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해방이래 요즘 처럼 한국이 대단했던 적은 없었다. 국민소득으로 보나, 세계적 지명도로 보나 그렇다. 하지만 한국이 가야할 길은 앞으로도 험하고 멀다. 우리가 대단해진만큼 오히려 우리가 할 일도 더 많아졌다. 겨우 집안정리가 조금 되어가니까 이번에는 세계적인 문제가 몰려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우리의 입지를 다지는 것이다. 불과 1년전에 한 유튜버는 미국인들에게 삼성이나 LG같은 회사가 어느 나라 것인지 아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비록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아마도 한국인 대부분에게는 놀라울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우리가 베트남이나 미얀마같은 나라보다 세계에 더 잘 알려져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렇게 된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동안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국 사람 대부분이 베트남이나 미얀마에 대해 아주 피상적인 지식밖에 없듯이 세계는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상상이상으로 그렇다.
서양은 세계를 오래동안 주도했다. 이 말은 세계가 스스로를 보는 눈이 상상이상으로 서구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한국인도 일본인도 중국인도 서양인이 세계를 보는 식으로 중국을 보고 일본을 보고 한국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서양인들이 사실은 아시아에 대해 매우 무식했고 특히 한국에 무관심했다. 그 결과가 한국에게 유독 처참하지 않을 리 없다. 한국의 현재 이미지는 서구 중심적 시각과 중국, 일본 중심적 시각 모두에게 피해를 입으며 만들어진 것이다.
이 문제는 특히 요즘 중요해졌다. 그 이유는 과거와 지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주로 서구 사람들이 만들어 낸 세계에 대한 그림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존재감이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의 존재감이 형편없었을 때 이 그림은 위협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힘이 커지고 세계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이 그림은 위협받고 수정되게 된다. 그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면 그 그림의 수정은 일본이나 중국같은 인접국가의 정체성과도 깊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사상통제가 심한 중국에서 이 문제는 대단히 위협적인 것으로 여겨질테지만 사실 일본에서도 이 문제는 만만치 않다. 한국이 부상하면서 만들어 내는 세계관의 조정은 많은 중국인은 물론 많은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변화일 것이다.
이것은 체재에 대한 위협이다. 지금의 중국과 일본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자기 국민들에게 들이밀고 있는 그림과 한국이 보여주는 그림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상은 메이지 유신이래 일본을 지배해온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망치고 한국전쟁때 한국과 싸웠던 중국 공산당의 이미지를 망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서양과 우리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문화적 특수성의 주장을 약화시킨다. 한국은 되는데 우리는 왜 안되냐는 말이 나온다. 최근 김치와 한복에서 시작해서 많은 일들에 대해 문화 원조 싸움이 벌어진다는 말이 들린다. 이런 싸움은 한국이 중국과 일본에게 부담되기 시작했다는 표시일 것이다.
국제사회는 완전한 무법천지는 아니라고 해도 결국 이익에만 따라 힘의 논리를 관철하는 조폭의 세계 같은 곳이다. 따라서 단순히 어떤 나라가 천천히 성장하는 것만으로 선진국가 반열에 올라 설 수는 없다. 견제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도약이 필요하다. 한국은 억누르기 보다는 협조해야 하는 나라라는 인정을 세계적으로 받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신생 선진국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미일간의 협력만 해도 그렇다. 미국은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을 협력의 주체로 놓고 중국을 견제해 왔다. 경제규모로 보건 국토의 크기로 보건 미국 사람의 눈에는 한국이 일본에 비해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7배씩 컸던 때도 그리 먼 과거가 아니고 지금도 일본의 경제규모는 한국의 경제규모의 3배는 된다. 그러므로 한일간의 분쟁이 났을 때 그 분쟁이 미국의 국익을 해친다고 생각하면 미국은 아무래도 일본의 편에 서게 된다. 한국의 중요성이 그리 크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이 한국인과 같은 감정을 가지지는 않는다. 세계 2차대전때 미국과 일본이 싸웠다고 해서 미국사람들이 일본을 보는 눈이 한국사람이 일본을 보는 눈과 비슷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미워하는가? 미국과 일본간의 전쟁은 미국이 이긴 전쟁이고 미국이 원자탄을 떨어뜨린 전쟁이다. 한국처럼 일본에게 당해오기만 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일본을 보는 것이랑 미국사람들이 일본을 보는 것은 다르다.
약소국은 안그래도 약한데 강대국에게 떠밀려 총알받이가 되기 쉽상이다. 불공평한 경제적 사회적 조약을 강요받아도 때로 어쩔 수가 없다. 힘의 논리가 설치는 국제무대에서 갑질을 당하는 것이다. 먹고 살자니 말이다. 이건 누구보다 한국이 잘 알지만 사실 일본만 해도 플라자합의를 해서 이 모양이 되는 것을 원해서 했겠는가. 미중 분쟁도 싸우는 건 미중이지만 자기들끼리 진짜 싸우면 피해가 가니까 대리전을 시키기 쉽상이다. 미국이 동맹이니 뭐니 하는 소리에만 몰두하다간 미국 대신에 싸워주고 피투성이가 된 후에 미국과 중국은 화해하고 잘지내는 꼴을 보기 쉽다. 이란에게 갑질을 하는 것은 미국인데 한국배가 납치당하고 북한에게 못되게 구는 것도 미국인데 피해는 한국만 당하는 일이 많다.
