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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아름다움이 낯선 시대 2

by 격암(강국진) 2020. 12. 22.

20.12.22

거의 10년전인 2011년 4월 8일에 나는 아름다움이 낯선 시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의 요지는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멈춰서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체험하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는 참 드물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대해 아 그거 나 알아하는 태도를 취하고 더구나 그나마도 자기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타인이 만든 개념에 근거해서 그렇게 하는 일이 많다. 한 마리의 고양이를 그저 고양이로 여길 때 우리는 그 고양이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느낄 수 없다. 우리는 그 한 마리 뿐인 고양이를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 멈춰야 한다. 이것은 고양이 뿐만 아니라 학생, 여성, 노동자, 기업인등 여러 대상에 대해서도 같다. 

 

종종 성공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집값이 오르거나 주식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같다. 즉 미래를 말할 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때를 말할 때 우리는 그 세계에서는 집값이 어떨지, 주식값이 어떨지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앞에서 말한 점을 기억해 낸다. 우리는 아름다움이라던가 감수성같은 말을 우리 스스로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일을 점차로 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중국의 한한령은 결과적으로 한국에 좋은 시련이 되었다. 지금 중국에서 공장을 빼내는 기업이 있는 가운데 삼성같은 기업은 일찍 그걸 해서 이득을 보지 않았는가. 미국이 중국을 때릴 때 한국이 가장 큰 이익을 본다고 하는 구도는 한한령에 의해서 더 커졌다. 만약 중국과 더 깊숙히 얽혀있었으면 상황은 좀 달랐을 것이다. 

 

중국은 여러가지로 한국에게 달콤한 돈을 제공했다. 중국관광객이나 문화 소비같은 것은 좋은 예중의 한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중국관광객으로 돈을 벌고 중국에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당장은 달콤해도 길게 보면 꼭 좋은 것이 아니다. 결국 중국 자본은 한국으로 들어와서 직접 차이나타운을 만들고, 리조트를 만들며, 식당을 장악하고, 영화 산업에 침투해 들어오게 되어 한국을 중국화하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BTS도 기생충도 없었을지 모른다. 한국은 지금쯤 망조가 들었을 것이다. 나는 한창 중국 사람들이 많이 오던 때 명동에 가보고 명동이 거의 망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한국의 명동이 아니라 중국화한 명동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가 돈과 중국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느끼는 일은 종종 돈이 안되는 일로, 손해 보는 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렇다. 당연히 그렇다,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다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실은 우리는 달콤한 성공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잃고 망하는 길로 가고 있을 수 있다. 지금의 넷플릭스 성공만 해도 그렇다. 미국의 넷플릭스가 주는 자본과 세계적 배급때문에 한류는 달콤한 성공을 맛보고 있지만 그로 인해 역풍도 불고 있다. 세계적 규모로 자본이 들어오니까 한국의 문화가 더 미국화되는 것이다. 이미 세계에는 미드와 달라서 한국드라마를 보는데 한국드라마가 미드처럼 시즌제가 되고 많은 돈으로 특수효과를 넣는 것에 몰두하고 자극적 성적 묘사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돈에 취하면 그게 싫어도,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하기 쉽다. 돈을 쥔 사람의 영향력은 워낙 크다. BTS와 빅히트 엔터의 경제적 성공은 뒤집으면 우리의 관점, 우리의 느낌을 제거하고 세계에서 성공해서 제 2의 BTS가 되려고 하는 것에 집중하기 좋게 만든다. 손흥민의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성공에만 너무 집중하면 한국 리그의 성공보다 외국에서 유명해 지는 일에 더 집중하기 좋다. 한국 방송에 나오면 한국 광고를 찍으면 돈을 얼마나 받을까. 그런데 미국 방송에 나가면 돈을 더 벌지 않는가. 아니 중국에만 나가도 훨씬 큰 돈을 벌지 않는가. 이렇게 다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게 되기 쉬운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저 천천히 보고, 천천히 숨쉬려고 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보려면 그래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이득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 그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건강을 지키고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이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아름다움을 보는 자기 눈을 잃게 되면 우리는 그저 흔하디 흔해서 교체가능한 부속품이 될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움직이게 된다. 한국이 한국적인 것을 잃고 어떻게 번성하겠는가.

 

10년전의 한국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느꼈나 보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세상이 좀 바뀌었다. 반성도 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재가 다양해 졌달까. 하지만 역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는 일은 소중하다. 자기를 지키는 일은 소중하다. 성공하고 있을 때 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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