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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내가 나라는 것의 의미

by 격암(강국진) 2022. 11. 21.

22.11.21

내가 나라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많은 중요한 질문들이 그러하듯이 이 질문도 그 질문의 답 이상으로 그것이 왜 중요한지가 더 중요하다. 그걸 알 때 우리는 설사 답을 몰라도 그 질문을 기억하고 계속 던질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라는 것은 많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그 답 자체거나 적어도 그 답의 전제조건이 된다.  예를 들어 최근 나는 막연한 동경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학자를 꿈꾸고 연애를 꿈꾸고 명성을 꿈꾸고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는 것을 꿈꾸는 등 모든 꿈들은 생각해 보면 아직 하지 않았고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꿈이다. 그런데 해보지 않았는데 그게 어떤 건지 어떻게 알 것인가? 이런 의미에서 사실 모든 꿈은 어느 정도 막연한 동경이다. 한국 사람은 몇년전까지만 해도 헬조선 운운하면서 한국에 대해 비관적일 때가 있었는데 그런 한국이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때문에 외국에 사는 누군가에게는 동경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문화 컨텐츠안에 있는 이미지가 그들로 하여금 한국에 사는 것을 꿈꾸게 만든 것이다. 꿈이란 이런 것이다. 상대적이고 어느 정도 막연한 동경이기에 존재한다. 이럴 때 우리는 꿈을 쫒아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의 생활을 지키고 주변 사람들의 권고에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따라야 한다던가 따르지 말아야 한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동경을 가지는 지금의 내가 나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 욕망은 나의 욕망인가? 그것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에게 주입된 것이 아닌가? 내가 프라다 가방이 가지고 싶고 그 가방을 가지기 위해 엄청난 것을 희생한다고 해도 그것은 꿈을 이루는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프라다 가방을 원하는 것이 나일까? 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싶은 욕망을 느껴도 그 욕망은 나의 욕망이니까 긍정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나라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이렇게 우리는 이 글의 처음에서 말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선택과 결정을 의심하게 될테고 그렇다면 합리적으로 산다던가, 어떤 목표를 위해 산다던가하는 말들이 모두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나를 지킨다라는 말도 그 전제 조건이 내가 나라는 것을 느끼거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자기 자신인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나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만드는 또 한가지 측면은 세상에는 분명 자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후회없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없는 불안속에서 자기 삶을 후회하고 남에게 휩쓸려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언제나 그럴 수는 없으며 나름대로 자기 자신인 것에 확신이 있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그것이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고 싶다. 그리고 이 자신감의 근원도 따지고 보면 결국 내가 나라는 사실에 있다. 이렇게 이 사실은 모든 중요한 질문들의 기초를 이루다 시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자. 내가 나라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내가 나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이 당연하고 간단해 보이는 질문에 답하는 일은 실로 쉽지 않다. 나는 아마도 평생 이 질문에 다시 답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내가 나라는 것은 어떤 고정된 나라는 답이 있고 내가 그 답에 대해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과학자라고 본다던가 나를 남편이라고 본다던가 나를 어떤 회사원으로 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나의 정체성을 고정하고 이것이 나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구나 시간에 따라 변해가며 누구나 막연한 방식으로 산다. 예를 들어 내가 과학자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거기서 말하는 삶은 과학자라는 것이 뭔가를 알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삶이다. 즉 과학자가 뭔지가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명예나 지위에 대한 부질없는 집착에 지나지 않게 된다. 

 

마치 노장사상에서 도가 뭔지 정의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명확하게 우리 자신을 정의할 수 없고 할 수 있다고 해도 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모든 것이 명확하게 정의되고 파헤쳐진 것은 아무런 미래도 신비도 없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런 존재를 사랑할 수 없거나 적어도 매우 힘들다. 우리는 나날의 경험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음미하고 그것을 재발견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일이 마치 천번이나 만번은 본 것같은 영화의 재방송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우울해 질 것이다. 그런 것은 자기의 발견이 아니라 좌절이고 죽음일 뿐이다. 어느 방향으로건 한걸음 더 걷는 것에 내일의 의미가 있다. 

 

