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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군사, 경제 그리고 문화로 본 미래

by 격암(강국진) 2023. 3. 23.

23.3.23

세상에 문명이라는 것이 존재한 이래 군사, 경제 그리고 문화는 모두 나름대로의 중요성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 중요성과 상호관계는 변화해 왔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군사가 그리고 경제가 마지막으로는 문화가 중요해졌다. 이같은 일은 국제관계에서 특히 명확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들은 당연히 국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먼저 군사력을 보자. 오랜동안 국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력이었다. 군사력이 없을 때에는 국가의 존립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시대이래로 항상 그랬고 근대시대에서도 그랬다. 강력한 군대를 가진 서양의 나라들은 식민지를 힘으로 정복하고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 앞에서 말한대로 군사, 경제 그리고 문화는 모두 나름의 중요성을 가졌지만 우선 순위가 달랐다. 산업혁명으로 발전한 경제가 있었다고 해도 강력한 군대가 없다면 그 경제는 세계로 퍼질 수가 없었다. 이런 예는 많지만 중국과 영국간의 아편전쟁을 포함한 유럽의 식민지 쟁탈전을 떠올리면 그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군대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는 형태는 오랜간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경제는 물론 풍요로운 선진국의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군사력으로 이득을 얻고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은 점차 비효율적인 것이 되었다. 이걸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이 바로 세계 1, 2차대전이었다. 발전된 기술때문에 이 전쟁들은 그 이전의 전쟁과는 비할 수 없이 큰 피해를 남겼다. 이렇게 되자 군사적 충돌은 경제 시스템을 황폐화 시키고 승리의 가능성이나 최종적 이득을 계산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것이 분명해 졌다. 유럽이 세계 대전에 빠져 들어서 황폐화 된 이후 세계적 슈퍼파워가 된 것은 자국의 산업적 기반을 보존한 소련과 미국이었고 그들은 군사적 충돌을 피한다. 그래서 그걸 냉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거대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는 한국전쟁이래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전쟁이라고 부르는 자잘한 군사적 충돌들은 강대국의 전면전처럼 세계 시장 경제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래서 식민지들은 모두 해방되었고 세계는 20세기 내내 무역과 경제발전에 매달렸다. 소련의 붕괴도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경제력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 사건같은 문제가 너무나 큰 경제적 댓가를 요구한 것이 소련의 수명을 짧게 한 것이다. 자연히 군사력과 경제력의 관계는 20세기에 확연히 바뀌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군사적 힘은 경제력이 강할 때 쉽게 증대될 수 있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절반밖에 안되는 한국이다. 유럽과는 달리 북한의 위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은 아주 단기간에 세계 10대 군사강국이 되었다. 이는 물론 한국의 경제성장때문이다. 게다가 발달한 기술 때문에 군사적 전면전은 가면 갈수록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핵무기가 나온 것이 반세기 전인데 핵무기 하나만 가져도 전면전이 힘들어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터는 경제로 바뀌었다. 국가들은 화폐가치나 무역 제재나 투자등의 방식으로 서로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경제도 한계를 보이면서 오늘날에는 문화의 힘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경제는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과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무력 충돌이 비현실화되는 것처럼 적어도 실물의 흐름이 존재하는 공장경제에서는 분쟁이 점점 비현실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걸 잘 보여주는 예가 일본의 한국 반도체 공격이다. 세계가 생산라인으로 얽힌 가운데 몇년전 일본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필요한 재료를 수출중지하는 공격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높이 발달한 시장경제안에서 이미 세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정부나 기업이 경제적 공격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한국이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면 한국만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게다가 경제방어를 한다고 자국을 고립시키면 경제적인 몰락이 오게도 된다. 따라서 세상은 점차로 경제와 정치를 구분하는 원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정치적이고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로 국가간에 다툼이 있더라도 경제공격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군사적 공격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오늘날 안중요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방면의 분쟁들은 그 결과가 너무 무시무시해서 억제된다. 비슷한 힘을 가진 두 나라가 전면전을 벌이면 둘 다 괴멸하고 만다. 그렇기에 오히려 쓸 수 없는 힘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우발적인 군사전쟁이나 경제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므로 사회는 그것을 억압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마련이다.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에는 문화가 경제와 군사를 주도하게 된다. 경제의 시대에 경제를 억압하면 군사력이 억압되는 것처럼 문화의 시대에는 문화를 억압하면 먼저 경제가 약해지고 종국적으로는 군사력도 약해지게 된다. 그런데 문화는 앞의 군사나 경제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고 관념적인 활동이다. 문화적 번영을 포기하지 않고도 문화를 규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절대 쉽게 말할 수 없다. 경제 시스템에도 자유가 있는가 하면 규칙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문화 방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제에 비하면 훨씬 더 광범위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을 때 문화적 성장을 생각하기는 힘들다. 문화는 군사나 경제보다 훨씬 더 추상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화없는 경제를 상상해 보면 그걸 알 수가 있다. 그럴 때 우리가 고부가가치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은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그저 의식주의 기본적인 것만을 양적으로 해결하는 문제만 남을 것이다. 무엇이 유행하고 무엇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지 알고 규칙으로 제약을 가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마치 음악은 꼭 북으로만 해야 한다고 규제하면서 음악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시대변화는 하나의 사회를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큰 의미가 있다. 군사력의 시대에 정치적 지도자는 군사력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어야했고 과거의 위대하다는 왕들은 대개 정복왕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이래 뛰어난 정치적 지도자는 경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군사적 긴장 상태나 전쟁을 일으키는 정치 지도자는 20세기 이래 망국을 부르는 최악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단순히 경제만을 알아서도 곤란하다. 오늘날 문화가 가지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를 주도할 때 그는 마치 군사 지도자가 시대착오적인 행위를 하는 것같은 일을 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를 보자.  한국은 해방이래 오랜간 군사독재에 시달렸다. 국내적 혼란이 존재할 때 그것을 억누르는 자는 결국 군인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부같은 군사 독재 정부에서 돈은 총보다 약했다. 따라서 그 시대에 누구보다 부자는 박정희와 전두환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력이 증가함에 따라 군인은 한국 사회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 된다. 어차피 외국과 전쟁을 하지도 않을 상태에서 자국 시민들에게  총으로 위협이나 할 줄 아는 군인들이 언제까지 국가성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가 아니면 군사독재가 계속 되는가의 양자선택중에서 한국은 경제를 선택한 것이고 한국 정치는 군사독재를 벗어나 문민정부의 시대를 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여전히 북한처럼 가난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저처럼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는 이유도 그 사회가 여전히 군인들에게 지배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문화의 시대에 다시 한번 각성할 것을 촉구 받고 있다. 군사도 경제도 소중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는 점점 한 국가나 사회의 힘이 문화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회가 되어야만 발전은 지속될 수 있다. 군사와 경제와 문화가 가지는 관계가 결코 예전같지 않다는 것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군인들은 그저 질서만 잡고 열심히 일할 것을 촉구하면 나라가 번영한다고 생각한다. 군사력이 강해야 나라가 번영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인들은 그것이 턱도 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고 경제논리가 필요하다. 게다가 강력한 국방력도 결국 경제번영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요즘 군사력을 가지고 어떻게 돈을 번다는 말인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역사나 공동체 정신 그리고 환경문제나 윤리의식등 여러가지 방면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비전없이는 경제적 성장도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군사독재자들이 돈이야 벌면 되는거 아니냐고 말할 것처럼 경제적 이해에만 매몰된 사람들은 문화도 그냥 돈을 퍼부으면 성장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군사독재자들은 자유를 요구하는 1980년대의 젊은이들을 폭도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경제논리에 눈이 먼 사람들은 문화의 시대를 예감하고 열어가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성가시게 여기는 면이 있다.

