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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인생에 대한 기대에 대하여

by 격암(강국진) 2022. 9. 15.

22.9.15

기대치가 너무 높다라는 것에 절대적 기준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그저 자기가 태어난 환경속에서 이러저러한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는 감각을 배울 뿐이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것에 도달하려고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기대치에 못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불행하다.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불행한 것이 한 예다. 이 정도의 집에는 살아야 하고, 이정도 돈은 옷에 써야 하고, 이정도는 먹는데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래서 반드시 그걸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걸 위해 분주하게 살게 된다. 

 

만약 세상이 전혀 변화가 없는 곳이며 일들이 예상한 대로 일어나는 곳이라면 기대치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자연법칙처럼 확실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일들의 가치를 매우 빠르게 파악하게 되고 타고난 대로 살게 된다. 불만도 없다. 마치 다리가 두 개인 것이 불만인 사람이 없듯이 우리는 당연한 삶을 당연하게 살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지 않다. 삶은 불확실한 것이다. 풍년이 있는가하면 흉년이 있고, 대견한 자식이 있는가하면 안타까운 자식도 있다. 게다가 인간은 본래 자꾸 기대치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 개혁과 진보는 모두 현실에 대한 불만에 기반한다. 딱 정해진 기대치만 가지고 살았다면 인간은 아직도 짐승과 다르지 않게 살았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기대치를 올리고 현재의 상태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기대치의 문제는 오늘날 너무나 심각해 졌다.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은 예전보다 훨씬 크고 세상은 강박적으로 발전을 위해 뛰라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야망을 가지라고 말한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지나친 발달은 이 기대치라는 것을 돈과 소비쪽으로만 집중되게 만든다. 

 

한국은 현대국가중에서 가장 빨리 경제적으로 발전한 곳이며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특히 극대화되었다. 어떤 의미로 한국 사회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구나 그게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우리는 발전해야하고 만족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자가 되려는 노력속에서 뭐가 가치있는 일인가에 대한 생각이 지나치게 단순해 지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 도달했는가? 더 큰 갈망과 불만족이다. 한국의 높은 자살율과 낮은 출산률은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인들에게 보통 사람이란 실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보통의 수입이나 보통의 외모같은 말이 가르키는 것은 진정한 평균과는 매우 큰 거리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통의 가정, 보통의 남자, 보통의 여자, 보통의 노인, 보통의 결혼식과 장례식, 보통의 성적, 보통의 노동자, 보통의 자영업자, 보통의 대학생같은 말을 말하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떠올리는가? 우리의 귀에는 너의 인생은 망한 것이며 분노해야만 한다는 소리가 잔뜩 들리기 쉽다. 그것이 실은 정상이 아니고 보통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스스로를 인생 실패자로 여기기 쉽고 사람들은 진정한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쉽다. 다들 한껏 허세를 부리는 가운데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이런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정도가 너무 심해지면 심해질 수록 문제는 커진다. 마치 달리기가 몸에 좋지만 미친 듯이 계속 달리다보면 이젠 곧 쓰러져 죽을 것같은 문제가 생기는데도 달리기는 몸에 좋은 거잖아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한국은 적당한 수준을 넘었다. 

 

문제는 발전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인 곳에만 있지 않다. 사실 한국이 발전했다라는 말은 주로 국민소득같은 금전적 부분을 중심으로 말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우리가 발전이라고 믿는 어떤 것에 힘을 기울이면 우리는 반대로 어떤 다른 부분은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발전을 외치고 과로를 하는 사람이 반드시 발전을 하려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좋은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계속 완벽한 소금의 양만 외치고 있어서는 요리는 반드시 꼭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삶은 어떨까? 그게 요리보다 간단한가? 

 

우리는 삶에서 뭘 기대하는가? 고급차를 타고 고가의 아파트에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면,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싸구려차를 타고 싸구려 집에 살며 자랑할 직업이 없는 현실을 비참하게 생각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고급차와 고급아파트가 그리고 대기업취업이 결정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차가 없는 사람이 자신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았다고 말해줘도 그런건 믿을 수 없는 헛소리이며 고급차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말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인생이란 그저 10억을 모으냐 모으지 못하냐의 문제가 아닌가? 

