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9
요즘에는 1인가구가 많이 늘었고 늘고 있다. 청년들도 결혼을 안하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지만 수명이 길어지면서 배우자가 사망하고 혼자 사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예전처럼 3대가 같이 사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사실 사람들은 점차로 같이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다며 따로 사는 것을 찬양하기 바쁘고 그 결과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부모랑 사는 것도 힘들고 자식이랑 사는 것도 힘들며 심지어 배우자랑 사는 것도 힘들다니 혼자 사는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을 공동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공동체의 붕괴고 낡고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은 붕괴했는데도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즉 옛날 방식대로 사는 것은 내가 손해니 같이 살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어떤 방식이 있어서 그런 방식대로라면 같이 살아야겠다고 합의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요즘 결혼이 점점 늦어지거나 비혼주의자가 느는 것도 결국 남자도 여자도 이런 상태에서 결혼하면 내가 손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것은 쉬운 것일까? 혼자 사는 것은 언제든 나중에 누군가와 합칠 수 있는 상태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혼자사는 것은 쉽지도 않고, 어떤 삶이든 그 형태가 굳어지면 그걸 깨고 누군가와 함께 살려고 하면 나름 넘어야 할 문제가 많다. 물론 그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꽤 있다. 50이 넘어서도 언제든지 젊은 여자나 젊은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능력자들도 있으며 누구와 결혼하고 함께 살더라도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사실상 자기 삶을 살면서 누군가를 거기에 끼워넣을 뿐인 사람들도 꽤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보다도 훨씬 더 많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미디어가 이들을 주목하고, 사람들은 공개된 장소에서는 허세를 부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주로 능력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여준다. 그게 재미있으니까 그렇다. 그리고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재미있는 사람인 척하고, 독립적인 사람인 척한다. 한국에는 허세가 센 사람들이 워낙 많다.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 사람이나 보통 학생은 보통이 아니다. 이런 높아진 눈높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약해지지 말 것을, 더 죽도록 일하고, 더 독립적으로 살아갈 것을 격려하게 된다. 말하자면 마라톤 완주를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는 0.1%밖에 안되는데 너도 나도 사람이라면 마라톤 완주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모두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는 약해지지 마라, 너는 이정도도 못하니같은 말이나 돌아가기 쉽다. 이러니 외로운 싱글들 끼리 만나봐야 서로 허세부리는 일이 생기기 쉽고 혼자 사는 일은 계속되는 것이다.
혼자 사는 일은 매우 홀가분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럼 사람들이 왜 모여살겠는가? 그럼 신발은 왜 직접 자기가 안 만들고, 농사는 왜 직접 안 하며, 집은 왜 직접 안 짓는가? 그게 홀가분하지 않은가? 문명의 힘은 대부분 분업에서 나오는 것이고 결국 공동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사는 것은 첫째로 보험이 된다. 나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분업이 된다.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을 나눠서 하고 분업해서 하니까 일이 쉽게 되는 것이다. 정보를 모아도 여러 사람이 모으는 것이 빠르고, 인맥을 만드는 것도 물론 여러 사람이 하는 것이 빠르다. 나 혼자서 아는 사람의 수보다 온 가족이 아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렇다.
이렇게 보면 혼자서 사는 삶이란 상당부분 발달하고 안정적인 사회에 기대어 탄생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다. 만약 전쟁이라도 나서 사회 시스템이 멈춰버린다면 거기서 혼자서 사는게 편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한 사람이라도 더 모아서 큰 집단을 이뤄서 살려고 안간힘을 다할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온갖 정보가 나오고 간편하게 모든 것을 주문할 수도 있다. 아는 사람이 있어야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던가, 뭐하나 하려고 하면 그 걸 아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소개 받아서 방법을 배워야 하는 그런 불편한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남자없는 여자는 주인없는 물건처럼 생각하는 깡패가 설쳐대는 치안이 불안한 시대도 아니다. 그러니 혼자 살겠다는 말도 쉽게 나오는 것이고, 혼자 사는 일을 버티어 가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를 뒤집어 보면 혼자 사는 일의 어려움이 보인다. 세상은 계속 안정적이지만은 않다. 세상은 자꾸 변하고 사람도 나이가 들면 또 변한다. 그러니 전쟁이 아니더라도 세상이 격변한다고 믿는다면 혼자서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몰라도 그 사람은 바로 지금의 세상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세상의 변화가 그 사람에게는 위협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구나 부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혼자 산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대개 부모나 가족이 있다. 다만 같이 안살 뿐이다. 그들은 그런 가족들이 자신에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가족이 사망등의 이유로 사라지게 되면 나는 혼자가 편해라고 말했던 생각이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깨닫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사실 자신은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 있어서 정신적 물질적 안정을 취해왔던 것인데 진짜로 고아처럼 혼자가 된 후에야 그것을 깨닫는 것이다.
