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30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다. 여기에는 자폐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나오는데 이걸 보다가 나는 민감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자폐를 가진 사람들을 뭘 모르는 사람 즉 둔감한 사람으로 여기는데 사실 자폐 환자들은 반대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남의 눈을 잘 보지 못하고, 소리나 충격에 우습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들이 둔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론적으로 그러한가 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사실 자폐같은 것은 제대로 정의할 수도 없는 증상에 불과하다. 즉 이러저러하게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것이지 자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원인을 가지고 같은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서반트 신드롬을 가진 천재 자폐증 환자는 당연히 극소수다. 지금으로서는 근원적 원인에 대한 즉 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정교하게 자폐나 발달장애 같은 말을 정의하고 다듬는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다. 같은 원인이라도 다른 증상을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의 핵심은 그보다는 정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민감하고 둔감한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뭔가에 어느 정도 민감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그 민감함의 정도를 '상식적'이라던가 '정상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모두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이런 판단은 그들을 모두 '둔한 사람'과 비슷하게 판정한다.
그런데 천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대개 자폐증환자가 겪는 것과 비슷한 일을 겪는다. 후대의 사람들이 보면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한 뭔가를 보고 그에 빠져서 지낸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대단한 성공을 거둬서 사회적 권위를 얻기 전까지 그들은 종종 천재가 아니라 바보로 여겨진다. 눈멀고 귀가 막힌 사람들이 오히려 그 천재를 괴짜로 부르고, 심하면 바보로 여긴다. 하지만 그 천재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마치 위험하고 중요한 물건이 가득 찬 공간에 사람과 원숭이가 같이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원숭이들은 귀중한 것을 파괴하고 위험한 것을 마구 다뤄서 폭발로 다치기도 한다. 게다가 그런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 그걸 보는 사람의 마음은 안타까움과 공포로 가득 차지만 원숭이들은 그런 사람을 보고 너는 약해 빠졌느니,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냐느니 하면서 때로 비웃고 때로는 근엄한 조언까지 하는 것이다. 사실 천재가 아니라도 좀 조숙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성공하지 못한 천재들이 하나 둘일까. 그들은 자폐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처럼 취급되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폐냐 아니냐 혹은 천재냐 아니냐같은 이분법에서 벗어나면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은 어떤 의미로 이런 경우에 속할 것이다. 아웃사이더는 비정상이다. 그런데 정상이 뭘까? 내성적이니 외향적이니 하고 사람을 구분하고 어떤 사람은 마치 본래 말을 잘 못하고 사람들을 잘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들은 결국 육지로 올라온 외로운 돌고래처럼 그저 주변과 다른 자기, 세상의 기준과 다른 자기를 발견한 것뿐이 아닐까?
이 문제는 언어와 문화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고, 그것은 총체적으로 서로 얽혀있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단어 몇 개가 다른 게 아니다. 문화나 언어는 보통 사람들의 사회에서 말해지는 것이지만 우리가 개인의 내부에 대해 말할 때 단 한 사람의 언어나 문화도 이야기할 수 있다. 하나의 개인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여러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과거의 행적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타고난 성질의 문제이기도 하고 과거에 무엇을 선택하고 뭘 겪었는가 하는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모두 인간이므로 그것들은 종종 비슷할 것이고 이때문에 다행히도 세상에서 소통할 때 쓰는 언어, 세상에서 통용되는 문화가 우리 자신의 내부 세계와 유사할 때 우리는 큰 문제없이 그 문화와 언어를 객관적인 것으로 여기며 세상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은 인간 사회에서 사는 원숭이나 원숭이 사회에서 사는 인간 같은 문제를 겪는다. 독일어나 러시아어 같은 외국어를 번역하여 이해하려는 한국인 같은 문제를 겪는다. 외국에 나갔을 때 현지 언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은 어딘가 둔하고 바보 같아 보이지 않는가?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단지 우리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속의 아웃사이더들도 소위 내성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자신감 있게 떠드는 세상 사람들은 뭘 모르는 원숭이들의 합창처럼 들리고 보이게 된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뭘 모른다는 것인가? 그것이 간단히 표현될 수 있으면 애초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내가 무슨 맛을 느끼는지 어떻게 전달하는가? 한국인은 외국인에게 정이 뭔지 설명하기 쉬운가? 미운 정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마치 뜨거운 아이스크림같은 모순적인 말이 아닌가? 이걸 논리적으로 서양인에게 설명할 수 있나? 도서관에 가보면 우리는 엄청난 양의 책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양의 책이 존재하는 이유는 대개 내 마음을 남에게 언어라는 형식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보이니 오직 마하가섭만이 미소를 지어 그걸 알아들었다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면 도서관의 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수십 권의 책을 평생 쓴 작가가 이런 식으로 그를 이해한 누군가보다 그 책을 읽은 사람에게 더 잘 이해받았다는 보증도 없다. 서양문화가 세상을 지배할 때 동양인은 그저 미개하고 둔해 보일 뿐이다. 그러나 동양인은 오히려 서양인이 뭔가를 모른다고 느낀다. 단지 서양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걸 표현하고 이해받기가 너무 어려울 뿐이다.
우리는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비교적 비슷한 세상에 살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가지게 되는 때는 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단 혼자만이 아는 언어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다.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서로에게 맞춰가며 산다고 해도 한계는 있다. 누군가는 우리를 자폐증상을 가진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볼 것이며 반대로 우리의 눈에 누군가가 그렇게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나도 그들에게 결코 정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끝까지 나에게 비정상으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현실은 현대 문명속에서 훨씬 더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엄청난 정보와 접속하고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2백 년 5백 년 전에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수없는 천재들이 즉 아웃사이더들이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바보로 살다가 바보로 죽었고 끝내 자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죽었을 것이다. 전자 오락을 하는 것이 직업이 될 수 있는 세상은 그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래였을 것이다.
지금의 세계는 작은 인터넷 카페들 혹은 작은 게임들 혹은 작은 세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법칙들이 존재하는 그 작은 세계에서 살 방법을 찾는다. 이런 세계에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 속단하고 민감과 둔감에 대해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사람이 어눌하고 내성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저 사람이 내성적이라고 속단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인도인이 한국에서 어눌하고 자신감 없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정작 인도에 가면 외향적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내성적이고 바보 같아질 사람은 당신일 수 있다. 나는 정상인데 저 사람은 비정상이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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