사드 배치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미국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본과 맺은 위안부협약도 결국 미국의 압력속에서 생겨난 일이다. 아니면 그런 미친 약속을 해줄 정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명박이나 박근혜같은 생각없는 대통령들이 있으면 남북문제에 대해 우리는 입도 못연다. 다른 나라가 결정하는데로 따르기만 하고 정작 돈은 우리가 다 부담하는 식이 된다. 생색은 다른 나라가 부담과 위험은 우리가 진다. 이래서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언젠가는 도약이 필요하다.
사정은 최근 들어 많이 달라졌다. 보수정권이 몰락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은 성장하고 일본은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경제규모는 한국보다 여전히 훨씬 더 크지만 첫째로 성장속도가 다르고 둘째로 무역규모가 다르다. 무역규모로 보면 이제 일본과 한국은 비슷해 보일 지경이고 어떤 면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중요하다. 더이상 메이드인 재팬이 잘나가던 시대가 아니고 일본경제는 내수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즉 세계는 일본이 없어도 그리 아쉬운게 없는 것이다. 지금도 이러니 5년 10년후가 되면 국제사회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존재감은 역전될 수 있다.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은 지금이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믿는 것같다. 지금 미국에게 눌리면 일본처럼 추락해서 망한다고 생각하고 미국과 경제전쟁을 한다는 느낌이다. 우리도 사실 결정적 순간이 지금이다. 중국때문에 한국의 가치는 올라갔다. 한국을 홀대했다가 한국이 정말 중국편에 붙으면 그 결과가 좋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왜 미국이나 영국이 G7에 한국을 자꾸 초대하겠는가. 게다가 코로나 문제로 일본을 포함한 세계가 주춤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규모로 세계 10등이 되었고 이탈리아의 경제규모를 넘게 되었다. 한류열풍이 뜨거워서 정치적으로도 의미있게 되었다. 이제 한국은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아시아의 국가가 아닌 것이다. 민주정부는 국민의 눈치도 보게 되고 명분이 필요하니까 지명도 있는 나라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도 무시할 수 없다.
2021년은 바로 우리가 확고하게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건 인정받아 기분좋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우리가 확고하게 독립과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인데 한국증시는 선진국지수에도 편입되어있지 않다. 덕분에 니꼴라같은 기술도 없고 생산도 못하는 회사가 말만 좀 잘하면 현기차보다 주가총액이 더 커지는 일이 벌어진다. 군사적으로도 한국은 세계 6위의 군사대국인데 왜 우리가 전작권도 없이 돈까지 줘가면서 미국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까? 한국은 왜 홍콩이나 싱가폴같은 도시국가를 부러워해야 하나? 한국도 금융과 물류의 중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략물자도 아니고 먹을 것이나 의약품을 동포라는 북한에게 줄 때도 미군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현실, 미국을 포함해서 온 세계가 다 북한에 관광을 가도 한국만은 그렇게 못하는 현실은 한심하지 않은가? 북한을 관통하는 가스관이나 철도만 뚫어도 한국에게 큰 이익을 줄텐데 그걸 다 막는 것은 누구일까?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한국의 국제적 위상, 지위,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으며 특히 일본과 중국이 그렇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세계가 코로나로 흔들거리는 지금이 바로 그 벽을 단숨에 뛰어넘기 좋은 기회인 것이다. 코로나는 내년부터 사그라들 것이다. 그리고 강대국들이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면 한국은 다시 더 강하게 견제당할 것이다. 국제질서는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고 일본의 견제는 더 심해질 것이며 대중국 전쟁에서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다.
2021년은 그런 해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지금 허들을 넘지 않으면 다시 우리는 미끄러져 내려갈 것이다. 반면에 올해 우리가 눈부신 한 해를 지내면 세계는 중국과 일본 이외에도 한국이라는 강대국이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기억할 것이다. 보수는 무능하고 겁쟁이고 바보다. 그들의 기본적 시각은 한국은 작은 나라라서 언제까지고 강대국에게 빌붙어야 하니 알아서 우리의 이익을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논조는 일본의 논조와 구분이 안되며 걸핏하면 성조기 일장기에 심지어는 이스라엘기까지 시위에 들고 나온다. 그들은 당당한 독립된 1류 국가가 되자고 하면 철없는 소리라고 말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빨갱이 소리를 한다.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고 트럼프랑 협상을 했으면 트럼프 요구는 뭐든지 다들어줬을 것이다. 조선이나 반도체도 어느 나라가 가져갈지 모른다.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그런 목소리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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