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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의 문제와 철학의 문제

by 격암(강국진) 2020. 9. 7.

댓글을 쓰다가 어떤 분의 글을 읽었는데 거기서 다시 이번에 힘든 사람들을 선별해서 집중해서 도와주자 같은 말이 나오더군요. 이낙연도 방송에 나와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선별의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힘든게 뭡니까? 누가 힘듭니까? 그걸 쉽게 안다고 하는 것이 21세기에는 굉장한 오만입니다.  

 

모두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자는 말이 말은 그럴듯하지만 별로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선별이 그렇게 쉽다면 우리가 왜 현실적인 문제가 아주 많은데도 병역을 기본적으로 단순무식하게 '일괄처리'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군대가도 아무 문제 없고 오히려 좋은 사람도 있지만 BTS처럼 엄청난 경제적 개인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별이 그렇게 쉽다면 핀셋처럼 사람을 골라 군대를 적절한 기간동안 보내면 될거 아닙니까? 돈내고 안갈 수 있다면 BTS같은 사람들은 일인당 백억을 내라고 한다고 해도 안갈겁니다. 2년동안 그보다 더 벌테고 전세계 팬들이 모금이라도 해서 안보내려고 할테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게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이번에 기사가 났더군요. 이번에 피씨방과 노래방에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이런게 핀셋지원이고 힘든 사람돕는 걸까요? 대한민국에 있는 피씨방과 노래방들의 상황이 다 똑같습니까? 지역에 따라, 가게 규모에 따라, 심지어 개인적 사정에 따라 다 다르죠. 당연히 망해야 마땅한 곳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애초에 취직도 못하고 가게를 열 돈도 없는 사람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가게들 개개의 상황을 누가 어떻게 파악할 것이며 파악한다고 한들 뭐 여기는 79만원 저기는 121만원 이런 식으로 줄 수도 없죠. 

 

문제는 우리가 현실에 이런 저런 이름을 붙여서 세상을 숭덩숭덩 자른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그 몇개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이죠. 피씨방은 힘들다. 약국은 괜찮다. 뭐 이런 식이죠. 그런데 그런 이름하나가 뭘 결정합니까. 요즘 피씨방은 요리를 많이 판다고 하더군요. 그럼 식당에 피씨를 가져다 놓은 것과 피씨방에서 요리를 파는 것은 뭐가 다릅니까. 또 돈을 준다고 해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 돈의 상당부분은 아마 가게세라는 형태로 집주인에게 가겠죠. 그럼 이 지원금은 결국 건물주 지원금입니까? 게다가 한달뒤에는 또 어쩝니까? 

 

생각을 멈추세요. 이런 질문에 답하려고 하지 마십시요. 그보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으니까요.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이게 톱다운 방식의 사고냐 아니면 상향식의 사고냐 하는 것입니다. 톱다운 방식이란 그게 어떤 것이건 위에서 이런 저런 기준으로 뭔가를 하는 겁니다. 자연히 받는 사람들은 수동적인 태도가 되죠. 기껏해야 위에서 정한 기준에 자기를 끼워 맞추게 됩니다. 경제를 채소키우듯 정부가 키운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이겁니다. 어떤 변명과 사려깊음을 말해도 선별지급은 모두 제자리에 서있어라 내가 사려깊게 잘 나눠줄게 라는 겁니다. 

