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좀 상황이 바뀐 것같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크리스마스는 정말 대단한 날이었다. 교회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산타 선물을 받고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하고 교회에서 하는 행사에 구경도 가는 것이 대단한 축제처럼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만큼 당시의 사회가 가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슬슬 연말이 되고 거리에서 캐롤이 흘러나오면 왠지 약속을 만들어야 할 것같고 서로서로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뭐하냐고 묻기도 하고는 했다. 종교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도 사람이 만나고 싶고 선물이 받고 싶어서 성탄절에는 교회에 가는 사람도 많았다.
이제는 축제가 넘쳐난다. 음악도 넘쳐나며 역설적으로 저작권문제때문에 전만큼 캐롤이 거리에 넘쳐나는 것같지는 않다. 선물도 일년 내내 받는다. 산타의 선물이란게 상대적으로 덜 대단해 보인다. 그래서 인지 주관적인 것이겠지만 요즘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전같지는 않다. 좀 나쁘게 말하면 발렌타인데이처럼 백화점이나 상가의 물건을 팔아먹기 위한 수단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렇게 모든 걸 사회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구세대라서 그런지 여전히 크리스마스에는 데이트를 해야 할 것같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할 것같은 의무를 느낀다. 산타의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집안에만 있는 아들녀석을 보면 왠지 뭔가를 해줘야 할 것같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비슷하게 느꼈던 아내에게 나가자고 해야 할 것같다.
방에 처박혀 있는 아들에게 오늘은 같이 시내에 나가자고 하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역시 요즘 애들에게는 크리스마스는 별다른 날이 아닌 것도 같다. 그들에게는 서운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려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신자인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축하를 할 리야 없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남들이 축제라고 떠들수록 외로울 법하다.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 마스에 자기에게 연락도 없는 것을 쓸쓸해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누구에게 연락을 기다리는 대신에 짧은 한통화의 연락이라도 연말연시에 남에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들도 외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성탄절에 이 오래된 블로그에 방문해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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