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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이론이 없는 삶

by 격암(강국진) 2023. 3. 10.

23.3.10

우리는 깊고 오래 생각해야 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럴 필요가 없거나 그래서는 안될 때는 오히려 깊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이는 주로 우리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러니까 천원짜리 일에는 심사숙고를 하면서 1억짜리 거래에는 그것보다 겨우 몇배정도의 생각만 하거나 심지어 더 생각없이 일을 처리하는 일이 생긴다. 사안 사안의 중요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마치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 것처럼 처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이는 분명히 어리석은 일로 보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할 테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을 저지르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분명 있다. 

 

우리는 우선 우리가 너무 많은 가정과 관습과 이론에 빠져 있지는 않은 지 생각해 봐야 한다. 즉 모든 일을 어찌될지 모른다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를 안다는 생각에서 접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안다는 것이 고작해야 주변 사람들이 습관처럼 하는 말 같은 것이거나 별 근거없이 그래왔다는 관습같은 것이다. 결혼상대는 이래야 하고, 집사는데 융자는 이렇게 내야 하며, 큰 아들은 본래 이래야 하고, 여자는 본래 저래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몇가지 예들일 것이다.  

 

중요한 일일 수록 이론은 더 많고 주변 사람들의 간섭이나 조언은 더 많다. 즉 우리는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론들을 듣는데 그걸 가지고 사람들은 종종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우리는 일들을 서둘러 생각없이 처리한다. 어디선가에서 천원 만원 아끼려고 아둥바둥하면서 인생을 바꿀 정도의 갈림길에 가서는 매우 게으른 것처럼 일을 처리한다.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중요한 일에 대해서 길고 복잡하게 조심에 조심을 하는 사람을 오히려 비웃는다. 이론이 없는 사람은 걱정할 것이 참 많은데 자신감이 넘친다. 사람이 왜 이리 서툴고 겁이 많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기꾼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을 빨리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미 일찌기 노자가 한마디를 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큰 잔치상을 받은 듯 봄날에 높은 누각에 오른 듯 희희 낙락하건만 나만 홀로 조용히 움직일 기색도 없으며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젓먹이와 같고 초라하게 풀죽어 있는 모습이 돌아갈 곳없는 사람 같도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만만 하건만 나 홀로 궁핍한 것같도다. 내 마음 바보의 마음인가. 흐리멍텅 하도다. (노자, 20장)

 

이론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중요성의 문제와 합쳐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론이 없다는 것은 주로 우리가 그걸 체험과 수정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중요한 일들은 종종 해보고 안되면 말지라고 할 수가 없다.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면 차나 집을 사보고 안좋으면 다음번에는 좋은 걸 사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냉장고만 해도 한번 사면 그걸 교체하기가 쉽지 않다. 멀쩡한 걸 버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냥 해보고 아니면 바꾸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취하기 어려운 대범한 태도다.

 

나는 이런 일들을 코가 꿰이는 일이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중요한 일들은 대개 한번 결정하고 나면 바꿀 수가 없어서 그 이후로 오랜동안 심하면 평생 그 일의 뒷처리를 해야 한다. 어떤 직장에 들어갈 것인가, 어디로 이사를 갈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같은 문제들이 그런 것이고 앞에서 말한 냉장고처럼 그보다 덜 극적인 일들도 우리 일상에서는 많다. 이런 저런 계약을 하고 약속하고 구매를 하는 일이 그렇다. 우리는 대개 척척 몇 가지의 일들을 시작하고 결국 우리의 삶을 의무로 가득 채우게 된다. 다 할 수도 있는 일이라면서 일을 벌여 놓았는데 인생이란 항상 의외의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종종 그게 감당이 안되고 일들이 엉터리로 처리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 그 모습이 마치 코가 꿰어서 밭에서 일을 하는 소의 모습과 같아서 나는 중요한 일에 얽매이는 것을 코가 꿰이는 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선택의 문제이며 사람마다 상황이 다른 것이라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 입장에서는 예를 들어 주택 재건축 문제로 10년 20년을 끌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큰 돈이 걸린 문제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긴 한데 인생이 돈에만 관련된 것도 아니고 될지 안될지 모르는 일로 그 긴세월을 싸울 가치가 있을까? 그 사람의 인생은 만년이나 이만년은 되나? 자기 전재산에 가까운 돈을 어딘가에 걸고 그걸로 십년 이십년을 끌며 거기에 정신을 판다는 것은 인생낭비처럼 보인다. 

