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25
가벼운 삶이라고 하면 대개 정신적으로 가벼운 것을 말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가벼운 삶은 어떨까? 최근 이사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꺼내어 살펴볼 기회가 생겼던 나는 물리적으로 가벼워 지는 것이 여러모로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측정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뭘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무게를 줄인다는 것은 소유하지 않는 삶, 단순한 삶을 기본적으로 지지한다. 기본적이라 함은 반드시 그게 단순함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래에서 그걸 조금 더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게를 줄인다는 것은 부피가 줄어든다는 의미도 크며 부피가 줄어든다는 것은 무엇보다 주거의 측면에서 생활의 질에 크게 기여 한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비싼 것은 흔히 집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집을 쓰지도 않을 물건으로 채우고 있다. 이사를 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짐이 많은지. 가장 비싼 인테리어는 빈 공간이다. 짐이 사라지면 생활의 질이 올라간다. 아니면 더 작은 집에서 살 수 있으니 돈을 아낄 수 있다. 서울의 집은 평당 몇천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몇천만원짜리 한평을 얼마나 쉽게 쓰지도 않을 물건으로 채우고 있는지 모른다.
이밖에도 장점은 많을테지만 이젠 더 구체적인 방안들로 들어가보자. 이것도 끝없이 많다. 하지만 큰 것들 위주로 몇가지 생각해 보자. 일단 나는 모든 책을 스캔해서 디지털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캔한 책은 본래의 책과는 물론 다르다. 하지만 스캔하는 기술도, 디스플레이 기술도 날로 좋아지고 있어서 불편함은 줄어들고 있다. 장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무게로 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으며 사실상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되고 검색도 쉽다. 오히려 자료를 조직적으로 관리하기가 훨씬 쉬워 진다.
얼마나 많은 책들과 서류들을 나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버려왔던가. 스캔해서 디지털화한 자료를 보관하는 것이 당연해 지면 오히려 나는 더 많은 자료들과 책들을 제대로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열린 이래 사람들은 사진을 프린트 하지 않고 디지털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에 익숙해 지지 않았던가. 집에 불이나서 물건을 들고 나와야 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은 하드 디스크 일지 모른다. 그 안에는 내가 젊었을 때부터 일하면서 놀면서 만들어 진 자료들이며 글들이 들어 있다. 그 양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책들보다 오히려 더 많다. 집을 책으로 채울 필요는 없다. 클라우드 디스크같은 곳에 자료가 들어 있으면 집 어디나 내 서재가 될 수 있다. 테블릿이나 큰 모니터 정도가 있으면 될 뿐이다. 그러면 자료를 더 자주 보게 된다. 보지 않는 곳에 있는 자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안보게 된다.
그 다음에 내가 버릴 수 있는 것은 가구들로 특히 침대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아이들의 침대를 버려 보고 나는 우리가 다시 좌식 문화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침대는 책꽂이와 더불어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는 가구들이다. 그게 방안에 있으면 안방같이 큰 방이 아닌 경우는 그것만으로도 방이 가득 찬 느낌이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나는 아이들의 침대를 버렸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하여 가끔 집에 올 뿐이어서 그들의 침대로 두 개의 방을 채우는 것은 바보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침대를 버리고 나니 공간이 엄청 생겼다. 하지만 손님이 오면 자는 일도 필요해서 접을 수 있는 라텍스 매트를 깔아두었다.
이사온 초기에 그 방에서 잠을 잤던 일은 약간 충격적 경험이었다.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은 없는데 뭔가가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일단 두꺼운 매트리스나 바닥에 까는 라텍스 매트나 별로 편안함에 큰 차이가 없다. 어떤 분들은 더 고급의 매트리스를 쓰기 때문에 그럴리가 없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더 두꺼운 라텍스 매트도 있을 것이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것과 매트리스에 자는 것은 편안함에 차이가 있고 허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라텍스같은 신소재로 된 것은 매트리스만큼 두껍지 않아도 허리가 편하다.
