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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오송생활

오송 살기에 대한 보고

by 격암(강국진) 2023. 3. 15.

23.3.15

오송에 이사온 지가 이제 20일이 되었다. 사방에 널부러져 있던 짐들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마침 고장났던 티브이며 의자를 새로 주문해서 설치했으며 집 근처에서 짜장면 집도 하나 알아 놓았고 산책로도 대충 정리가 된 것같다. 이사로 일이 많았는데 일이 많자고 하니 자꾸 더 일이 생겨서 장모님의 생신도 있었고 유학가 있던 아들 딸들이 한국에 돌아온다고 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도 이것 저것 상담해 줄 일도 생겨 버렸다. 참으로 정신없는 시간들이다. 

 

오송지역에 대한 탐험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20일을 살아 본 결과 조치원 재래시장쪽이 아무래도 흥미을 끄는 쪽인가 보다. 주변에 가본 곳이 거의 없는데도 세종 재래시장은 벌써 꽤 여러번 다녀왔다. 거기서 산 반찬으로 비빔밥을 해 먹는다던가 거기서 산 뻥튀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떨어질 때마다 시장에 가서 뻥튀기를 사오고 있다. 다만 지난 번에는 베란다 차양막 설치를 위해 필요한 철사며 야채를 좀 사왔는데 그 야채 가격이 좀 사악했다. 차라리 동네 슈퍼가 더 쌀 정도고 싱싱하지도 않았다. 이 재래시장은 아무래도 내가 익숙한 전주의 모래내시장같은 곳과는 많이 다르다. 반찬이나 분식점, 빵집등 음식재료라기 보다는 완성된 음식을 파는 쪽이 훨씬 활성화되어 있고 야채는 동네 슈퍼보다 못할 수도 있다니 이건 모래내 시장같은 곳과는 정반대다. 

 

나는 아직 이렇다하게 오송의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주보다도 오히려 좀 투박한 것같다. 내가 겪은 사람이래 봐야 재래시장 빵집의 아저씨와 철물점 주인 아저씨 뿐이지만 뭔가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기대되는 서비스 정신 따위는 없고 말투가 짧고 거칠다. 그냥 웃고 말았지만 여기는 그래도 시골은 아니고 오가는 사람도 많으니 뜨내기에게 험하게 하는 것은 아닐 것같은데 그렇다. 오히려 전주는 토박이가 많이 살고 오송은 이런 저런 사람들이 뜨내기로 오고가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그런 것일까? 

 

뭐든지 익숙해지면 그것이 당연하게 보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에 익숙한 우리가 오송이며 조치원이며 세종을 알아가는 과정은 전주 사람도 오송 사람도 보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래내 시장에 익숙하기 때문에 나는 재래시장도 상당히 지역색이 있구나 하는 것을 민감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전주 안에도 여러 재래시장들이 있지만 그들 사이의 차이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같다. 오송과 전주가 시장만 다를까. 아마도 사람도 다르고 가게들도 다를 것이다. 

 

전주와 비교하면 이 지역의 모습은 가게의 구성도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전주에서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오송보다 훨씬 더 한잔할 것같은 술집종류가 많았다. 우선 호프집이며 막걸리 집이 전주에는 여기저기에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삼겹살집이며 일본식 이자카야며 가게들의 상당수가 퇴근 후의 한잔이 떠올려지는 집들이다. 그런데 오송은 우리 집이 있는 곳이야 아직 제대로 상가가 열려있지 않으니 말할 것도 없고 조치원을 가봐도 철도길 너머에 있는 오송의 생명과학단지쪽을 가봐도 그렇지가 않다. 그 많던 호프집이나 막걸리집이 여기서는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그런 건 전라도 유행인 것같다. 

 

아내도 이점을 느꼈는데 커피숍의 수도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술집이 많고 커피숍이 많은 전주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우리는 새삼 전주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도시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인구로 보면 수도권에 조금 더 가까운 조치원이나 청주시가 오히려 전주보다 더 많지만 관광지로서의 전국적 지명도로 보면 전주의 이름이 아무래도 더 앞선다. 그래서 그럴 것이다. 우리가 전주에 살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전주를 떠나와 보니 전주에는 참 식당이며 카페가 많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광객이 찾아오기 보다는 그냥 회사원들이 숙식하면서 출퇴근 하는 오송은 전주와는 아무래도 다른 것이다. 

 

전라도에는 이케아도 없고 코스트코도 없다. 그런 곳에 가려고 하면 차를 한정없이 타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곳이 외지기만 한 것같지만 전주는 보다 부유한 동네로 느껴진다. 오송은 가까이에 코스트코도 있고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수도권과 가까우니 스타필드같은 쇼핑몰과도 가깝다. 그래서 일 것이다. 오송은 자립적인 동네라기 보다는 많은 것을 주변에 빼앗겨온 동네라는 느낌이 든다. 즉 잠은 여기서 자지만 구경하고 분위기를 내고 쇼핑을 하고 싶으면 보다 번화한 근교의 어딘가로 간다는 느낌이랄까. 사실 전에도 말했지만 오송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허허벌판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 자립된 동네로 자리잡은 느낌이 덜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빼앗겼다기 보다는 아직 제대로 선 적도 없는 곳이다. 

 

물론 아주 외진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의 일정거리도 필요한 것같다. 남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나를 지키고 가꿀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되어야 내가 폐허가 되지 않는다. 사람과 지역에는 비슷한 면이 있다. 가까운 곳에 세종시립 도서관이 있고 청주시내쪽에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언제 시간이 나면 그쪽을 탐험하리라 생각하지만 참 이사하고 나니 잡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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