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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이사하기

by 격암(강국진) 2023. 1. 19.

23.1.19

어쩌다 보니 전주 8년의 세월을 접고 오송지역으로 이사가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어쩌다 아내의 눈에 띄인 집으로 이사가게 되는 것인데 역시 사람 사는 건 참 인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이사라는게 참 힘들고 비싼 거라는 거죠. 간단히 견적을 내보니 포장이사로 우리집 짐을 다 옮기려면 260만원은 나올거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5톤트럭 2대분량은 될거라는 겁니다. 보통 5통트럭 한차 분량의 포장이사가 120만원에서 140만원정도 하는데 타지역 이사이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사다리차 사용비를 또 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우리집 부엌살림을 남들이 만지는 것을 싫어하고, 사실 이런 저런 이유로 쌓여진 버릴 물건들도 많은데 그런 식으로 포장이사를 하면 쓰레기를 다 가져갈 것같더군요. 그래서 돈도 아낄겸 그런 정리도 할 겸해서 최대한 물건을 버리고 또 최대한 짐을 미리 자가용으로 날라두기로 했습니다. 새로 가기로 한 집이 신축이라서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톤트럭 2대분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베란다를 치우고 책박스를 만들어 나르고 부엌살림을 나르는 등의 일을 하니 이사를 한달반이나 앞두고 짐정리를 시작했는데도 일이 많고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픕니다. 책 한박스라고 해봐야 정말 이삿짐으로는 티끌처럼 작은 것인데 그걸 4층에서 자동차까지 계단으로 나르는 일만해도 꽤 만만치가 않아서 그런 일을 열번쯤 하고 나면 정말 힘이 들더군요. 

아내는 8년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올때의 이사가 오히려 쉬웠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한가지 이유는 일본에서는 말하자면 대형 이삿짐 회사에게 부탁해서 한국으로의 이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홈페이지에 가보면 어느 정도 크기의 짐에 가격이 어느 정도라는 것이 잘 나와 있어서 이삿짐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포장은 우리가 직접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검색을 해보니 영세한 업체가 엄청나게 많았고 포장이사가 아닌 것은 찾기도 힘들정도더군요. 아내가 포장을 우리가 직접하면 가격이 어느 정도나 빠지냐고 물었더니 고작 20만원에서 15만원정도 빠질거라는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제 느낌엔 이런 식이면 포장이사를 안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같았습니다. 이 짐을 싸고 푸는게 얼마나 일이 많은데 포장이사냐 아니냐의 차이가 겨우 15만원이라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견적을 내러온 이삿짐 센터 직원에게 물어보니 어차피 포장이 아니라고 해도 대형가전이나 소파등 여러가지 물건들은 자기들이 포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글쎄요. 이게 말이 맞는 걸까요. 한국에서 오랜만에 하는 이사는 뭔가 업체를 하나만 더 찾아보면 갑자기 조건이 달라질 것도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불안정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가격이건 서비스건 크게 비교해 보지 않아도 이정도라는 감이 쉽게 온다면 한국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내는 짐을 정리하다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물건들을 열심히 당근마켓같은 곳에 올려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귀찮고 해야 할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걸 팔려고 하는 것은 일을 더 늘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투덜거리지만 아내는 팔 수 있는 것을 팔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안 그래도 일이 많은 이사는 점점 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리려고 했던 낡은 일본 게임기와 소프트가 있었는데 아내가 그걸 인터넷에 올리니까 여기저기서 난리인 겁니다. 아내는 우리는 만원에 팔았는데 8만원에 그걸 사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몰라서 아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니 이제 아내는 물건들의 가격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판 비설치형 에어컨의 성능에 대해서 이거 문제 없냐는 항의도 들어옵니다. 이렇게 산사태가 커지듯 문제는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 것이 이사이고 아직도 이사는 한달이나 남았지만 해보니 가끔은 이사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8년을 한 집에서 살았으면 너무 늦은 것은 아니지만 이사를 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 힘겨운 이사과정이 마치 8년간 목욕을 하지 않은 사람이 묵은 때를 벗겨내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한집에 살게 되면 아무래도 들어오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적습니다. 언제 쓸지도 모르는 그릇이며 빈 유리병같은 것은 왜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짐 아래로 짐이 숨겨지고 나중에는 뭐가 있는지도 잘 안보이는 부분이 생깁니다.  우리집 베란다처럼 미뤄두었던 숙제같은 것이 쌓입니다. 그 숙제란 막내의 침대 프레임인데 그걸 해체해서 가끔 하는 바베큐의 땔감으로 쓰려고 했던 것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목재는 그런 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프레임을 해체해 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가구로 한 덩어리로 버리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 이걸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면서 2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 숙제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섯불리 어떤 집에 정착하여 이제는 죽을 때까지 거기에 살 것처럼 삽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지만 요즘 세상에는 사실 잘맞지 않는 것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꼭 필요한 것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니까요. 아주 부지런한 분들은 필요없다 싶은 것을 미리 미리 다 버리기도 합니다만 제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5년 10년이 되면 짐을 쌓아놓고 삽니다. 그리고 그 짐이 삶의 질을 위협하는데도 그냥 좀 불편하게 삽니다. 밀린 숙제를 다 하자니 엄두가 나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집에 도배한번 하려고 해도 그건 참 큰 공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 그런 일을 하게 됩니다. 일은 고되고 고민할 것은 너무 많지만 이 과정이 다 지나고 나면 적어도 또 한동안은 꽤 가볍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사람도 같은 자세로 오래 일하면 가끔 일어나 체조라도 해야 하듯이 사람은 가끔 이사도 가야 하는 것같습니다. 하다못해 같은 동네로 가더라도 말입니다. 묵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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