반론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보다 쉽게 단언되었을 것이다. 일반론이란 이런 것이다. 

 

사람은 매우 다른 것같아도 또 어찌보면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결단의 순간이 온다. 그때가 우리의 삶이 중요한 변화를 맞을 계기가 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될 것인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은 그때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때 제대로 자기 길을 찾는 사람은 인생을 성공하게 되고 보람차게 보내게 된다. 자기가 되고 싶은 뭔가가 된다. 

 

이런 선택의 순간에도 일반론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일반론의 의미와 약점을 모르고 그것에 법칙처럼 매달릴 때 일반론은 오히려 우리를 위험하게 한다. 지금 생물학이 인기있다고 인문학공부보다는 생물학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은 올바른 일반론일지 모르나 그런 일반론이 일반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으면 우리는 일반론의 함정에 빠져서 인생을 망치게 된다. 당신은 혹시 늑대들 속의 돌고래일지도 모른다. 돌고래가 늑대들이 흔히 하는 행동을 따라해서 뭐가 된다는 말인가. 

 

어떤 갈림길에서 누구나 하는 선택만 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것을 나는 사실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세상에는 강한 운도 가진 사람이 있으니 어렵다고 할 뿐이다. 왜 그럴까? 누구나 하는 선택만 한다는 것은 경쟁이 심한 길로 가는 것이고 스스로의 희소가치가 없어지는 길로 가는 것이며 무엇보다 나 자신의 취향과 재능을 무시하는 길로만 가는 것이다. 그런 선택만을 하면서 어떻게 성공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성공하고 싶다면,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 우리는 살면서 적어도 몇번은 고독한 결정을 해야 한다. 자아실현이니 정체성찾기니 하는 말이 있지만 그런 말의 사회적 의미는 거의 대부분 이런 선택의 순간과 관련이 있다. 모든 일반론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성공할 가망이 없는 춤꾼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순간이 바로 당신이 춤꾼으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결혼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모양을 가지게 된다.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 경험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우리는 대개 내 문제의 답을 콕집어 말해주기를 기다리거나 예외없이 언제나 통하는 진리라고 할 일반론을 듣기를 원하게 된다. 그 말을 듣고 이제 자기 머리는 멈추고 그 말대로 산다면 고민이 없을 것이니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그런 걸 기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그런 걸 줄 수 있는 척 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오히려 서둘러 당신의 머리와 가슴을 더 많이 쓰라고 권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를 해서는 안된다. 나는 대화가 무의미하다던가 일반론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대화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 정보를 준다. 당신이 선택을 할 때 어떤 댓가를 치뤄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를 준다. 다만 그 정보에 지배당해서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그것을 흡수한 내 안의 자신이 결단을 내리게 해야 할 뿐이다. 

 

이런 부분은 세상을 좀 살아본 나이든 사람들은 대개 다 느낀다. 그래서 조언을 해줄 수도 안해줄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을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겪는 일이 많다. 젊은 사람들을 보면 뭔가 세상을 모르고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는게 분명한데 뭔가 한마디 해주고 나면 그걸 듣고 더 이상한 쪽으로 갈 것같아서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남의 인생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서 자꾸 입이 열리고 만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주자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세뇌를 하는 것이 되고 애매하지만 지혜를 담아보자고 하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되고 만다. 

 

그래서였을까. 조카에게 이런 말을 해주기는 했다. 중요한 것은 내 것이다 싶은 것이 왔을 때 그 길로 가는 거라고 너무 시스템안에 안주하지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도 그 말들을 조금 더 강조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뒷맛으로 남았다. 그런 심정을 명절의 친척들과 대화를 나누고 왔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래서 여기에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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