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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스탑 공매도 사건을 보며

by 격암(강국진) 2021. 1. 30.

미국은 지금 게임스탑 공매도 사건으로 난리다. 사실 한국의 주식이 최근 크게 하락한 것도 이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고 이 공매도 사건은 아직 완결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어디까지 퍼질지 모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2008년의 경제위기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매도란 주식이 떨어질거라고 예측하고 미리 주식을 파는 것을 말한다. 즉 팔기는 지금 팔고 나중에 주식으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원짜리 주식을 백주 팔아서 백만원을 받되 나중에 그 주식이 5천원이 되면 50만원어치 주식 백주만 돌려주면 되는 것으로 주가가 떨어질거라고 생각하면 이득을 보는 투자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지금 이 공매도가 잠정적으로 중지되어 있는데 완전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말이 개미투자가들에게서 나오는 가운데 미국에서 전세계를 뒤흔들만한 규모의 일이 터졌다.

 

사건의 개요를 보면 한 투자회사가 게임스탑 주식의 140%를 공매도 했다고 한다. 즉 전체 주식수가 만주라고 한다면 나는 만사천주를 팔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공매도가 청산되기 전에는 시중의 주식이 크게 늘어나므로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불가능한 거래가 가능한 것이 공매도 제도다. 이걸 알아챈 미국 개미투자가들이 게임스탑의 주식을 열정적으로 사모으기 시작했다. 이러면 약속한 날에 주식을 돌려주는 것이 불가능해지기때문에 주가가 말도 안되게 올라가고 공매도를 무리하게 추진한 회사는 큰 손실이 나게 된다. 지금 그 손실규모가 수십조 규모로 부풀었다고 한다. 

 

나는 이에 대한 소개의 유튜브 방송을 최근 본 적이 있다 (이 방송은 맨 아래에 링크해 두겠다). 이 방송은 한 인터뷰를 소개하는데 그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진행자와 출연자와의 대화에서 출연자는 일관되게 한가지를 주장한다. 그건 바로 개인투자자는 합리적인 분석에 근거한 판단을 하지 않고 기관투자가만 그렇게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같은 생각때문에 주식거래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생겨나고 그때문에 개인투자가들이 분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분노가 월가를 점령하자는 구호로 바뀐 것이다. 

 

나는 이 문제가 우리 시대의 큰 화두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제트기 조종석에 앉은 원숭이 같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면 아주 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서 규칙이 자꾸 등장한다. 정도의 문제지만 이런 문제는 전에부터 있었다. 그래서 대개 국가가 규칙을 정하고 정해진 권한을 가진 사람들만이 심판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점점 복잡해 지면서 이는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되어 간다. 정부도 그걸 다 이해하기 어렵고 회사가 커짐에 따라 선출된 권력도 아닌 사람들이 마치 공무원이나 해야 할 것같은 권한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세상을 뒤흔든다. 설사 공무원이 관련된 일이라고 해도 이야기는 복잡하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사람은 그냥 자기 생각대로 자기 할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돈이 너무 커지면 국민연금이 주식을 사고 파는 일이 국가경제를 뒤흔들게 된다. 그러면 판단의 전문성이나 권한이 애매해 질 수 있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사람이 만약 나는 메뉴얼대로 기계적으로 일한다고 말한다면 그럼 진짜 기계에게 그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적 판단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스템의 많은 부분은 인간이 한다. 그리고 그래서 그들은 권력을 가진다. 인간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기계처럼 일한다고 변명할 뿐이다. 

