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23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댓가로 받는 노동을 가치있는 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돈을 벌기 위한 일로 채워졌다고 느끼기 쉽고 결국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확실히 사는데에는 돈이 필요하고 돈은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어찌보면 돈은 진짜 중요한 일은 하나도 해주지 못한다고 할수도 있다.
돈이 해줄 수 있는 있는 대표적인 것은 바로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것과 어떤 체험을 가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 두가지의 일은 모두 돈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 낸다. 우선 살다보면 돈이 없어서 뭔가를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즉 돈이 없기에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도 가보고 싶고, 공부도 더하고 싶고, 사업도 해보고 싶고, 연구도 하고 싶고, 사람도 돕고 싶고, 어떤 좋아하는 프로젝트를 펼쳐보고도 싶다. 하지만 언제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벽은 돈이다. 돈이 없어서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며 돈이 없어서 효도도 못하고 친구도 사귀기 어렵다. 이러니 우리는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상 체험도 우리를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마치 뭐뭐 인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환상을 파는 일이 많다. 어찌보면 장사의 기본은 환상을 파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왕이 입는 옷을 입으면 왕이 된 것같고, 왕이 사는 집에 살아도 그렇다. 사람들이 나에게 왕한테처럼 굽신거려도 그렇고 왕처럼 먹어도 그렇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받고 우리가 왕이 된 것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여기서 왕대신에 중요한 사람, 현명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인기인, 젊고 매력적인 사람등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어떤 것을 집어넣어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만 낸다면 당신이 마치 그런 사람이 된 것같은 착각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당신이 당신 주변에서 가장 부자라면 당신은 당신의 삶이 성공한 삶이며 당신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것들이 정말 진짜일까? 아니 세상에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애초에 없는 것일까?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내가 아니라 진짜로 남이 되는 것이다. 남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남이 화목한 가정을 가졌다고 할 때 느끼는 그 느낌을 우리는 돈으로 무한히 흉내는 낼 수 있지만 그것이 진짜가 될 수는 없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돈으로 살 수 있으니 돈이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의 체험은 외적인 것보다 훨씬 더 우리의 내부에 달려 있다. 당신이 충분히 교육받고 생각이 있는 사람일 때 먹는 음식의 느낌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돼지같은 짐승이 먹을 때와 인간이 먹을 때는 다르다. 그 음식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놓여져 있는 접시와 식탁, 식사를 하는 그 집과 나아가 그 풍경 그리고 역사까지 알면서 먹을 때 그것이 어찌 같은 음식일 수가 있을까? 짐승이 돈을 가질 수는 있지만 돼지같은 짐승이 돈이 있어서 인간과 같은 것을 먹는다고 해도 돼지가 돼지인 한 그 짐승은 결코 인간의 체험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매춘이 연애를 대신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차가 있다고 해서 마라톤 코스를 완주한 사람보다 행복하거나 더 대단한 것은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에베레스트산에 오를 수 있다고 해서 그 산에 걸어서 오른 사람의 체험보다 더한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이 가진 외적 환경에 제약을 받게 되지는 않는다. 돈을 가진 사람도 그렇다. 돈이 있건 없건 산다는 것은 그 삶을 살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런 주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성장은 언제나 생명을 압살해 버리는 그 외적 환경과의 싸움이 된다. 그 싸움에 지면 실질적으로는 생명이란, 삶이란 없다. 그러므로 돈이 없어서 우리는 제대로 살지 못하기도 하지만 돈이 많아서 삶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재용처럼 재벌3세로 태어난 사람도 나름의 삶을 살지만 어떤 삶은 그에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마치 봉건시대에 태어난 왕자처럼 누구보다 자신의 환경에 제약을 받는다. 그는 가문을 지켜야 하고, 그가 엄청난 재산을 물려 받는 대신 그 댓가를 치루라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야 하며 무엇보다 돈을 원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는 제대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은 개인주의의 반대인 집단주의의 화신으로 살게 된다. 즉 그냥 나라는 존재로 살 수 없고 언제나 삼성가문의 후계자로 조직의 일부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해서 자기 개인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을 때로 부러워 할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돈이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돈은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해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는 것같다. 돈이 있으니 가족에게 소고기를 사 줄 수 있다고 해도 그 핵심은 사실 돈이 아니다. 마음이다. 마음이 있으면 같이 라면을 끓여먹어도 괜찮을 수 있지만 마음이 없으면 소고기따위 아무 의미도 없다.
이런 말들이 돈이 무의미하다던가, 돈을 가지려고 하는 노력이 부질없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돈이 많으면 그걸 더 많이 쓰고 싶다. 하지만 종종 진짜 중요한 것은 몸바깥의 것이 아니라 몸 안의 것이라는 것이다. 당장 굶어죽을 것같을 때 생각이야 어찌되건 먹을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런 극단적인 물질적 부족에 있다는 생각은 대개 착각이다. 게다가 내부야 어찌되건 10억이나 100억짜리 통장이 있으면 우리 삶이 지켜질 수 있다는 생각도 착각이다. 어쩌면 이미 삶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거의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돈이 있으니까 내 삶은 풍요롭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때 생각나는 거라곤 돈을 세는 일이나 돈가지고 사람들에게 자랑이나 할 생각밖에 없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런 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돈은 소중하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진짜 삶에서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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