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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연상호감독의 정이를 보고

by 격암(강국진) 2023. 1. 20.

23.1.20

넷플릭스에서 1월 20일에 공개한 정이를 봤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루하지 않게 봤고 한국 SF도 기술적으로는 여기까지 왔구나 싶은 생각도 했으며 부족한 제작비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래도 양념들은 훌룡한데 핵심은 작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현주의 연기가 매우 훌룡해서 영화를 살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77년생의 미모와 액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래의 내용은 긍정을 전제로 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참조해서 읽었으면 싶다. 

 

내가 말하는 핵심이란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문제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정이에서 들어나는 미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뇌복제가 가능한 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있다. 그런데 사실 뇌과학에 종사했던 과학도로 말하자면 이 영화가 미래에 대해 가지는 느낌은 피상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들었다. 즉 과학적 설득력이 약하달까. 암도 정복하지 못한 미래에 정말 뇌가 모든 기억과 함께 말 그대로 복제될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영화를 보면서 다큐처럼 과학을 따진다고 할지 모르지만 모든 영화는 그 안에서 제기하는 근본적 질문이 설득력이 있을 때 몰입감이 올라간다. 만들어진 생명, 인공지능의 정체성 고민은 이미 적어도 40년전 1982년에 나온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표출된 문제의식이다. 그보다 더 위로 가자면 1818년에 나온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과연 이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나 프랑켄슈타인보다 진일보한 원천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것같다. 

 

어떤 의미에서 연상호감독의 상상력은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것들보다 퇴보해 있다. 왜냐면 블레이드 러너나 프랑켄슈타인의 만들어진 지성체들은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이의 로봇들은 인간의 기억을 복제해서 인간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점은 미묘하게 차이나는 것같지만 매우 중요한데 우리는 순수하게 100% 만들어 진 존재속에서 인간을 보게 될 때 더 큰 충격을 느낄 것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디테일에 있다. 예를 들어 정이에서는 인간의 뇌를 복제한다는 식으로 인간복제를 말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복제는 그런게 아니라 이 세상에 퍼져있는 데이터를 복제하는 것이다. 이미 현실에서도 죽은 사람이 남긴 글들과 목소리 그리고 사진들을 이용해서 죽은 사람을 가상 공간에서 되살리는 서비스가 가능하다. 목소리 변조기술도 있고 3차원으로 움직이는 딥페이크 기술도 있다. 특히 사람들이 평소에 쓴 글들을 학습하면 마치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말하게 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뇌를 복제한다는 식의 기술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데도 이런게 가능하다.

 

최근 chatGPT같은 거대 언어 모델은 인간처럼 대화하는 AI가 이미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 AI는 시도 짓고 소설도 쓴다. 그러니까 미래에는 여자친구에게 러브레터도 대신 써줄지 모른다. 그리고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인 러브레터를 보내오는 것도 여자친구의 AI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편지들이 정말 감동적일 때 우리는 정말 AI가 감정이 없다고 여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애완동물로 인간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출현할 것같은 충분히 발달된 AI는 인간에게 적어도 감정이 있다는 환상을 줄만큼의 성능은 가지게 될 것이다. 이미 나오고 있는 사이버가수같은 존재들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은다고 믿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되면 AI가 감정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하는 질문은 뒤집어 질 수 있다. 바로 그럼 우리는 어떻게 내 연인이나 배우자가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아냐고 질문던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따위는 없고 그저 관계와 행동패턴만 있을 뿐인가? 

 

내가 SF를 여기서 쓰는 것이 아니므로 더 쓰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아무래도 좀 아쉽다. 한국에서도 기술적으로는 미래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으므로 매트릭스같이 충격을 주는 명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에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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