 

반대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이론이 없고 그 일들이 사소한 일이라면 우리는 그걸 어떻게 처리할까? 정신적 에너지를 별로 소모하지 않고 되도록 싸게 부담없이 더 가볍게 시작해 본다. 왜냐면 모르니까 작게 시작해 보고 경험으로 이런 저런 걸 보다 더 알게 되면 그때가서 좀 더 돈과 정신적 에너지를 투자해 보는 식이다. 작고 사소한 일에 대해 처음부터 최종적인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시행착오로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든 일을 이렇게 해야 한다. 다만 중요한 일이나 어떤 종류의 일은 그렇게 여러번 해볼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현대인의 일상은 수없이 많은 일들로 채워져 있다. 옷을 입는 일만 해도 신경쓰기 시작하면 참 일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을 하나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하나 하나를 보면 대충 일을 처리하는 것이 낭비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지면 이쪽의 사소한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저쪽은 아예 손댈 수도 없이 일이 진행되는 식의 일이 벌어진다. 사고가 터지고 큰 그림이 망각된다. 예를 들어 서울에 가야 하는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기차를 타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고 해보자. 그럼 우리는 시간표를 찾고 가격표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정을 생각하면서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바쁠테지만 다른 일들도 있기 때문에 바쁘면서도 피상적으로만 논리적이 될 수 있다. 피상적으로 논리적이라는 뜻은 여기서는 큰 그림을 잊고 그 작은 일에 매몰되는 것을 뜻한다. 사실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 서울 출장은 전화한통화만 하면 된다던가 미뤄서 다른 일과 함께 처리하면 할 필요가 애초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그냥 그런 것은 서둘러 기정사실화해버리고 부지런히 버스표니 기차표니 하는 일에만 시간을 다 쓰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합치면 이렇게 된다. 사소한 것들은 그냥 해본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일을 처리하고 조금씩 수정해 나가겠다는 식의 태도를 가진다. 사소한 일이 아니라 모든 일이 이렇게 시행착오의 입장에서 접근되어야 하지만 중요한 일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우리는 몇번의 실수로 자본이 다 떨어진 도박사처럼 될 것이고 코가 꿰어서 평생 바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들은 매우 조심해서 만의 하나라도 일이 잘못되지 않게 신경을 쓴다. 시간의 여유를 두고 천천히 일을 진행해야 한다. 여유와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일상과 마음을 의무적인 일로 가득 채우지 말아야 한다. 조심하지 않고 욕심을 조금만 내면 일은 그렇게 된다. 중요한 일을 대충 처리해서 일이 망가졌다던가, 욕심에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조금 더 늘린다던가, 내가 가볍게 처리해 버린 일을 더 잘 하고 싶어서 자꾸 더 뒤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들이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정신이 복잡해 지고 일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일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큰 그림을 볼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코가 꿰이게 된다. 여기서 천원 아끼고 저기서 백만원을 날린다. 

 

쓰면 당연한 일인데 왜 이게 실천이 안될까? 우리 마음속에는 이론과 생각이 너무 많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이론과 생각이 잘못 분포되어져 있다. 사소한 일은 잘 몰라도 된다. 중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태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뭐가 중요한 일인가, 어떤 집이 좋은 집이고 어떤 직장이 좋은 직장이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가. 평상시에 보통 사람들이 가치관이나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에 우리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자기 철학이나 가치관이 있으니까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좀 더 잘 구분되는 것이다. 확실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도 그렇다. 이런 바탕이 없이 그저 일상에 빠져들면 우리는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뒤돌아 보고 후회하거나 힘들었기는 한데 어쩔 수는 없었다는 식의 생각에 빠져든다. 그리고는 다시 천원가지고 아둥바둥하다가 천만원은 쉽사리 써버리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희희낙락하고 여유만만하면서 조심스러운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말이다.

 

이론이 없는 삶은 겉으로 보기에 게으른 것같고 겁이 많은 것같다. 작은 일들은 대충 처리하려고 하고 그 일에 정신적 에너지를 크게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낭비도 있는 것같다. 그러다가 뭔가에 신경을 좀 쓰나 싶으면 서투르게 한정없이 그일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겁이 너무 많고 걱정이 너무 많다. 좁쌀같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중요한 일을 자신만만하게 휙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서툴다고 비웃는다. 그러니 노자가 그런 글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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