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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운명과 결혼 그리고 그 이상

by 격암(강국진) 2022. 11. 6.

22.11.6

최근에 결혼에 대한 글 하나를 읽게 되었다. 그 글에서 저자는 이 세상에 있는 수 많은 상대중에서 가장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때문에 결혼에 대해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주고 있었다. 세상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과 결혼을 할까?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그 조언은 최선을 바라지 말고 일단 선택을 하고 그 안에서 노력하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이런 조언도 나름의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고 좋은 의도로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뭔가가 꺼림직했다. 그리고 밥을 먹다가 아내와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과학자였던 내가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하자 그녀는 그걸 뜻밖이라고 여겼다. 나는 바로 이것이 그 조언에 대해서 내가 느꼈던 어떤 결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걸 여기에 기록해 두기로 한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이 말은 두 사람이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 끌려서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이유와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질서다. 일단 내가 머리가 긴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자. 그래서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긴 머리에 매우 좋은 머리결을 가졌다는 사실때문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와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런 건 내가 말하는 운명일 수 없다. 왜냐면 그 이유가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가 긴 여자가 좋아서 그녀를 만나고 결혼한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질서란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이유와 연결들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 안과 그녀의 안에 서로가 원하는 뭔가가 있어도 그걸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 상태에서 연결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으면 그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질서가 아니고 의식적인 선택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쯤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선택이 없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중요하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이야기의 전체가 될 수 없다고 믿을 뿐이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있고 그것이 완전히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질서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이 종교와 다른 이유는 나는 성경이나 불경처럼 누군가가 이미 기록하고 체계화 시켜놓은 것으로 자신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당신은 신을 믿고 있는게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걸 인정해도 좋다. 다만 내가 말하는 신이라는 것은 오직 내가 모르는 미지의 질서라는 뜻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건 어떤 신비한 힘을 믿는다는게 아니다. 다만 유한한 인간으로서 내가 당연히 가져야할 겸손을 가진다는 뜻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의미에서라면 나는 과학자의 필수덕목이 바로 이 운명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을 찾는 사람들이 금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는 본래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법칙이나 설명이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과학자는 자신들이 아직 모르는 그 이유와 설명과 법칙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그걸 찾아내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수학자 역시도 아직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에 수백년간 아무도 못찾은 증명도 찾으려고 해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알고자 하는 생각이 별로 없고, 아직 자신이 모르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그들은 마치 이미 세상에 대해 알 것은 이미 다 알려져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인지 과학자나 수학자를 크게 오해하는 일이 있는 것같다. 그들은 오히려 과학자나 수학자가 운명을 믿지 않고 냉정하며 모든 일이 엄밀하게 법칙에 따라 일어나거나 아니면 아무 이유없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난다고 여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과학이나 수학을 하는게 그런 거라면 그들은 진정한 과학도나 수학도가 아니고 단지 과학이나 수학을 취업의 수단으로 여기고 돈이나 벌려고 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열정이 있기에 대개의 경우 돈되는 일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일에 빠져서 그런 일을 한다. 그리고 열정이란 곧 믿음이다. 여길 파면 즐겁고 중요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는 것이다. 춤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 춤추는 사람은 헛된 일을 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자기 판단이니까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동시에 저 춤추는 사람도 춤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저 돈벌려고 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앞뒤가 맞질 않는다. 안 좋아한다면 돈벌기에 효과적이지도 않은 일을 왜 하고 있겠는가? 그런 직업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일은 쉽고 취직 잘되고 월급 잘나오는 일을 하지 말이다.

 

사람들이 친구를 만나도 그런데 연애를 하거나 결혼할 상대를 만나면서 이런 저런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결혼할 상대니까 수입도 좀 있어야 하고, 모아놓은 돈도 있어야하며, 맞벌이가 가능하다던가, 직업이 전망이 좋다던가하는 식의 판단을 하는 걸 잘못되었다고는 나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의식적이고 객관적인 계산은 참으로 피상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계산이 틀릴 이유는 많다. 어쩌면 여러분은 진짜 중요한 건 빼놓고 사소한 걸로 좋은 사람을 애초에 후보에서도 배제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의 행복과 만족에 필요한 모든 요소도 다 알지 못한다. 무엇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지 내가 기쁠 때 내가 왜 기쁜지도 다 모른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눈이 팔려서 중요한 선택을 하고, 사소한 것때문에 불행해 진다. 게다가 미래의 나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것때문에 행복해 할 것이고 불행해 할 것이다. 