 

한국은 해방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발전한 국가다. 그런데 이 말은 정말 옳을까? 내가 어렸던 1970년대에는 아이들이 골목에서 구슬이며 딱지를 가지고 놀았다. 아이들이 유치원때부터 직장이며 돈이야기를 하고 집에 들어가서 오락하고 학원다니느라고 같이 놀지 않는 오늘날은 정말 발전한 세상인가?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우는 것은 입시공부다. 그런데 정작 그 입시공부를 하느라 아이들은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한다. 그럴 시간도 없지만 시험에 나오지 않을 것은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서점은 이제 참고서를 파는 곳이 된지 오래다. 1980년대의 대학생들은 잘 몰라도 니체니 칸트니 하는 것을 들춰보던 일이 많았다. 입시공부에 바쁘게 큰 요즘 대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들은 확실히 예전 대학생들과는 다르다. 그 차이가 정말 모두 발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대학생이 주식투자하고 비트코인 투자하는 것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묻고 싶다. 정작 사회는 복권사서 한방에 부자되는 것말고 제대로된 인생을 살 방법이 없다는 메세지를 계속 보내면서 젊은이들이 그렇게 하는 걸 비판하는 건 뭔가? 문제의 시작은 결국 사치스럽게 사는 것에 대한 기대치만 잔뜩 올리는 세상이다. 

 

젊은이들도 제대로된 보통의 연애를 하고 싶다. BMW 오픈카를 몰고 해변가를 달리다가 한잔에 만원은 하는 커피를 마시고 5성급호텔같은데서 비싼 와인을 마시고 스테이크를 먹는 ‘보통’의 연애 말이다. 비싼 옷을 입은 연인은 꿈같은 외모를 가지고 성격은 천사같은 그런 것이 ‘보통’의 연애 아닌가? 이렇게 못살면 보통 미만이 되는 것이니 불행해 해야 하는거 아닌가? 

 

물론 사람들이 이런게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한다. 하지만 상업화된 세상, 물질적 성공만을 외치는 세상에서 이런게 보통이 아니라는 목소리는 사실 매우 작다. 오히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타인의 삶을 보면 그 반대같다. 다들 나만 빼고는 영화배우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기대치 과잉의 시대, 허세의 시대, 그것이 요즘이 아닌가?

 

우리는 시야를 넓히고 자기 내부를 살피며 기대치를 한없이 내려야 한다. 삶은 우리에게 뭘 주는가? 아무 것도 주지못한다. 우리가 삶에서 뭔가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실망할 수 밖에 없다. 자기성찰의 고삐를 느슨하게 하는 순간 기대치의 폭주는 금방 일어나고 우리가 뭘 가졌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뭔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선물로 여겨야 한다. 설사 대단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있어도 잘난 척할 것은 없다. 우리가 무지하고 오만할 뿐이지 세상은 인간의 유한함, 우리 삶의 유한함에 비하면 무한히 넓다.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소신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이란 결코 뭐든지 하며 사는 삶은 아니다. 왜냐면 뭘하건 우리는 댓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여러가지 갈림길의 연속이고 누구도 모든 길을 다 가보면서 살 수는 없다. 

 

지구를 몇바퀴나 돌면서 살던 사람도 후미진 시골에서 살아보면 그 작은 동네에도 자신이 전혀 모르던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하고 오래된 이웃같은 거 말이다. 그럴 때 그 사람은 그동안은 너무 멀리 돌아다니고 너무 빨리 사느라 인생을 낭비해버렸다고 느낄 수도 있다. 

 

누구나 대단하다고 말할 뜨거운 사랑을 하며 만족스럽게 살았다고 해도 우리는 독신으로 외로이 살았던 사람의 삶속에서 우리가 가지지 못했던 뭔가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사랑도 고독도 공짜는 아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우린 뭔가 다른 것을 할 수도 있었다. 

 

삶이란 어딘가에 도착하려고 하는 경주가 아니라 목적지 없는 산책이다. 설사 목적지가 있다고 해도 먼 길을 갈 때 언제 도착하냐고 안달을 하는 사람은 결코 그 길을 다 가지 못한다. 목적지따위는 잊고 그냥 한걸음 한걸음을 습관처럼 걷고 그 길을 즐기는 사람이 먼 길을 간다. 

 

그 인생길에서 우리는 친구를 만난다. 어떤 친구는 매우 오랜동안 동행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 그 사람이나 그것은 우리를 떠난다. 그 길은 혼자 걷는 길이며 결코 끝이 나타나는 길이 아니다. 길은 계속되지만 우리가 멈출 뿐이다. 그 길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저 고개만 넘으면 좋은 곳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대따위는 전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선물로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이다. 좋은 것이 생겼다고 무한히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그걸 꼭 지키고 싶겠지만 결국 그것도 나를 떠날 것이며 어떤 댓가를 요구할 것이다. 오직 기대하지 않고 모든 성취를 선물로 생각하는 마음만이 그 상실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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