게다가 라텍스 매트를 원하면 접어 치울 수 있다는 점 이외에도 바닥에 붙어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의 집은 온돌이니까 말이다. 이번에 새로 이사온 집은 방방 마다 따로 온도 조절을 할 수 있는 보일러가 달려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제일 작은 방에 라텍스 매트를 깔고 집안 전체는 온도는 내리고 그 방만 온도를 올린 채로 잠을 자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바닥의 따쓰한 기운이 라텍스 매트위로 올라오고 좀 과장하면 옛날의 구들장이 생각나는 분위기가 된다. 침대가 있는 안방보다 작은 방이 더 편안하다. 불과 몇일만에 침대위에 올라가 누워보니 왠지 아늑하지가 않고 옆으로 떨어질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이사를 하면서 많은 자료를 버렸고 침대 두개를 버렸다. 그래서 책꽃이도 두개 버릴 수 있었다. 지금의 집에 살면서 생각하면 침대 두개와 책꽃이 두개를 버린 일이 집에 굉장히 좋은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든다. 가벼운 것이 좋다. 과거의 우리 부부처럼 사람들은 흔히 방방을 모두 입식구조로 만든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은 사실상 모든 방을 누군가의 방으로 만들고 거기에는 침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간 때문에 우연히 만들어 본 좌식 방은 생각보다 좋았다. 책도 바닥에 앉아서 읽는 쪽이 더 좋은 면이 있어서 나는 좌식탁자를 한두개 집에 가지고 있지만 그걸 여기에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디지털화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옷이다. 옷은 버려야 한다.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그래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입지도 않을 옷들이 여기저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참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양복을 잘 입지 않는 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양복들이 생겼다. 양복은 비싼 옷이라 몇 번 입지도 않을 걸 버리기가 아깝지만 또 입자니 세월이 흘러서 스타일도 구식이라 우스꽝스럽다. 그래서 몇년마다 새 양복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가끔 그 양복들을 입어볼까 싶다. 무슨 중요한 날이 아니라도 말이다. 그래야 버릴 수 있을 것같아서다.
기본적으로 요즘의 한국 사람들은 옷이 너무 많다. 옷은 비싸기도 하지만 그렇게 많이 소비되는 옷들이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이사를 하면서 골라낸 옷들을 의류수거함에 버리면서 이게 결국 누가 입는게 아니라 쓰레기가 되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가 낡은 옷들을 수입해다가 그냥 버려서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한국 사람들이 옷이 많은 이유는 새 옷은 입고 싶은데 옷은 사실 떨어지도록 입으면 너무나 오래 입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옷을 수선해서 새옷처럼 만드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말로 헌옷이 입을 수 있는 옷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건 경제성이 없어도 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의류 판매상들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쓰레기를 우리가 너무 많이 만들고 있다. 누군가가 시도했을 것같은데 잘 안되는 것같다.
생각해 보면 또 많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몸을 가볍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나처럼 식탐이 있는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냉장고와 식품창고를 줄여야 할 것이다. 무게를 줄인다는 것이 반드시 단순하고 불편한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생활방식의 재점검이라는 뜻도 크다. 이미 세상이 기술적으로 문화적으로 달라져서 필요없어진 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일단 버려야 우리는 새 생활을 시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그 새 생활은 높은 확률로 더 가벼운 삶일 것이다. 무거운 것들은 사실 낡은 기술의 잔재일 수 있다.
지금 거론한 것도 실천하기는 그렇기 쉽지않다. 쉬워졌다고 하지만 집안에 있는 자료를 디지털로 스캔하는 일도 한꺼번에 하려면 말도 안되게 많은 일이다. 이런 걸하는 업체도 있지만 대량으로 하자면 가격이 상당하다. 하지만 스캐너가 발달하고 있으니 그걸 써볼 수는 있을 것같다. 옷을 버리는 일도 일단 그게 구석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면 쉽지 않고 가구를 더 버려야 하는데 무조건 버리고 참는게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 버리는 거니까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가벼운 삶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모이다 보면 새롭고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사를 한 이후 몇가지 드는 생각이 있어서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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