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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by 격암(강국진) 2023. 8. 18.

23.8.18

어제는 최근 화제가 되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는 그다지 좋은 점을 찾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이 영화가 근거한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안났기 때문에 책의 3분의 1정도를 다시 읽은 상태에서 영화를 봤는데 앞의 부분은 책의 요약같은 느낌이 많이 나더군요. 

 

 

이 책이 저에게 큰 인상을 주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첫째로 신선한 해석이나 인간에 대한 공감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오락성도 약했습니다. 사실 놀란 감독은 단순히 오락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술영화를 찍는 사람은 아닙니다. 신기한 상상력이든 참신한 비주얼이든 뭔가 자극이 되는 걸 제공해주는 감독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그런게 워낙 약하더군요. 화제가 되었던 핵폭발 장면도 뭐 요즘은 워낙 여기저기서 그런 걸 볼 기회가 많으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연약하지만 야심을 가진 천재정도로 해석합니다. 책에서 본 게 그렇고 그의 이력을 보면 그렇습니다. 마마보이같은 천재였고 한때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도 하지만 결국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자리를 찾은 인물이죠. 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실패한 과학자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왜 노벨상을 못받았냐고 물을 정도로 그 당시 양자역학 연구 모임에 참석한 사람중 노벨상받은 사람이 흔했고, 그는 그 안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디렉이나 하이젠베르크처럼 튀는 거같았는데도 과학적 결과물은 노벨상을 줄만한 것이 없었다는 겁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책에서 본 그의 모습은 남의 평판에 신경을 많이 쓰고, 뭔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당대의 대천재 하이젠베르크는 경력을 보면 천재인데 자신이 천재라는 자각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파울리나 디렉같은 사람을 보면서 그들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는 그런 사람이랄까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은 흔히 그 유명세때문에 세상일에 불려 나가기는 했지만 대개 자기 내부의 추동력으로 학문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오펜하이머는 말하자면 천재지만 유명하고 성공하고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너무 강한 사람이었달까요. 이는 그가 마마보이같은 사람으로서 놀라운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자존감이 약한 사람으로 키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쟁의 폐허속에서 성장한 천재인데 그는 부유한 유태인 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오펜하이머에게는 원자폭탄만들기 라는 사업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악마의 유혹이었죠. 나는 원자탄을 만든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펜하이머의 학계에서의 위치와 개인적 성격을 보면 누군가에게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겠지만 스스로는 '위대함'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을 오펜하이머가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같은 사업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진두 지휘해서 세계대전을 끝내는 영웅이 되는 길을 가는 거니까요. 하지만 학자로서 그게 어떤 폭탄이든 폭탄을 만드는 일로 가장 유명해 진다는 것이 정말 위대함으로 가는 길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원자탄을 만들어 낸 사람으로 그것의 사용에 대해 발언권을 가질 때 더이상 그가 필요없었던 미국 정치가들은 그가 귀찮기만 했겠죠. 과학자가 정치로 발을 들여놓으면 정치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의 실각은 말하자면 이런 정치싸움의 결과입니다. 그는 사실 원자폭탄 만들기를 시작 이후 과학자라기 보다는 정치가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걸 몰랐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대단한 천재로 생각하는 동시에 바보로 생각하는 것이죠. 

 

돌아보면 오펜하이머는 똑똑하지만 남의 감정을 잘 이해못하는 이론가였고, 천재지만 오직 남의 평가에 의해서만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연약한 인물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파티에 가면 스타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을 만한 재능이 있었고 그렇기에 그런 면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알고보면 그런 주목없이는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없는 인물이었달까요. 그는 실패한 닐스 보어입니다. 보어같은 깊이가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죠. 제 생각에는 이런 오펜하이머의 개성을 영화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애정사도 흥미거리정도일뿐 이런 측면과의 연결속에서 나오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오펜하이머의 내부적 갈등과 싸움이 스토리를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국제정세에 대한 영화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핵에 대한 의견도 그다지 참신하지 않습니다. 핵전쟁은 인류 생존을 위협합니다. 하지만 핵무기를 만든 사람을 비난하거나 심지어 핵무기를 사용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별로 참신한 데가 없습니다. 왜냐면 언젠가는 누군가 핵무기를 만들었을 것이고 핵을 사용하게 됨으로 해서 세계 평화가 왔다는 말이 완전히 거짓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 세계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평화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작은 전쟁들을 지적하면서 이게 뭐가 평화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세계 1차, 2차 대전때 죽은 사람들의 수는 천문학적입니다. 19세기까지 세계는 총력전이 계속 벌어지는 군대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핵무기가 등장하고 나자 거대한 국가들 사이의 총력전이란 불가능해졌죠.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가졌다면 러시아가 전면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일본에서 핵무기에 당한 사람들을 애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지나치면 핵 이외의 이유로 전쟁에서 죽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과소평가하는 게 됩니다. 그러니까 난징대학살에서 죽은 사람들은 핵에 죽지 않아서 어쩔 수 없고, 핵에 죽은 사람들은 훨씬 더 불쌍하다는 식으로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핵무기는 필요없었다라는 것도 주장에 불과합니다. 핵무기는 무섭지만 핵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일본이 절대악이라는 것도 일방적인 시선이겠지만 핵무기 공격을 당했다는 이유로 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불쌍하다는 처분을 받을 필요는 없는 겁니다. 

 

저는 어느 쪽이 꼭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은 핵무기는 존재하고, 그걸 줄이는 건 좋겠지만 없앨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아니 열심히 노력하면 몇십년 후에는 핵무기가 전부 없어지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죠.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세계 이변이 벌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인류가 단합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게 정말 가능한 이야기인지 회의감이 듭니다. 핵무기가 인류의 유일한 문제도 아닙니다. 저는 좋은 영화는 이렇게 충돌하는 측면들을 여러가지 동시에 보여주면서 다면적으로 상황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핵에 대한 이 영화의 관점은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게 큰 단점을 아닐지 몰라도 저는 좀 아쉽더군요. 세상에 넘쳐나는 흔한 의견을 보려고 영화를 보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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