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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통신을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by 격암(강국진) 2020. 10. 16.

발명이 세계를 바꾸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의 요구가 발명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이공계 전공자로서 나는 통상 어떤 발명이나 고안이 세계를 바꿔왔다는 시각을 택하는 편이다. 전기가 세상을 바꿨다던가 자동차가 세상을 바꿨다 문자가 세상을 바꿨다는 식의 관점이 이것이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그 반대의 시각도 가능하다. 즉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가 발명과 발전을 만든다는 시각이다. 우리는 기계만 보느라 인간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5G 통신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나는 기술적 개발만 강조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식이라면 인터넷은 본래 미국에서 개발한 것인데 왜 한국이 미국보다 인터넷 선진국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을까? 예전의 한국은 인터넷 환경에서 지금 보다 더 압도적인 세계 1등이었다. 한국은 초고속 ADSL 통신이 되는데 미국은 모뎀쓰던 때가 있었고 유럽은 아예 인터넷이 안되는 곳이 사방에 있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외국에 학회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던 1990년대가 그랬다. 아이폰과 아이팟열풍이 불기이전에도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한국에서 나왔고 한국은 pmp라는 전화가 안되는 스마트폰비슷한 기계가 인기였다. 아이러브스쿨이나 싸이는 지금의 SNS의 세계적 붐을 아득히 앞서고 있었고 지금은 메신저 프로그램이 엄청나게 보편화되었지만 초기에는 한국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외국인들은 pmp같은 기계를 보며 한국을 미래사회보듯이 했고 세계 핫스팟의 3분의 1이 한국에 있다는 이야기같은 걸 들으면 세계의 얼리어답터들은 한국에 꼭 와보고 싶어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근본적 이유는 한국사람들이 그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최신컴퓨터를 사기 위해 큰 돈을 들이는 나라가 없다. 유럽같은 곳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21세기가 된지 한참 지났어도 윈95나 윈98같은 옛날 OS가 깔린 컴퓨터를 그냥 쓰고는 했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있었던 1990년에 나는 영국대학교의 PC가 한국의 포항공대보다 훨씬 더 낡은 걸 알고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못살았기 때문에 부자나라인 영국보다 우리나라의 대학이 시설이 좋다는 건 매우 뜻밖이었다. 한국인들은 가정마다 인터넷이 제대로 깔려서 컴퓨터가 매우 쓸모있는 기계가 되기 이전에 고작해야 간단한 게임하고 가계부나 쓰던 시절에도 거금을 들여서 컴퓨터를 샀다.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재빨리 새 기계를 샀다. 

 

이걸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람은 신제품을 좋아하고 낭비가 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좋게 말하자면 한국인은 매우 진보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인은 미래에 관심이 많다. 뒤쳐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래로 빨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유럽사람들이나 일본인들은 상대적인지만 훨씬 보수적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도 좋은데 미래에 꼭 가야하는가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것을 그들은 이미 부자 선진국이고 한국은 가난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가난한 나라가 있는데 그 중에서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꼽을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특히 홍콩이나 싱가포르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말이다. 아마 대만정도나 한국에 비교되겠지만 그 대만도 한국에 비하면 인구는 절반이고 경제규모는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한국에 비하면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라고 말하기에 망설임이 따른다. 즉 가난하다고 다 진보적이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렇게 한국은 진보적인 국가였지만 인터넷 공간은 더욱 더 그랬다. 노무현 정권 이전의 인터넷 공간은 그야말로 진보주의자들의 공간이었다. 노무현은 분명히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다. 지금은 선거에서 SNS나 유튜브를 활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의 힘은 상당히 무시되었다. 그래서 보수 정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거의 실종상태였고 게시판마다 그리고 각종 정치사이트마다 진보주의자들이 모여서 정보를 나눴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노사모라는 집단은 인터넷이 없었다면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초기 인터넷은 진보주의자들의 자유공간이었다. 기득권은 오프라인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싸고 빠른 인터넷은 사회적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인 도구였다. 대자보나 붙이고 전단지나 돌려서 소식을 전하던 197-80년대의 진보는 이제 인터넷을 통해 편하고 안전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보나 보수같은 정치성향을 뛰어넘어 더 넓은 사회속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사회란 인터넷 통신에 일찍 접한 젊고 비교적 풍요로운 베이비붐 세대였다. 