 

사람은 계속 변한다. 그래서 나는 좋은 결혼에 필요한 한가지 요소는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개 결혼을 어떤 완성된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합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조건을 맞춘다. 마치 그들이 앞으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건 댄스 파트너는 보지 않고 혼자서 눈감고 춤을 추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앞으로 여러가지 경험을 하면서, 나이가 들어가고 지위와 재산이 달라지면서 변해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고등학교때나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 결혼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고 결혼해도 행복한 경우가 드문 것이다. 처음에는 행복했지만 서로가 변하면서 같이 사는 것이 힘들어 진 것이다. 그렇게나 매력적이고 말이 잘통하는 상대였는데 어느새 시시하고 말도 잘 안통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형이상학적인 이런 조건조차 어느 정도는 객관적 의식적 조건이다. 나이든 세대가 하는 것처럼 나이, 학력, 재산같은 조건 몇가지 놓고 비교해서 이정도면 좋네하는 식으로 딱딱 계산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객관적 조건은 절대 충분하지 않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객관적 기준으로 결혼을 생각한다면 결혼이 깨져야 할 객관적인 이유도 결혼 이후에 얼마든지 생기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계산이 틀렸는데 나는 이미 이 결혼이라는 함정에 빠져버렸다'는 생각이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될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계산을 잘했더라면 지금쯤 대박이었을텐데하고 생각할 것이며 다른 사람만 부러워하며 살게 될 것이다. 대개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고 사람들은 남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다른 부부를 보면 다 원만하게 불만없이 사는 성공한 결혼을 했는데 내 결혼만 시시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 당신의 계산이 맞을 확률은 없다. 두 사람 모두의 계산이 함께 맞을 확률은 더더욱 없어서 어떤 의미로 결혼은 사기가 되고 만다. 계산으로 한다면 결혼이란 최대한 덜 주면서 최대한 더 많이 빼앗아 오려고 하는 것이다. 무려 인생을 걸고 말이다. 멋진 남자랑 결혼하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여자는 실상 평생 부려먹을 호구를 잡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남자의 입장은 어떤가?

 

그래서 결혼에는 나아가 인생에는 운명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당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만벌의 청바지중에서 우연히 하나를 사듯이 결혼을 한게 아니다. 운명이라서 결혼한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낙엽이 떨어지면서 바람에 흔들려도 중력에 따라 계속 아래로 떨어지듯이 우리는 그 행운과 불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길을 가게 된다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세상속에는 그런 필연적 질서가 있다는 믿음이 우리는 필요하다. 운명이라서 만난 우리는 흔들리는 바람들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이혼한 부부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운명이 아니었거나 운명이 거기까지였던 거라고 여길 수 밖에 없다. 뭐든지 운명이라고 부른다면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지적은 옳다. 하지만 이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태도는 좀 더 큰 눈으로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내가 말했듯이 이건 인간은 유한하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기초적인 사실에서 나오는 태도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선택을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생각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나에게 보이는 것,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이 없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이유로 결혼을 하고 우리가 모르는 이유로 헤어지기도 한다. 결혼이란 결코 시장거래같은 것이 아니다. 결혼이란 운명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없이는 우리는 결혼을 하건 이혼을 하건 괴로워 하게 된다. 현대 사회는 무작위한 선택으로 산다는 생각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선택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건 꼭 결혼만 그런게 아니다. 매일 매일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 그렇다. 

 

이런 환경에서 과학적인 척 하면서 모든 일이 그저 임의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거나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다. 모르는 세상이기에 그것은 적어도 아직 지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을 믿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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