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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by 격암(강국진) 2020. 5. 28.

20.5.28

전직 정치가이자 작가인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총 9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7개의 질문을 던지고 고금의 저술을 통해 그 답을 탐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 질문들이란 다음과 같다.

 

1. 국가란 무엇인가?

2.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3.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4. 혁명이냐 개량이냐?

5.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6.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7.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그래서 국가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 유시민이 이끌어 내는 결론은 바람직한 국가란 선을 행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은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기본으로는 하는 자유주의적 관점과 선의 추구를 내세우는 목적론적 관점의 조합일 때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된다. 그러고 나면 과연 선이나 정의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하는데 유시민은 그것을 무엇보다 헌법에 이미 나타나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걸 다시 정의하고 설명하는 노력이전에 있는 헌법이나 잘 지키자는 말이다. 그는 또한 직업적 정치가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념적 순수성을 어떤 현실적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절대주의자가 되지 말라는 경고라고 나는 이해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대단한 성공인 동시에 비참한 실패이기도 하다. 이 책이 성공하고 있는 면은 분명하다. 다른 무엇보다 국가에 대한 여러 담론들을 대중적으로 요약하여 소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성공했다고 평할만 하다. 내용은 읽기 쉽고 많은 내용들이 잘 요약되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가 한국정치에 직접 참여했었기 때문에 드문 드문 첨부한 한국 정치의 현장 이야기는 매우 생동감있고 흥미진진하다. 따분하고 어려울 수 있는 이런 내용들을 비교적 얇게 요약하여 많은 사람에게 읽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크게 성공한 프로젝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대중을 위한 책을 쓰는 작가로서 이 책은 분명 충분한 성공을 거뒀다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여러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다.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이 책의 초판본이 나온 것은 2011년으로 유시민이 정계은퇴를 선언하기 2년전이다. 이런 시기를 생각했을 때 이 책은 어쩌면 유시민이 한단계 더 높은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쓴 마지막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한계를 점검하는 동시에 자신이 함께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동지들에게 이런 진보정치를 하자는 비전을 제시하고도 싶어서 쓴 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책은 그가 결국 정계은퇴를 했다는 점에서는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서도 비전을 설득하는 것에서도 실패하여 결국 정치를 관두게 되었다고 봐야 할 테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느꼈던 것은 유시민의 포퍼 해석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유시민에게 필요한 요소가 어쩌면 이미 포퍼에 의해 주어졌을 지도 모르고 스스로 자신은 포퍼의 점진적 개혁을 지지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정치를 누가 다스려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만들었는데 포퍼는 이것이 반대로 좋지 않은 지도자가 있을 때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질문을 잊게 만드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시민은 이것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인다. 말하자면 포퍼는 A만 보지 말고 B도 봐야 한다고 말했는데 유시민은 포퍼는 A가 아니라 B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이해한 후에 A도 중요하다는 식으로 포퍼를 반박하면서 플라톤을 옹호하는 식이다. 그런 이유로 포퍼가 플라톤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이는 아마도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위에서 플라톤의 목적론적 국가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포퍼가 마르크스를 비판하면서 말한 그 핵심 요점의 부분을 유시민이 피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현실정치인으로서 오랜간 정치에 몸담으면서 유시민은 이념적 이론적 시스템의 한계를 많이 느꼈음을 책을 읽으면 여러번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유주의 정치권과 화합하지 못하는 진보정치권을 비판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말하는 마르크스 주의 주변을 맴도는 진보는 미래와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선을 행하는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이 책의 결론으로 삼게 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결론을 위해서 아주 중요했던 요소는 이론의 한계와 우리의 무지를 강하게 인지하는 태도다. 그것이 없이는 유시민이 내린 그 결론은 그저 적당한 절충이 되고 말고 이념에 깊이 빠진 사람들을 일깨워서 현실로 데려올 힘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유시민의 책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중적 책으로 명쾌한 장점이 있는 만큼이나 거의 모범사례라고 할만한 이념적 매몰의 특성을 가진다. 그래서 유시민의 책을 읽으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모르는 것이 없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내가 아니라도 유시민이라면 답을 알거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유시민은 오랜 경험을 통해 그 악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래야 한다고도 주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오히려 유시민의 의도와는 달리 이 책의 명징성으로 인해서 이념적 과대몰입에 빠져들기 쉬울 것이다. 