 

한국에서의 인터넷 발달에는 한글의 힘도 아주 컸다고 믿는다. 한글때문에 한국인은 문맹률이 낮았을 뿐만 아니라 한글은 통신에 아주 좋은 문자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압축률이 좋아서 타이핑이 빠르다. 글자수 제한이 있는 트위터를 영어로 하는 것보다 한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보낼 수 있다. 영어는 스펠링 대회가 있을 정도로 말과 소리가 각각이지만 한국은 맞춤법대회따위는 없다. 그만큼 영어에 비하면 말대로 쓰기가 쉽다.  한글은 민주적 미디어다. 

 

이런 인터넷 공간은 다음과 네이버같은 포털 중심으로 인터넷이 개편되면서 급격히 바뀌기 시작한다. 인터넷이 자본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고 노무현의 당선을 본 보수세력도 인터넷의 중요성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한국 인터넷은 진보주의자들의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튜브의 경우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보수성향 유튜버가 진보성향 유튜버보다 훨씬 더 많아 보였을 정도다. 인터넷은 옛날보다 더 넓고 다양한 공간이 되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힘이 빠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초기의 뜨거움이 약간 식은게 아닐까? 과거에는 국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미네르바 사건이 있었다. 미네르바라는 익명의 남자가 쓰는 글의 영향력이 나라를 뒤흔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고라같은 게시판 글보다 유튜브의 힘이 세지만 적어도 아직은 미네르바 같은 슈퍼스타를 배출한 것같지는 않다. 

 

이건 한국만의 일이라고 할 수 없지만 또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일이 보편화된 것이다. 오프라인의 매체를 통해서 소수의 사람들만 자기를 표현하던 시대는 인터넷 시대가 되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이것만 해도 진보고 민주화였지만 사실 글만 해도 모두가 잘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은 이에 비하면 훨씬 쉽다. 스마트폰과 소프트웨어가 발달하면서 더 쉬워졌다. 한글처럼 사진도 매우 민주적인 미디어다. 그렇게 해서 너도 나도 핸드폰 사진을 통해 자기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는 물론 빠른 무선통신의 발달을 크게 촉진했을 것이다. 

 

5G에 대한 선전은 흔히 사물인터넷이나 자율운전자동차 같은 사용 예를 말한다. 하지만 진보성향이 넘치던 게시판 공간, 메신저, SNS, 사진찍기, 한글 등의 사례를 쭉 보다보면 이런 사용예들은 확와닿지가 않는다. 진보, 민주화, 미디어의 교체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설사 그런 응용이 보편화되는 미래가 온다고 해도 정말 5G통신이 아니면 안되는가도 불확실할 뿐더러 그게 1-2년안에 SNS가 유행을 타듯 세상을 바꿀 것같아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쩌면 5G를 위한 킬러앱을 발견하지 못한게 아닐까? 세상이 SNS따위로 크게 부유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왜 아직도 하드웨어에만 신경을 쓸까? 싸이를 만들고도 세계를 페이스북의 세상으로 만들었는데 다음번 미디어가 등장하는 때에도 같은 전철을 밟아야만 할까? 우리는 인터넷통신이 왜 발달하는가에 대해 그것보다는 더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국가적 차원에서 인공지능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은 어떤가? 한국이 구글을 따라 잡겠다는 포부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정도의 기획과 함께라야 5G가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그냥 빠르다는 말이면 되나? 

 

이 방향의 고민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넘기고 한국인의 특징에 대해 한마디만 하고 이 글을 마치기로하자. 빨리빨리 병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한국인은 진보적이다. 한국인은 매우 보편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많기도 하다. 한국인은 지적이다. 한국만큼 교육에 매달리는 나라도 없다. 한국인은 이상주의자다. 이상주의자는 미래를 상상하고 그걸 현실화하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이 모든 특징이 조상의 유산이라고 믿는다.  한국은 제국주의를 거치지 않았다. 한국이라고 무력사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중심은 사상논쟁이었다. 돈이나 창칼로 정의와 미래를 결정하는게 아니라 관념과 이론으로 미래를 탐색해 왔다. 옳고 그른 것을 따져서 옳은 길로 가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식이다. 무식한 힘의 논리는 승복하기 어렵다. 

 

컨텐츠가 없는데 방송국이 있으면 뭐하겠는가. 반대로 컨텐츠가 넘치면 그걸 소통시키기 위한 방송국이 생기기 마련이다. 현대의 정보 고속도로인 인터넷이 한국에서 빨리 발전하는 것은 한국에 컨텐츠가 넘치기 때문이다. 한국이 아직 세상에 널리 퍼지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디어를 잘 찾는게 중요하다. 고속도로만 깔면 차가 다닐거라고 말하는 것은 어느 이상이 되면 설득력이 약해진다. 우리는 와이브로의 나쁜 기억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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