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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캠핑, 캠핑

by 격암(강국진) 2021. 4. 7.

 

몇년 전의 일이다. 아직 차박이 한국에서 인기가 없을 무렵 나는 남해의 한 해수욕장 해변에서 혼자 차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은 매우 좋았지만 매우 불편했다는 것이다. 내 차는 평탄화도 안되서 뒷좌석에 구겨서 졸면서 밤을 지새워야 했고 모기도 한마리 들어오는 통에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너무 좋았다. 차에서 책을 보거나 웹서핑을 하다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면 근사한 하늘과 바다가 보였고 새벽에 해뜨는 바다를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밤새들리던 파도소리도 좋았다. 그렇게 불편한 여행이 아니라면 아내와도 같이 오고 싶은 차박이었다. 

 

그리고 나서 몇년이 지나 나는 전기차를 예약했고 그 차가 나오면 다시 차박을 떠나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차뒤에 매트도 깔 뿐더러 전기차니까 에어컨이나 히터를 계속 틀어도 시동소리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기에 이번에는 아내도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동차 뒤에 깔 매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차츰 요즘의 캠핑인기가 가히 광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캠핑 박람회같은 것이 없나하고 검색을 해봤더니 어디냐의 문제일 뿐 매주마다 전국 어디선가에서는 캠핑 박람회같은 것이 열린다 싶을 정도다. 유명한 고릴라캠핑같은 캠핑 용품가게는 체인으로 전국에 수십개의 매장이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며 홈플러스같은 마트들도 캠핑용품을 잔뜩 가져놓고 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10년전에 일본에서 차박을 할 때는 그냥 집에 있는 두꺼운 이불 가져다가 차에 깔고 했었다. 나는 캠핑용품점조차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더 편하고 좋은 것을 해보겠다고 하니 캠핑 물건의 세계는 그야말로 넓고도 넓다. 매트구경하러갔다가 그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걸 또 들여다보게 되는 식이다. 우리는 어느새 차가 오지도 않았는데 그리들을 사서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그리들이란 한마디로 무쇠솥뚜껑 뒤집어놓은 것처럼 생긴 철제판이다. 생각해 보면 차이가 없는 듯도 하지만 또 이렇게 구워먹어보니 왠지 편하고 맛이 좋다. 웍하고도 다르고 후라이팬하고도 다르다. 왠지 무쇠솥뚜껑을 쓰던 조상의 지혜로 돌아간 느낌도 든다. 

 

 

캠핑은 두 가지 즐거움이 있다. 하나는 여행의 즐거움이요 야외로 떠나는 즐거움이다. 여행이라고 하면 좋은 호텔에 자는 여행도 있지만 캠핑은 조금 더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는 묘미가 있다. 아무리 경치좋은 호텔에 자도 호텔은 자연과 벽을 두고 떨어져있는 느낌이라면 캠핑은 그야말로 자연속에서 머물다가 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호텔과 미니멀리즘적 간편한 텐트라는 양극단 사이는 여러가지 도구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아주 많은 중간단계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차를 사용해서 캠핑을 하는 차박인데 차박이 있기가 있는 것은 여러가지 도구를 쓰면 자동차도 그럭저럭 지낼만한 공간이 되고 그러면서도 호텔방보다는 더 자연에 가까이 머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차박도 스텔스차박이란 게 있고 차박용텐트를 치는 차박이 있는데 이것은 차박용텐트를 자동차 뒷편에 붙이는 형태로 차박을 하는 것이다. 

 

 

애초에 캠핑이라는게 호텔에 숙박하는 여행보다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듯 자연과 나와 사이에 얼마나 벽을 쌓아야 좋은가 하는 것은 개인 취향이다. 거의 몸하나만 가지고 캠핑하는 백팩캠핑이야말로 진짜 캠핑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참을 수 있는 정도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니 장비를 사모으는 것을 무조건 비판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러다보면 거의 야외에 집을 짓다시피하는 사람이있다. 캠핑용구를 너무나 많이 사모은 나머지 돈도 돈이지만 그 많은 물건들에 휘둘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속에서 캠핑을 해도 실제로 그 사람의 마음은 캠핑 장비들안에 있는거나 마찬가지 이므로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해서 텐트를 치는 차박을 그만 두었다는 사람도 있다. 간편한 것이 차박의 장점이었는데 텐트며 장비를 늘리다 보니 너무 일이 많아져서 차박을 왜하는지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캠핑 장비들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캠핑이란 야외로 여행을 가는 것 이외의 즐거움도 준다. 그건 바로 건축의 즐거움이고 새 살림을 내는 즐거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집을 설계하고 그걸 자기 나름대로 꾸며보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대개 금전적인 문제를 포함한 여러가지 문제로 그런 일을 하지 못한다. 제 아무리 간단한 구조를 추구하며 담백한 설계를 한다고 해도 집짓는것이 애들장난같은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설사 돈이 엄청나게 많다고 해도 집에 대해 생각하고 인테리어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일이기에 바뻐서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대개의 사람들은 집안에 이미 물건을 잔뜩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소파가 있고 냉장고가 있고 멋진 부엌이 이미 있는데 그것들이 설사 조금 낡았다고 해도 여전히 쓸만한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새 살림을 내는 일이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캠핑장비들을 보다 보니까 이거야 말로 집짓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텐트하나를 사면 그건 작은 집을 지은 것이다. 이런 집은 어떨까, 저런 집은 어떨까? 땅을 사는 건축도 아니고 고작 텐트를 하나 사는 정도니까 집짓기치고는 엄청나게 싼 집이다. 집을 지었으면 이젠 그 집안을 내 나름대로 꾸미고 싶다. 이런 의자도 가져다 놓고 저런 조명도 가져다 놓는다. 아 냉장고도 필요한데 전원이 없으니 여행용 배터리를 사거나 아이스박스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리할 스토브도 사고 멋진 바베큐 도구도 산다. 폴딩박스같은 것으로 수납공간도 만든다. 

 

캠핑장비를 엄청나게 사모으는 사람들을 보고 거의 야외에 집을 짓고 있다고 느꼈던 내 느낌은 사실 과장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뭐든지 그렇지만 보기나름이고 정도나름이다. 야외에 집을 짓고 있다라고 말하면 왜 그러면 안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집을 정식으로 지어보기에는 능력이 안되고 이게 훨씬 싸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호사스러운 캠핑도구를 갖춘 사람도 소박한 서민의 취미를 즐기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뭐든 보기 나름이다. 

 

물건 하나가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우리의 정신을 바꾼다. 앞에서 예를 든 그리들만 해도 그저 몇만원하는 철판에 불과한 그리들을 사면 여기에 라면을 끓여볼까, 여기에 삽겹살을 구워볼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물건이 우리의 정신을 채우고 쇼핑에 빠져드는 것은 보통 비판받는 일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적당한 선이 중요하다. 아무것도 안하고 적막한 산중에 홀로 앉아있는 것처럼 살아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하고 자극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캠핑이 없는 삶보다는 캠핑도 아는 삶이 더 좋다. 다만 물건에 너무 빠져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그럴 때 나는 바로 글쓰기를 한다. 캠핑용품에 혼미해진 정신을 다잡는데에는 글쓰기 만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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