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4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설사 전문가의 의견이나 대중의 의견이라고 해도 무조건 믿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모든 의견에는 문맥이나 환경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들의 치료때문에 치과에 가서 놀란 적이 몇 번 있다. 치과의사라면 전문가일 것으로 생각하는 나는 딸 아이의 치료를 위해 세 개의 치과를 방문했는데 그 결과가 너무 달라서 놀라고 말았다. 같은 사람의 같은 입을 두고서 치료방법이나 치료비를 말하는데 다른 치과의 의견이 서로 약간 차이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큰 차이가 났던 것이다. 당시의 문제는 입안쪽에 사마귀같은 것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는데 이쪽에서는 4백만원을 써서 장기적인 치아교정치료를 시작하자고 하는데 저쪽은 10분쯤 치료하고 완치가 되는 식이랄까. 이건 극단적인 경우지만 다른 때도 몇군데의 치과를 돌아가며 진단을 받아보면 치료방법은 상당히 다를 때가 많았고 가격도 크게 달랐다.
그 경험으로 내가 의심하게 된 것은 치과의 의견이 자본주의와 유행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다는 것이다. 돈이 많이 드는 시술쪽이 아무래도 병원에게 좋으니까 그런 시술을 너무 쉽게 권하는 경향이 있고, 또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고 해도 불필요한 시술을 그냥 요즘은 이렇게들 많이 하니까 관행적으로 하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나의 이런 인상을 확증해줄 치과의사도 있겠지만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여기서 치과의사를 믿지 말자고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때문에 너무 순진하게 자주 치과를 방문할 수록 당신의 치아건강은 보장된다는 흔한 광고문구를 믿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건 마치 정수기 회사 직원과 자주 상담할 수록 당신에게 바람직하다는 말과 같은 면이 있다. 더 편하고 더 깨끗하며 더 인기좋은 제품을 계속 권유받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이 드는 것을 제외하고라도 뭐든지 적당히라는게 있다. 현대인에게 알레르기가 많은 이유는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만 살아서 그렇다는 말도 있으니 과연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물을 먹어야 몸에 좋은지만 해도 사람들이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만큼 정수기를 많이 쓰지 않는데 사실 수돗물의 질로 보면 한국이 못할게 없거나 더 뛰어나기도 하다. 그냥 한국인의 수질공포가 더 심한 것이다. 남들이 그런다고 정답은 아니다. 대중은 공포와 탐욕에 잘 물들기 때문에 대중의 의견이라고 항상 상식적이고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치과의사는 섭섭하겠지만 나는 치과의사보다는 의사를 더 신뢰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일 뿐 의료 체계가 가지는 자본주의의 속성도 분명히 존재하며 그걸 무시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사도 문제지만 결국 의료체계라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버는 쪽으로 발달하기 마련이다. 대형병원에 가면 마치 공장에 간 것처럼 여기서 진료받고 그게 아닌 것같으면 저리로 밀려보내진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장인의 경우에 경험한 일이다. 장인은 당시에 폐에 물이 차서 심각한 상태였고 고령이라 체력이 하나도 없었는데도 병원에서는 그런 면이 잘 고려되는 것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척추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그 시급함에 대한 고려는 별로 없이 검사와 상담을 잡는 과정을 무조건 시작시키는 느낌이다. 지금 걷지도 못하는 체력을 가지고 있는 고령의 노인은 어차피 수술할 체력이 없는데도 수술가능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MRI 같은 걸 막 찍는 것이다. 결국 한명의 주치의가 1분의 상담으로 그건 필요없다고 할 것같은 과정을 전문과정 별로 나눠져서 누구도 전적으로 환자에게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환자는 병원에서 돈과 시간과 얼마되지 않는 체력을 써가며 우왕좌왕하게 된다. 그리고 그건 종종 생사가 오고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체력저하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만 말기병에 걸린 환자들 사이에서는 하루 이틀 죽도록 상태가 나쁜 정도는 언제나 있는 일이고 그래서 아주 자세히 환자가 보호받지는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느 길이든 가보지 않으면 알 수는 없지만 침대에서 편안히 누워 쉬고 있으면 1년 살 수 있는 환자가 치료받는 다고 무리하다가 한달만에 죽을 수도 있을 것같은 것이 오늘의 병원이다. 그런데 병원의 시스템은 종종 후자를 권한다. 그쪽이 병원에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의견은 소중하다. 병원이나 치과를 불신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내가 이런 지적을 한다고 해서 전문가를 두고 당신이 뭘 아냐 내가 더 잘안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무척이나 바보같은 일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건 바보같은 일은 벌어질 수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엉터리 전문가에게 당하거나 바보같은 고집때문에 스스로 일을 망치는 일을 우리는 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나의 의견이건 타인의 의견이건 그 의견이 어떤 배경에서 나오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엄청난 부자가 요즘은 음식값이 싸다고 하는 말과 남루한 옷을 입고 외식은 거의 하지 못하는 가난뱅이가 외식값이 너무 비싸서 음식을 사먹을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은 당연히 해석하기에 따라서 거꾸로 들어야 한다.
