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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사람에 대한 선입견

by 격암(강국진) 2021. 1. 6.

21.1.6

선입견은 고정된 견해이니 생기는 방식이 하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물에 대한 가치평가는 그것을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사람들이 사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말했을 때 두가지의 극단적 견해가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은 독립적으로 자기 인생을 산다는 견해다. 이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행동과 인생은 서로 비교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어느 쪽이 가치가 있다 없다를 전혀 말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반대로 모든 행동과 선택에는 객관적인 가치가 정해져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직관적이건 증거에 의해서건 알 수 있다는 견해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누가 가치있는 인생을 살았는지 누가 가치 없는 인생을 살았는지를 명확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누가 무슨 역할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지 알며 항상 이러저러한 사람은 이러저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령을 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고 받아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저녁은 누가 챙겨야 하고, 누가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견해를 개인적이라고 하고 후자의 견해를 집단적이라고 한다면 개인적 견해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아예 판단과 비교를 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란 애초에 전혀 틀린 집단적 견해를 가지고 있거나 어떤 집단적 견해를 너무 강하게 믿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두 견해에는 모두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개인적 견해가 비현실적인 것은 우리가 같은 세상을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유사성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가 저기 우주 너머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 새로운 생명체에 대해서 뭔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그 생명체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우리와 함께 살지도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나 우리가 소비하는 음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내 옆에서 누군가가 내 입장에서 사소한 일로 자살하려고 든다던가 아까운 물건을 태워버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것은 정말 사소한 일이며 적어도 그렇게 대단한 댓가를 치뤄야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집단적 견해가 비현실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이며 특히 유한한 타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다 알 수 없고 이 세상과 미래에 대해 잘 알 수 없다. 심지어 열심히 노력하고 건강하게 살라는 말도 경우에 따라서는 옳지 못한 조언이 될 수 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실제로는 어떤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빠져 자기를 망치는 길일지도 모르고 건강해지겠다는 노력이 실은 그 사람을 망치는 일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새옹지마의 이야기로 알고 있다. 사람이 남의 일을 어찌 다 알겠는가. 또 자신의 일이라고 어찌 다 알겠는가. 우리는 그저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주변과 자신을 살피며 조심스레 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다. 저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던가, 바람직하게 살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사회적으로 그런 일을 피할 수 없는 때도 있다. 옆에서 살인을 하고 방화를 해도 아 그냥 하나보다라는 생각으로 살 수는 없다. 게다가 사실 보기 나름에 따라서는 인생에 대한 견해란 언제나 상당부분이 아니면 전부 선입견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의미는 그것을 바라보는 문맥에 의해서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좁디 좁은 골목에서 골목대장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일은 정말 대단해 보였을 수 있다. 아니 보인게 아니라 사실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대단하다는 생각도 보기 나름에 따라서는 선입견이 아닐까? 우리가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면 어려서 친구에게 망신을 당했던 일이나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던 일 혹은 소풍을 가지 못했던 일은 별거 아닌 것이라 그것때문에 인생이 다 망한 것처럼 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나이가 들고 나면 이제 우리가 세상을 다 안다는 착각과 오만에 빠질 뿐이다. 그래서 어릴 때의 일은 잊고 보통의 어른들이 중히 여기는 것은 절대적으로 다급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깊게 믿는다. 사실은 지금 실패하는 것이야 말로 지나고 보면 빛나는 미래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지금의 칭찬과 성공이야 말로 지옥으로 가는 통로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른이라고 해봐야 그저 덩치 큰 어린애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망한 내 인생을 고쳐야 하겠다거나 잘못 살고 있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고치려고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종종 뭔가가 크게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는 사람을 보면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돈이 해결책이 되고 자기가 돈을 번 것은 노력과 방법때문이며 운이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 인기가 많은 친구를 보면 부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친구처럼 되려고 한다. 그러나 인기가 꼭 행복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인기란 있다가도 없는 것이며 누구에게 인기가 있는가 하는 것에 따라 그 가치는 전혀 다를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지킬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의 무지와 대면하고 살아야 한다.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화가 나지만 그래도 우리가 누군가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대화도 하고 노력도 해보지만 바뀌는게 없고 좋아지는게 없다면 문제는 우리가 가진 사람에 대한 선입견에, 문제가 뭔지 알고 있다는 나의 생각에 있을 수 있다. 그 대상이 나 자신이건 상대방이건 말이다. 

 

대개의 사람은 히틀러같은 사람이 그저 인기없는 화가로 살았으면 참 좋았을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인기없는 화가를 만나면 할 수 있으면 히틀러가 되라고 조언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인기 없는 화가의 삶은 가치없으며 불행한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인기없는 화가로 살기를 고집했다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을 뿐 그는 사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위해 대단히 훌룡한 일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역사속에서 우리의 역할이 뭔지 모른다. 역사책에 주인공처럼 쓰여있는 사람이 꼭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인기없는 화가는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주변의 누구일 수도 있다. 세상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오만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제 2, 제 3의 히틀러가 날뛰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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