자기에 대해 모른다면서 어떻게 내가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이 역설적으로 보이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같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내가 나라는 것은 어떤 고정된 답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최종적 답을 찾지는 못할 것이고 그 답 자체에 대한 확신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은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질 때 우리 자신은 조금씩 완성시킨 개성있는 작품같아진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나라는 것의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천천히 판단하고 자기 자신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매시간 이 세상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요구한다. 즉 우리는 어떤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 상황에 대해서 반응을 해야 한다. 물론 여러분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나 회사에 가야하고 혹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야 하고 혹은 아침 운동을 나가야 할 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정해진 일과라는 것이 보통있다. 일터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여러분은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정해진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여러가지 제약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런 계획에 집중해서 아무런 생각없이 기계처럼 일을 해야 할 때가 분명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면서도 꼭 이래야 하는가를 생각할 시간을 자주 가질 필요가 있다. 기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무슨 깊은 연구를 하거나 긴 논리적 사고를 펼치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게 불가능하고 게다가 그게 꼭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자기를 되돌아보고 자기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제주도를 여행가기로 했다면 여러분은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하며 매일의 일정을 짜고 어디서 뭘 먹을지를 알아내기 위해 남들의 평가를 읽는 등 여러가지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에 대한 수없이 많은 정보들을 새로이 확인하고 읽어볼 필요도 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이따금 멈춰서서 자기 안을 살필 필요가 있다. 특히 어느 정도 이상의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만들었다면 반드시 멈춰서서 자기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이제 전에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고, 전에 하지 않았던 어떤 약속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아직 가보지 못한 여행이 이미 전보다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그 머릿속의 가상여행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이런 멈춰섬과 감속은 종종 많은 것을 바꾼다. 비행기티켓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아예 배를 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고, 같이 여행가는 사람의 어떤 것때문에 계획세우다가 다투고 마음상해있었는데 여행의 본래 목적을 다시 기억해 낼지도 모르며, 여행전체를 생각해 보니 아예 이 여행을 가지 않고 그런 시간과 에너지로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종종 힘들게 아둥바둥하던 많은 것들이 애초에 필요도 없는 일이 되고 자신의 계획에 대한 확신도 높아진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이렇게 멈춰서서 자기를 천천히 되돌아 보는 일은 쉽지 않고 어떤 때는 거의 불가능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그 일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좀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멈추고 자기의 박자로 돌아오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몇사람의 진짜 바보가 한 사람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은 너무 쉽다. 그들은 뭐하나 깊게 생각하지 않고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이건 이거고 저건 당연히 저거라면서 뭔가 척척 일들을 결정해 나갈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천천히 생각하고 반응하지 않는다면 작게는 좀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고 크게는 당신의 인생이 바뀌어 버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들이 여러분의 사정을 고려할 것이라는 것은 대개 오해다. 자기 자신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짐승처럼 반응하기 바쁜 사람들이 자기 주변을 얼마나 돌아볼 것인가? 당신이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뭐가 당신에게 중요한지를 그들은 얼마나 고려할 것인가? 생각보다 훨씬 적다. 물론 사람마다 다 똑같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다. 원숭이를 귀한 옷들이 있는 방에 들여다 놓으면 그들은 그게 비싼지,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 옷들을 더럽히고 찢어버릴 것이다. 타인앞에 서있는 우리의 입장이 대개 이렇다. 당신에게 무관심한 그들은 마치 원숭이처럼 당신을 찢어버릴 것이다. 그들에게는 종종 악의도 없다. 다만 그들은 자기 자신도 살피지 못할정도로 둔할 뿐이다. 뭐가 중요한지 알지 못할 정도로 무지할 뿐이다. 

 

안타깝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 사는 일에 게으르다. 그들은 욕망에 빠져서 혹은 불운했던 과거때문에 여러가지 일상에 코가 꿰어 있다. 그래서 스스로의 욕망이건 타인의 욕망이건 뭔가에 휘둘리느라 자기 반응을 살핀지 아주 오래되었다. 말하자면 비싼 가방을 사면서 이건 비싸니까 좋은거야 꼭 가지고 싶어라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멈춰서서 정말 나는 비싼 가방을 가지고 싶은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일상이 오래되면 점점 더 자기 자신은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하나 하나의 선택들이 우리를 온갖 의무에 짓눌리게 만들어 버렸고 인생은 너무 꼬일대로 꼬여서 이제와 뭔가를 되돌아 보겠다는 생각은 두렵다. 그래서 점점 우리는 우리를 감옥속에 넣는다. 이러저러한 것은 원래 당연한 것이며 이러저러한 것은 원래 안된다는 생각이 점점 늘어간다. 시야는 날로 좁아진다. 이러니 하물며 남을 살필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냥 나만 힘들고 나만 우울하다. 이제는 무슨 말을 듣건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불가능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나라는 것은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기를 지켰다는 뜻이다. 내가 나라는 것은 매일 매일 자기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고, 비바람속에서 낡아져 가는 집을 수리하면서 자기를 지키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젊어서는 경험이 없어서 힘들고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조금씩 노화가 찾아오면서 젊을 때의 영민함과 패기가 그리워지게 된다. 독서와 글쓰기는 확실히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도 기적처럼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팔굽혀펴기 한두번 한다고 갑자기 몸이 좋아지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왜 중요한지는 이미 말한 바 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더욱 그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내일 쓰려져 죽는다고 할 때 평생이 그저 혼란속에서 뭔가에 쫒겨만 산 것이라면 안타깝지 않은가. 그건 마치 짐승처럼 쫒기다가 죽는 것같다. 이런 저런 의무를 다하고, 이런 저런 누군가 타인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살다가 쓰러져 죽는 것은 안타깝지 않은가. 우리는 무슨 자원도 아니고 도구도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성찰의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꼭 대단한 철학자가 된다던가, 대단한 사업가가 된다던가, 대단한 작가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가끔씩 멈춰서서 자기의 반응을 살피며 살아야 할 뿐이다. 맛있는 음식의 진짜 맛을 알고, 멋진 풍경을 진짜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필요가 있다. 결국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체험이다. 그걸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인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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