혼자서 살기 위해서는 건강과 돈이 필요하고 인간관계가 좋아서 친구도 많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고독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고독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란 상당부분이 정신적인 것이다.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할 일이란 대부분 정신에서 출발한다. 뭔가를 이룩하고 싶고, 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물론 돈이 없어서 먹고 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도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는 혼자 사는 능력을 말하고 있으므로 이건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에서 우리는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되지는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바로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그걸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살지 못한다.
고독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이고, 감수성이 좋은 사람이며, 자신의 삶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다. 창가에 날아든 새를 보고 시를 쓸 수 있는 사람, 남들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산책로를 찾아내고 그런 일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 멋진 해변을 보면서 사색에 잠기면 몇시간이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고독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쌓여있는 수백권의 책을 보면서 옛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세상에 없는 수식이나 조각품이나 소설을 이번에는 만들어 보겠다는 야망에 넘쳐있는 사람, 혼자 살지만 내게는 돌봐줘야 할 사람이 있고, 혼자 살지만 사랑하는 회사나 조국이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고독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가 일거리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내며 그것을 보람으로 알고 움직인다. 이런 사람들은 설사 겉으로 보기에는 한가하게 사는 것같아도 머릿속에서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바쁘게 돌리고 있다.
물론 건강과 돈이 있으면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대체할 수 있다. 멋진 시인이 버스를 타고 해변에 가서 느끼는 행복보다 작은 것이라도 나는 비행기타고 몰디브같은 유명 관광지에 가서 그걸 누릴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나와 친구하겠다는 사람도 많고, 인색하지 않으면 기꺼이 나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러면 정보도 들어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을 쫒아 갈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돈을 줬지만 그쪽에서는 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저 고독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는 법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정신계의 능력자도 아니고 물질계의 능력자도 아니다. 게다가 정신도 나이가 들면 쇠락하고 물질도 정신적 도움이 없으면 지키기도 힘들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서 살 능력이 없다. 다만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세상이 변화하면 정신적 물질적 위험에 빠진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공동체의 붕괴현상에 영향을 받은바가 크다고 나는 믿는다. 고립되어 사는 사람들이 위기속에서 자살하는 것은 물론, 물리적으로는 가족과 함께 있다고 해도 사실 그 집은 이제 제대로 공동체가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고립속에서, 사실은 조금의 정보와 인간적 온기만 있었어도 살아갈 수 있었을 것같은 사람들이 삶에 절망하고 죽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 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고 싶다면 이 글에 이미 그에 필요한 준비가 무엇인지 나와 있다. 돈이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조언이므로 길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잊는 것은 정신적인 준비가 돈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저 로보트처럼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생활비만 벌어들이는 감수성없고 창의적이지 못한 인간이라면 혼자 살 준비가 된 게 아니다. 단지 딱 지금의 환경에서는 문제가 없을 뿐이고 당신은 지금의 환경에 지나치게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당신도 나이가 들면 변한다. 생각없이 어떤 소명의식없이 그저 삶이란 소시민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혼자 살지 마라. 얼마지나지 않아 당신은 스스로 나는 그저 음식을 똥으로 만드는 기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거나 누군가가 그렇다고 지적해 줄 것이다. 당신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부모님의 사망이나 당신의 실직이 당신을 한계이상의 상황으로 몰고갈 것이다. 당신은 홀가분하게 사는 당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건 경제상식도 없으면서 빚내서 투자하고 있는 사람의 자부심이나 마찬가지다. 즉 약간의 충격으로 당신의 삶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
혼자 살건 더불어 살건 사는 건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다는게 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혼자서 살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타인의 숨결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래야 계속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된다. 혼자 살 준비의 첫번째는 그것의 어려움과 무시무시함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안일하게 혼자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저 철이 없는 것이다. 어릴 적에 사고를 쳐서 집안이 엉망이 되면 부모가 사고 뒷수습을 해주곤 했을 것이다. 혼자 산다는 건 그래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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