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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란 법조인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다.

by 격암(강국진) 2019. 9. 29.

법이란 뭘 위해 있는 것일까? 법이 자연법칙의 법과 같은 단어를 쓰기때문에 혼돈이 오기도 하지만 사실 인간의 법은 절대가 아니며 인간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일 뿐이다. 그 목적이 뭔지에 대한 의견이 세세히 같을 수는 없다고 해도 말이다. 


이같은 사실은 종이위의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법의 현장에서 금방 생생한 현실이 된다. 예를 들어 교통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불법주차를 해서는 안되고, 교통신호를 어기면 안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만약 어떤 기술에 의해서 모든 불법주정차와 교통신호위반을 모두 적발하고 법대로 처벌한다면 정말 좋은 세상이 올까? 



만약 뭔가의 이유로 불법주차가 살인처럼 드문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21세기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불법주정차는 그렇게 드물지 않다. 그래서 모든 불법을 모두 적발해서 다 과태료를 물리기 시작하면 난리가 나고 관청에는 항의가 폭주할 것이다. 그런 현실에 대해 법은 법이다라던가 그러길래 왜 법을 어겼어라고 답하는 것은 분명 진실의 일부를 포함하지만 전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법은 인간의 삶을 다 포함하지 못하고 인간은 법만으로 살 수 없다. 그래서 사실 단속하는 사람들도 수차례 경고를 하고 간헐적으로 과태료를 물린다. 최선을 다해서 보이는대로 다 잡는게 아니다. 결국 현실을 생각하면 그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전면 유리를 썬탠한 차가 많은데 법으로 따지면 그것도 전부 불법이다. 아무리 약하게 해도 빛이 투과하는 수준이 다 불법수준이 된다. 법이란게 이렇다. 사문화된 법이 이거 하나뿐이겠는가. 


이게 교통법만 이런가. 조국 수사로 이런 저런 혐의가 나오자 중소기업을 하는 한 지인은 화면을 보면서 이런 독백을 내뱉는다. 저게 화면에서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중소기업중에 저런 죄목으로 걸고 들어가자면 안걸리는데가 없을 거라고 말이다. 이 말이 조국이나 조국친척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경제관련 법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 현실이 저인망으로 훑듯이 탈탈 털면 뭐든지 걸리게 되어 있다는 거 모르는 사람 있는가? 


우리는 이런 예들을 다른 분야의 법들에서도 계속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의 법적용은 불법은 모두 처벌된다가 아니다. 그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이 법앞에 평등하다고? 조국집은 대학교 봉사상 위조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했다는데 이재용집은 압수수색을 얼마나 당했을까? 김학의는 얼마나 수사했고 장자연사건은 어떠하며 재벌가문에서 공금유용하는거 법대로 다 수사하나? 정말 법대로 절차대로 다 할 수나 있나? 그게 바람직하기는 하고 현실적이기는 한가?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너무 순진하거나 위선적인 것이다. 


만약 법이란게 그런거라면 인간이 끼어들 필요가 없다. 몇몇 사람들이 말하듯이 인공지능이 사람판사나 검사, 변호사보다 훌룡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만든 법이 완벽할 수 없다. 그러면 입법도 인공지능이 해야 할까? 법이란 인간적 판단과 재량이 있어야 현실적이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법조인의 권력이 발생한다. 로보트가 아니라 재량권이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법의 환경이란게 이렇다고해서 뭐든지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살인을 하건, 수조원의 사기를 쳐서 엄청난 수의 사람을 거지로 만들건 다 그런거지 하고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법의 현실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끝없는 타협이고 고민이다. 흑과 백일 수가 없고 정치적 사상적 판단이 하나도 없을 수가 없다. 10년전의 정의와 지금의 정의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깨끗한게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 이나라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앞에서 말했듯이 불법주정차가 살인사건처럼 드물다면 우리는 불법주정차를 보이는대로 모두 처벌할 수 있다. 그러면 고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는 많고 주차장은 드물고 도로 상황도 좋지 않은 현실에서 무차별 검거에 나선다면 그 세상은 더 법대로 사는 세상일 수는 있어도 그다지 행복한 세상은 될 수 없다. 그래서 재벌회사에 법적인 규제를 하려고 하면 신문들이 회사를 너무 많이 규제하지 말라고 사설이 터져나오곤 하지 않던가? 그런 이야기는 재벌회사들에게만 통하는 것인가?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법은 뭘 위해 있는 것인가. 다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있는거 아닌가? 그럼 법의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제는 백만명가까운 사람이 촛불을 들고 사법개혁을 외쳤다. 나는 이것이 국민들이 이렇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조인이 법을 개인의 권력으로 사용한다.

법조인이 천원짜리 도둑은 감옥에 넣고 천억짜리 도둑은 수사하지 않는다.

법조인이 응당 그들이 해야할 성찰과 고민이 없다.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이 정부에서 조차도 말이다. 


법은 공동체의 약속으로 신성한 것이지만 인간이 법을 만들었지 법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은 법만으로 살 수 없다. 종이위의 법과 거리위의 법이 같지 않다는 것은 세상경험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래서 판사 검사 변호사 지인들이 있으면 사람들이 든든해 하는거 아닌가? 누가 자기 권리 다 누리고 사는가? 누가 법이 정한 금지선 한번도 안넘고 사는가. 그 법을 적용하는 법조인들은 그렇게 사는가? 적어도 촛불을 든 사람들은 검사들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법을 만드는 것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모두가 모두에게 완벽히 납득할 수 있게 세상이 돌아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한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살려면 편파에 대해 관용의 범위라는 것이 있다.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법을 자기 손의 개인적 무기처럼 휘두른다고 생각하면 국민은 분노하게 된다. 법은 대단하다. 그러나 국민주권은 더더욱 대단하다. 결국 법중의 법인 헌법도 국민주권의 기반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니 법조인들은 겸허한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잘난체 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들도 당신들만큼 잘났다. 당신들이 특별히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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