 

내가 말하는 특성이란 바로 이 책의 저자는 논리적이고 일관성있는 언어 체계를 본질주의적으로 이 책 안에서 구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보가 뭔지, 국가가 뭔지를 계속 명확히 정의해 나가는 식으로 책은 진행된다. 언뜻 들으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왜 나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니 일단은 좀 참아줬으면 싶다. 나는 이 요점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이야기를 하겠다.

 

첫째로 이 책에서 국가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하라. 이 책에서 국가는 마치 수소나 중력법칙과 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시공에 따라 변하지 않는 존재처럼 다뤄진다. 수소원자는 다른 환경에 있으면 다르게 행동한다. 중력법칙이 같아도 그 법칙에 들어가는 변수가 달라지면 중력법칙의 영향은 달라진다. 그러나 수소나 중력법칙 그 자체는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즉 천년전이든 지구반대편에서든 수소는 수소고 중력은 중력이다. 모든 수소원자는 서로 완전히 같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국가라는 것을 말할 때 우리는 마치 같은 국가라는 것을 프랑스에서 관찰하고 2천년전에서도 관찰하는 식으로 국가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에 주목하라. 그러니까 국가라는 똑같은 것이 언제나 존재하는데 그것은 이런 조건에서 이렇게 행동하고 저런 조건에서는 저런 특성을 보인다는 식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플라톤이 말한 국가와 로크가 말한 국가 그리고 21세기 현대의 국가 이야기를 다 섞어서 이야기하고 조합할 수가 있다. 그러나 과연 국가가 수소나 중력법칙 같이 시공을 초월하는 것일까? 모든 국가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데 다만 변수가 달라져서 다르게 행동하는 그런 존재일까? 그렇다고 하는 것이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포퍼가 비판한 핵심이고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 주의가 실패하고 유사과학에 머무는 이유다. 

 

또 다른 예는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지극히 당연한 공리에서 논리적으로 전개되어 진다. 그리고 이런 수학체계가 바로 앞에서 말한 논리적이고 일관성있는 언어 체계의 좋은 예다. 그런데 여기서 일어나는 현상은 우리가 수학을 현실 자체와 같은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유클리드 기하학의 개념으로만 보게 되고 그 이외의 것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해 진다. 그리고 바로 이럴 때 우리는 이념적 맹신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포퍼가 열린 사회의 적을 이야기하면서 이데아론의 플라톤을 거론한 이유다. 플라톤이 노예제도를 긍정하고 여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플라톤을 비판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본질주의적인 전개의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렇게 논리를 전개할 때 세상은 매우 명쾌해 보인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누가 물으면 큰 틀에서 인생의 의미가 딱 정해지고 바깥에서 다시 세부 계획으로 전개하는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주장한 것을 나열하고 그 중에서 그럴듯한 것을 하나 골라 이게 인생의 의미가 아니겠냐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그런 의미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사실 무의미하다. 삶이란 그런게 아니다.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새로운 경험으로 우리의 생각을 조금씩 고쳐가는 방법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가 서있는 곳을 정당화하는 절대적 논리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예가 바로 유시민이 의지하는 헌법이다. 우리가 완전한 백지에서 좋은 국가란 어떠한 것인가를 따지기 시작하면 반드시 지금의 헌법이 올바르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헌법은 역사적 경험의 결과이며 우리가 고쳐온 현재라고 생각하면서 거기서 한발 한발 고쳐가겠다는 태도를 가지면 이야기가 다르다. 

 

여담이지만 이것이 바로 확률론에서의 베이지안 접근이라고 말해지는 것이기도 하고 포퍼의 점진적 개혁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포퍼가 꼭 혁명을 부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혁명이 유일한 방법일 때 그것을 하는 것이 점진적 개혁이다. 다만 얄팍하고 근거없는 계산으로 쓸모없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넓은 범위에서의 혁명을 하는게 아니라 꼭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분야로 국한하여 혁명을 해야할 것이다. 

 

책에서 유시민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절대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메세지다. 말을 긍정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실천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맹신자는 자신이 맹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험을 통해 절대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말하는 유시민조차도 책을 본질주의적으로 뭐뭐란 무엇인가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함정을 피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이 책의 핵심적 부분이 되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그래서 책에서 포퍼가 나올 때마다 나는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읽을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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