 

반면에 상향식의 사고는 모두가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걸 말하는 겁니다. 각자가 행동하되 자기 판단과 자기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겁니다. 경제를 포함해서 사회 문제의 해결은 각 시민들이 직접 하는 겁니다. 국민모두의 손에 똑같은 돈을 주마. 그걸 어떻게 쓰건 당신의 마음이다. 이거죠. 행동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행동은 여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일괄지급받았을 때 원천기부한 사람도 있지만 받은 사람들도 이왕이면 이 돈을 이렇게 써야겠다 저렇게 써야겠다라며 생각하며 쓰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살릴 가치가 있는 가게를 돕자고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선별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기준을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그 답이 뭐가 되건 사고는 이미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겁니다. 국가는 관리할 채소밭이 되고 정부는 경제를 키우는 곳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복잡다단한 21세기에 이런 사고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 정부가 한류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누구에게 얼마를 주면 또다른 BTS가 나올 것인가를 생각하는 식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선별하기 시작하면 그 선별이 오히려 한국 가요계를 망칩니다. 음악을 1도 모르는 공무원 조직이 음악계의 상전이 되니까요. 정부가 한류 발전 기금 만들어서 우수한 문화인 선정해서 상주고 한류 테마 파크 같은 걸 만들면 정말 한국 문화가 발전하던가요?

 

문화계를 떠나 다른 분야를 생각해 보세요. 어느 분야가 정부 간섭이 참 좋은거라고 생각하는지. 어떤 분야의 사람들이던 정부의 원조는 바랍니다. 하지만 그 원조는 무차별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할 겁니다. 정부가 더 잘하는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격려를 하겠다고 하는 순간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서 차라리 원조를 안하는 게 좋았을 거라고 할 겁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질문 즉 어떻게 선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등장하는 순간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리죠. 

 

아무리 선의를 가장해도 선별은 권력의 문제이고 상대방에 대한 평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의 선별지급에 대한 고집도 정치가들과 공무원조직이 상전노릇을 하고야 말겠다는 아집으로 의심합니다. 내가 답을 알고 있다는 믿음인 것이고 세금으로 주는 것이지만 마치 내 돈주듯이 내가 주겠다는 거죠. 모든 시민들에게 행동할 기회를 줌으로해서 사회가 더 잘 돌아갈거라고 믿는 대신에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민들에 대해 뭘 믿는가, 그리고 공무원 조직과 지식인들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얼마나 믿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국민들이 모두 사악하며 바보라면 일괄지급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공무원과 정부 지식인들이 사악하고 바보라면 선별지급이야 말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기준이 사악하고 멍청할테니까요. 어느 쪽이 현실일까요. 

 

맞습니다. 현실은 어느 극단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일괄지급이 옳지만 저 나라에서는 선별지급이 옳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당장 말 그대로 식료품이 없고 의료비가 없어서 죽을 사람이 있다면 그건 구하고 봐야지 누구에게 미룰 일이 아닙니다. 정부가 행동해야죠. 하지만 이런건 국민 1%, 3%에게나 돈을 지급할 때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일괄지급이 정답이라고 믿습니다. 첫째로 지금이 아주 복잡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지식인들이 멍청하기 때문입니다. 저보다 멍청하다는게 아닙니다. 지금의 세상은 누가 생각을 해도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멍청합니다. 어떤 선별기준이 좋을까라는 질문을 애초에 던져서는 안되는 겁니다. 세째로 그게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지금 이순간에도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는 것에 걸어야 합니다. 중앙에서 공무원과 몇몇 학자들이 모여서 머리를 쓰는 톱다운 방식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짧은 경험을 온 세상으로 생각하면서 이런 저런 줄을 세상에 죽죽 긋고 있을 사람들이 보이는 것같습니다. 피씨방이 어렵던데? 편의점은 괜찮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들은 뭔가를 당연시 하면서 자신이 어떤 가정을 한다는 생각도 없겠죠. 누군가가 이런 기준이 좋지 않냐고 할 때 그 기준은 과연 저를 포함해서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완벽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싸움에 이긴다고 그게 진리가 되는게 아닙니다. 반박하기 어렵다고 중앙집중식 논리가 현실의 복잡함을 이길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런 사고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잘 선별하기 위해서만 생각과 철학이 필요한게 아닙니다. 선별한다는 것 자체가 철학입니다. 그리고 선별하지 않는다는 것도 철학이죠. 이건 우리가 무엇에 의지해야 할 것인가, 지금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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