 

세상에서 흔한 광경은 이런 것이다. 어떤 시스템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전문성이 있고 합리적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게 아주 당연하다고만 생각한다. 공매도에 관련해서는 기관투자가들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개인들은 당연히 불합리한 존재이니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자신들은 예외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자신은 권위를 가져서 마땅한 뭔가 배운 사람이니까 그렇다. 위에서 소개한 인터뷰에서 출연자는 그래서 개인투자가들도 해지펀드 기관투자가만큼이나 합리적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내가 일전에 재난지원금의 선별지급과 일괄지급에 대해 말했던 것도 이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선별지급을 당연한듯이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는 아니라도 상당부분 이런 관점을 당연시 한다. 개인투자가들은 관리의 대상이고 국민은 관리의 대상이다는 식이다. 여기서 당연히 선별지급을 하는 사람은 양치기처럼 관리를 하는 전문가들이고 말이다. 공무원은 일반시민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메세지가 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일반인들에게 나는 경제를 아는데 너는 모른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옳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사실 둘 다 모른다. 그런데 경제학자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기관투자가가 자신은 계량적인 분석을 통해 합리적 투자를 하는데 일반인들은 그냥 추세를 보고 따라가는 비합리적 행동을 한다고 할 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 경우에도 메세지는 같다. 사실은 모르기는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종종 과도한 자신감때문에 기관투자가가 더 위험하다. 나심탈렙의 블랙스완같은 책은 바로 이런 메세지를 위해서 쓰여졌다. 모르기는 모두 마찬가지인데 제도는 이쪽 사람은 권한이 있고 저쪽 사람은 제한이 있다고 말한다. 그때문에 요즘은 월가에서 처럼 거대한 돈이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분노가 쌓이게 만든다. 이번에 그것이 터진 것이다. 

 

이에 대한 돌파구도 있을까? 나는 두가지의 돌파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한 돌파다. 사실 기껏해야 숫자 몇개 보고 그래프 한두개 본다음에 자신은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핵폭탄의 원리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더하기 밖에 모르는 사람과 구구단을 외운 사람의 차이가 뭘까? 없다. 기존의 데이터 분석으로는 안맞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 분석은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때로 나는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보다 더 위험하다. 그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이 자기 모델이나 예측대로 될 것을 생각하고 그 과신때문에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만간 오직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의 분석만이 의지할 수 있는 판단의 근거인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은 가짜 전문가들의 몰락이 예측된다는 것이고 엉터리 권위의 벽이 무너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젠가 새시대가 오면 지금의 전문가들은 마치 과거의 주술사나 무당처럼 보일 것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무당이나 일반인이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무당은 자기가 뭘 아는 것처럼 권위를 가졌었다. 지금의 전문가들이란 인공지능에 기반하여 판단하고 살아가는 사이보그 2의 시대가 오면 과거 시대의 무당에 지나지 않는다. 모르기는 마찬가지인데 몇개의 수식과 몇개의 복잡한 단어로 뭔가 아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두번째 돌파구도 첫번째 돌파구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두번째 돌파구는 믿음을 통한 돌파다. 이건 꼭 종교처럼 들리지만 종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을 통한 돌파란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지말고 직접 만들자는 것이다. 테슬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종교신자같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묘사가 아주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진다. 테슬라가 성공할까? 하지만 테슬라를 믿는 사람들은 테슬라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테슬라라는 비전이 좋다고 믿는다. 물론 이 믿음에는 어느 정도의 근거도 있다. 하지만 그 근거들이 테슬라가 성공할 거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비전을 믿고 그 비전을 성공시키는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고 그 비전안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냉정한 관찰자로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어느 정도 스스로가 그 비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이므로 사람들은 그 세계가 가진 게임의 법칙에 어느 정도 동의한 것이다. 따라서 게임의 법칙이 권위를 가지게 되고 질서가 생기게 되며 내가 위에서 말한 복잡성의 증가로 인해 정당화되기 힘든 권위가 생겨나는 문제가 해소되게 된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한국이 성공 못할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근거없이 100% 성공할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국의 성공을 믿고 그것에 동참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미래를 만든다. 그런 태도는 광신도의 태도가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하는 인간의 태도다. 

 

첫번째와 두번째 돌파구는 인공지능과 창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창조없이 미래는 같은 문제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그 세계에서 사실은 모두가 제트기 조정석앞의 원숭이다. 원숭이들은 왜 저 원숭이는 권한이 있고 나는 없냐고 싸우게 된다. 권한이 불공정한 것은 문제다. 그러나 모두가 권한을 똑같이 가지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답은 인공지능과 창조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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