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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설계

by 격암(강국진) 2019. 10. 15.

어머니의 팔순 기념 여행때문에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워봅니다. 하지만 계속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꾸 들여다 보게 되었는데요. 멈추고 뭐가 문제일까를 생각해 보니 문제는 단순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번 여행을 해 본 결과 여행 계획은 다음과 같이 세우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대충의 정보를 알아볼 것.


이 여행이 괜찮다고 느끼는 이유를 한두가지 찾을 것. 보통 두가지나 세가지가 좋다. 


그 이상 자세한 정보를 얻고 계획 세우기를 중단한 채 여유시간을 둬서 일이 저절로 흘러가게 내버려 둘 것.





전혀 정보가 없는 여행은 위험하고 비상식적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정보를 전혀 모르는 여행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기 쉽습니다. 하지만 특히 요즘에는 정보라는게 워낙 찾기 쉬워서 검색 몇번 하면 기본 정보는 얻을 수 있지요. 그렇게 해서 떠오른 것중에 몇가지 흥미로운 것을 저는 찾습니다. 우동이나 맥주라던가 산의 풍경이라던가 걷고 싶은 거리라던가 타고 싶은 기차라던가 말입니다. 


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이런 정보들을 얻고 계획을 세우기를 빨리 중단하는 것입니다. 전체 계획의 줄기가 보인다 싶은 순간에는 서둘러 계획을 그만 세워야 한달까요. 숙소 정도만 정해 둔다던가 교통편 정도만 정해 둔다던가 몇박 몇일로 갈 것을 정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이상을 하게 되면 여행이 숙제같아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좋다고 하는 것, 유명하다고 하는 것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거기도 가보고 싶어집니다. 그런 것으로 여행을 가득 채워놓고 나면 사실 피곤해서 안좋아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는 그다지 안좋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교토에 간다면 아무래도 유명 관광지는 신사나 절이고 성입니다. 그런데 신사며 절을 계속 본다는 것은 지루하거든요. 그런데도 계획을 세워놓으면 교토에 갔는데 여기는 봐야 한다면서 숙제처럼 여행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런 곳은 또 가기로 하고 이번에는 교토의 이름없는 거리를 산책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하자는 것에 멈추지 않게 됩니다. 


또 계획을 촘촘히 세우면 실제로 여행을 했을 때 문제가 생겨도 그걸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행은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고 묘미입니다. 항상 생각보다는 다르죠. 그러니까 그곳이 낯선 곳이고 낯선 곳이라서 여행을 가는 것이고. 그런데 계획이 촘촘하면 한군데만 문제가 생겨도 모든 계획이 다 밀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 여행 계획이라는 게 오늘만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을 가서 내일의 계획은 전날에 세울 수도 있으며 종종 그게 더 현명합니다. 왜냐면 당시의 현장에서 내 마음과 내가 아는 정보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현지의 사람들에게 물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촘촘히 계획을 세우면 그걸 바꿀 수가 없습니다. 서울 사는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독일 사는 사람이 좋다는 걸 미리 다 결정해 두는 식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아도 우리가 계획을 자꾸 더 세우게 되는 마지막 이유는 불안때문입니다. 여행이란 불확실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불확실성이 두려우니까 우리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그걸 없애는데 씁니다. 예를 들어 더 많은 돈을 들여서 여행을 가면 그렇게 되죠. 불안한 일은 덜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돈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계속 돈돈 하게 되기도 합니다. 비싼 여행이니까 말입니다. 떠나기 전에 미리 돈부터 잔뜩 모아야 여행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확실한 여행이란 참으로 재미가 없는 여행이며 내가 아는 것을 다시 확인 하는 여행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망치면 다음에 또 해보지하는 가벼운 마음의 여행이 아니고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완벽하자고 하는 여행이 됩니다. 그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면 자기 마음이 가는데로 여행을 하는게 아니라 자꾸 남들이 가라는데로 여행을 하게 되는데 왜냐면 다수결을 따르는 쪽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더 안전할 것같고 더 소득이 좋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여행이 끝나고 나면 진짜로 우리에게 기억이 남는 것은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체험입니다.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봐도 사실 대단한 감흥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사진을 봤고 나 아니라도 수없는 사람이 본 곳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거리를 헤매다 골목에서 찾은 선술집이 내 마음에 꼭 들었을 때 갑자기 파리는 나의 도시가 됩니다. 나중에 파리를 떠올리면 기억에 남는 것은 에펠탑이 아니고 그 골목의 선술집입니다. 


이번 여행이 제 원칙에서 자꾸 벗어나는 것은 저는 지금 다른 사람을 위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좋은게 남에게도 좋을지 알 수 없고 이번에는 훨씬 더 많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실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여행했을 때 어머니도 가장 좋아할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남의 맘을 내 맘처럼 알 수는 없지요. 그게 어머니나 아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도 같이 여행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안전한 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게 어리석다는 것을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지적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이제 마음이 정리되었으니 쓸데 없는 계획은 전부 다 버려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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