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통영의 어부축제와 전주를 다녀왔습니다. 전주 시장에 들리고 오랜만에 객사길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 보니 독립영화제작소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그것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영화는 변할 것이다.
모든 컨텐츠는 뭔가 할 말이 있으니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아직 본 것같지 않은 뭔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작가가 글을 쓰는 책과 그림을 그리는 만화와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는 서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글은 누구나 씁니다. 그리고 내 책상위의 정서라고 해서 내 책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나 스타워즈같이 전 우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나 더 재료비가 들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만화도 그렇죠.
그런데 영화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볼거리를 위해서는 더 좋은 배우, 더 좋은 배경 그리고 더 좋은 컴퓨터 그래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본이 없는 사람이 만드는 영화인 독립영화가 어벤저스같은 영화일 수는 없는 것이죠. 이러한 차이가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소설분야에서는 순수 재미를 위한 분야로 불리는 장르 소설이라는 것을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한마디로 돈이 재미를 만들기 때문이죠. 돈없이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가 없는 겁니다. 상상력을 영화로 표현하는 것에는 돈이 드니까요.
그 결과 독립영화는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가진 영화가 아니면 대개 무거운 주제를 가집니다. 독립영화는 곧 사회 비판을 하는 영화이며 상업용 영화는 예술이 아니지만 독립 영화는 예술영화라는 생각이 만들어 진 것은 이때문일 것입니다. 주제가 무거울 수록 오히려 화면은 단순해도 되니까요.
생각해 보면 영화가 처음 만들어 지던 시기에는 그래서 독립영화가 없었을 겁니다. 지금 수준으로는 독립영화라고 불릴만한 것도 예전에는 감당할 수 없이 비싼 제작비가 드는 영화였을 테니까요. 영화찍는 필름 자체가 비싸던 시절에 요즘 아이폰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본다면 그당시 사람들은 이런 거라면 뭐든지 찍겠다고 했을 겁니다. 아무리 찍어도 필름값이 안나오고 화질도 좋으니까요.
그런데 최근에는 영화를 만드는 AI가 무섭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상상을 하면 그걸 AI가 그림으로 표현해주고 그림 몇장이 있으면 그 그림들 사이를 다른 그림으로 메꿔서 동영상도 만들어 줍니다. 음성도 만들어 줍니다. 이런 식이면 몇년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쓰면 그게 저절로 영화가 되어서 나오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런 기술이 다 있는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그 영화의 장면 장면을 전부 그림으로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림이 있다면 그걸 기반으로 영화를 뚝딱 만들어 주는 AI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정말 금방 영화가 만들어 질 뿐만 아니라 독립영화라는게 지금과는 전혀 달라지겠죠.
꿈같은 미래가 오지 않더라도 지금 나온 기술들로도 독립영화의 질이 크게 올라갈 것은 뻔한 일입니다. 얼마전에는 인기 노래인 APT를 가지고 로케트라는 영상을 누가 만들었더군요. 이런 영상만 봐도 세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AI 없이는 절대 재미로 만들 수 있는 영상이 아니니까요.
자본으로부터 영화가 자유로워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영화도 소설이 그렇듯이 가장 주목받는 장르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때는 훨씬 더 대단한 경험을 주는 뭔가를 새로운 기술로 만들 가능성이 크겠지요. 지금은 정말 대단한 영화도 지루하게 보지만 처음에는 무성영화도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보았던 것처럼 새로운 매체는 지금의 영화를 장난처럼 보이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어쩌면 승자 독식의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워낙 만들기가 어려워서 훌룡한 감독도 몇년에 한편씩 내는게 보통이니까요.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일년에 영화를 열편씩 만든다면 사람들은 봉준호 영화를 더 많이 보지 않을까요? 결국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영화로 시장을 더 빨리 채우겠죠. 3류 감독은 발붙일 곳이 없을 수 있습니다.
영화 이후의 매체가 뭐가되건 미래는 이미 우리앞에 와 있습니다. 당장 내년에 전주 독립 영화제에 출품될 영화들이 급격하게 변할 것은 분명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영상산업은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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