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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왜 아카데미 작품상이 필요없는가.

by 격암(강국진) 2020. 2. 6.

요즘 연일 기생충 기사를 읽을 때마다 행복합니다. 자막을 가진 영화로 미국에서 흥행하고 있는 기생충이 세우고 있는 기록들이 기쁩니다. 아마 미래에는 기생충의 기록을 깰 영화가 또 나올 것이고 그러기를 바라지만 아마도 봉준호나 송강호가 지금 느끼고 있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최초로 미국의 벽을 뚫었으니까요. BTS도 마찬가지죠. 앞으로 또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하는 한국가수가 나온다고 해도 그들은 BTS처럼 기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초는 언제나 한번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뉴스를 보다보니 저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더 이상의 영광과 증명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전문인이 아닙니다만 사과와 배를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 과일인가를 논쟁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영화는 미국영화와 차별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생충이 이미 이룩한 정도의 인정을 받고 나면 이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는가 아닌가를 가지고 기생충이 다른 어떤 영화보다 못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유력한 작품상 경쟁작인 1917의 영화평을 기생충의 영화평과 미국의 유명 영화사이트 IMDB에서 비교해 본적이 있습니다. 대중의 선택으로 말하자면 작품상을 받아야 할 것은 기생충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그만큼 미국대중들이 서구영화에 식상해 왔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917을 평하면서 좋은 영화기는 하지만 새롭지는 않고 다큐를 보는 것처럼 감정적인 몰입이 어렵다고 지적하더군요. 반면에 기생충에 대한 댓글들은 찬양일색이었습니다. 


아카데미의 역사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라간 외국 영화는 이제까지 11편이 있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나 와호장룡같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하나도 없었죠. 게다가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기생충이 단연 눈이 띱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탈리아 영화고, 와호장룡은 중국무협영화입니다. 하나는 흔한 서구영화라고 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액션영화에 가깝습니다. 미국 사회를 뒤흔들 영화는 아닙니다. 이에 비하면 장르를 말하기 어렵다는 기생충은 계급격차를 말하는 철학적 영화입니다. 그것도 한국영화죠. 그 차별성이 가장 튑니다. 1917과 기생충을 놓고 좋고 나쁜 것을 따져서 이겨도 엄청난 의미는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명예욕과 인정받고 싶은 심리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두번째 이유는 저는 BTS가 걱정이 되듯이 송강호나 봉준호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과학계에도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슬럼프를 겪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BTS도 2018년에 그들이 세계적 스타가 되었을 때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봉준호를 좋아하는 것은 결국 다른 무엇보다 그가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인기와 그에 따르는 변화가 봉준호와 한국 문화계를 망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듭니다. 이미 그는 유명 감독이 되었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는 것은 더더욱 그를 홍보할 중요한 경력이 되겠지요. 


저는 단순히 인기와 돈이 봉준호를 자만하게 하고 느슨하게 만드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상으로 걱정되는 것은 봉준호가 할리우드 시스템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사실 옥자와 설국열차를 통해서 이미 어느 정도 미국 시스템 안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영화는 봉준호의 영화면서도 역시 미국냄새가 나는 영화였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영화는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봉준호적인 영화로 칭찬받는 영화가 아닙니다. 어딘지 모르게 뻔한 미국 공식을 따르는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저예산이라면 저예산영화로 만든 것이 기생충이고 그것이 오늘날의 영광을 그와 한국에게 안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봉준호는 물론 뛰어난 감독이지만 그가 역사를 만드는 힘은 그 혼자만의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아마 봉준호가 마블 코믹스 영화를 만들어도 상당히 재미있는 걸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돈도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헐리우드의 거대한 시스템은 느리고, 또 강력하게 봉준호에게 제약을 가할 것입니다. 제작비가 커질 수록 그걸 뽑아내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러니까 할리우드가 봉준호를 찬양하고 그를 흡수하려고 할 수록 봉준호는 파괴될 가능성이 큽니다. 혹평이 아니라 칭찬과 지원에 의해서 말입니다. 미국 시스템이 봉준호를 흡수하는 것이죠. 한국이 미국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봉준호가 미국에 흡수되어 소모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한국과 미국 나아가 세계의 모든 영화애호가들을 위해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이유는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오히려 한국에게는 좋은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몇일 후면 아카데미 수상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화의 질과는 다른 종류의 메세지를 던질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 영화산업이 봉준호를 흡수하기로 결정하는가 아니면 그렇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상이란 과거보다 오히려 미래를 위해 주는 면이 큽니다. 봉준호를 추켜 세우는 것은 그렇게 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일을 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독들은 1917을 최고 영화로 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감독들은 봉준호가 그리 절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차피 봉준호와는 다른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반면에 배우들은 기생충을 최고영화로 꼽았습니다. 미국 배우들은 봉준호가 절실합니다. 왜냐면 지금처럼 마블코믹스같은 영화,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된 영화에서는 배우의 역할이 별게 없기 때문입니다. 봉준호야 말로 배우를 살리는 감독인 것이죠. 작가들도 기생충을 높이 평가합니다. 시나리오의 힘을 기생충만큼 잘 보여주는 영화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생충의 배우들은 이번 소동에서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난리인데 배우들은 아카데미 후보에도 거론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하나는 아니겠지만 그건 할리우드가 기생충의 배우를 써먹을 방도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 송강호가 봉준호 아닌 다른 미국 감독을 만나 명작을 탄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겁니다. 미국배우들도 자신들이 송강호와는 다르다는걸 압니다. 송강호를 상줘서 자기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지 못해도 기생충의 가치는 이제 의심받지 못합니다. 기생충에 관한한 아카데미 작품상은 영화의 질보다 오히려 미국이 한국영화라는 다양성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기생충이 수상하지 못하면 봉준호감독이 말한데로 로컬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이 더 부각되겠죠. 이에 대해서 세계인들과 미국인들이 느끼는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할리우드의 지속적인 몰락과 한류의 빛나는 미래를 의미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이 한국영화를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없을 정도로 가망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지 못해도 기생충의 화제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미국 영화계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지겠지요. 그것은 오히려 미국 대중으로 하여금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하는 흐름을 가져 올것입니다. 


언뜻 무리한 이야기같지만 거꾸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인이라면 저는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게 미국에게 좋은 일이니까요. 결국 그 반대는 미국에게 나쁜 일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겠죠. 미국 아카데미가 주는 상에 취해서 행복해 하는 것보다 그게 더 좋습니다. 


2019년의 아카데미 작품상은 그린북이라는 영화였습니다. 한국에서 누적관객 44만명을 기록했더군요. 기본적으로 아카데미는 지역영화제고 한국사람보다 미국사람에게 더 의미가 큽니다. 이제와 새삼 한국영화의 가치를 미국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지나치게 목맬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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