돈만 문제가 아니다. 나는 건강이 안좋은 의사들을 많이 본다. 이에 대해 나는 한가지 이론이 있는데 이는 의사는 환자를 자주 만나고 그들을 치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병을 사소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말기암환자만 매일 본다면 만성피로나 불면증이나 소화불량 따위는 병으로 보이지 않는게 당연하다. 증상을 약으로 억누르는데도 익숙하다. 결국 아픈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은 사람은 본래 그렇게 살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논리에 따르면 범죄자를 자주 만나는 검사나 경찰은 인간은 윤리기준이 떨어지기 쉽다. 그런 인간들만 매일 만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환경에 대한 고려는 자기 스스로에게도 꼭 필요하다. 우리 자신의 의견도 유한한 환경의 산물이다라는 점을 무시하면 망상에 빠지게 된다. 결국 참고할 의견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나를 알고 타인을 알아야 한다. 그것없이 의견을 합치는 것은 요리법을 찾으면서 요리사의 의견과 요리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의견을 반반 합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질문이 뭔지 그리고 누가 뭘 어떻게 아는지를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의견에 대해서는 또 한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 그건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종종 자신의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고 엉뚱한 이유를 말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예들에서는 전문가의 의견속에 돈을 벌고 싶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지적을 한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운동하기 싫을 때 우리는 날씨 탓을 하고, 같이 밥먹기 싫으면 바쁘다는 핑게를 대며, 특히 체면이 상할 까봐 남들을 누르거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맘에 없는 대답을 하는 일이 많다. 튀고 싶지 않고 용기가 없어서 엉뚱한 의견을 내는 일도 많다. 자세히 보면 인간이란 정말 티끌만한 이유때문에 산을 옮기는 일이 많다. 이런 면에서 남들의 의견이란 우리를 속이는 것이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종종 속인다. 자기를 잘 들여다 봐야 우리는 자기의 진짜 의견이란 걸 알게 된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의견이 있을 때 그에 대한 걸 글로 써보면 차츰 내 의견이 바뀌는 것을 보는 일이 많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나와 대화하게 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면서 의견이 바뀌는 것이다. 인간은 비합리적인데가 많은 동물이며 그 진화과정속에서 차나 아파트를 사고 결혼을 하고 주식에 투자하는 일 따위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10억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백만원 때문에 기회를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원도 쓰기 아까워 하는 사람이 말도 안되는 투자하는데 가서 1억씩 턱턱 투자하는 일도 생긴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들이 다 이런 면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깊은 생각도 없이 서로에게 마구 의견을 날린다. 대개의 의견교환이란 이런 것이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 생각하면서 정보도 얻고 해석도 하는 것이 진짜 의견교환이다. 하지만 대개의 의견교환은 여러가지 과장과 기습공격으로 범벅이 되고 게다가 종종 두명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다수가 한다. 그 사람들은 서로 너무 틀린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이런 의견교환은 조심해야 한다. 때로는 그걸 피할 수 없지만 많은 준비와 해석에 있어서의 조심성이 없으면 그것은 우리를 위험한 곳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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