 

그들의 인간론과 행복론은 여전히 매우 단순하다. 상상력이 부족한 그들은 직업이란 단순히 봉급으로 평가되는 것이고 집이란 단순히 가격으로 평가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니 이야기니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고 음식을 먹던 옷을 입던 여행을 하던 사실 문화적 인간은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문화의 시대는 그 본질이 민주적이므로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그들은 거꾸로된 엘리트주의를 가지고 있다. 거꾸로된 엘리트주의란 과거 시대의 엘리트를 오늘날의 엘리트로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문화의 시대가 민주적인 시대라는 점에서도 시대착오적이지만 엘리트를 선정한다고 해도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정복왕은 과거에는 훌룡한 지도자였지만 오늘날에는 미친 망국의 지도자일 뿐이다. 경제와 정치를 구분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한국에 경제공격을 한 일본의 지도자도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 망국의 지도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의 엘리트가 오늘날에도 엘리트일거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거꾸로된 엘리트 주의다. 이런 면때문에 그들이 엘리트로 지도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엘리트가 아니라 시대에 뒤진 열등생에 불과하다. 윤석렬이 대통령이 된 이래 대한민국은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것이 수모이고 수치라는 것을 적어도 문화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낀다. 문화적인 인간이라면 윤석렬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미 수준이 안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윤석렬이 대통령이 되었는가? 이는 여러가지로 답할 수있지만 그걸 답하는 한가지 방식은 이 시대가 문화의 시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과거의 망령을 쫒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한국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경제의 시대를 살거나 심지어 군대의 시대를 살고있다. 21세기의 한국이 그렇게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과거의 군사독재때문에 한국이 지금 부자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실 북한으로 보내야 할 사람들이다. 독재가 번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세계에는 아직도 군사독재에 시달리며 지독히 가난하게 사는 나라가 있다. 북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는 경제의 시대를 지나 문화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차이를 계속 이해하지 못하고 억압하기에 성공한다면 우리도 북한이 될 것이다. 현상유지도 못하고 다시 군사독재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 살아있는 것은 성장하기를 멈출 때 제자리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마치 공상과학의 시대가 2020이 되서 열리는 것같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표적이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상온초전도체, 상온 핵융합, 양자 계산, 노화극복등 예전에 완성되면 세계가 바뀐다고 말하는 기술들이 하나둘씩 현실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거리에는 과거에는 꿈만같았던 전기차들이 엄청나게 다닌다. 그와 동시에 위기도 심각하다. 기후위기, 경제위기, 정치적 파산등 여러 위기가 미국, 중국, 유럽, 일본등 어느 나라나 존재한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미래를 이해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사회는 퇴보할 것이다. 군대의 나라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기면 군사독재의 시대가 열릴 것이고, 그 한계로 인해 지금 전세계가 정치, 경제적으로 난리가 나 있는데도 아직도 싸구려 시장주의에 매몰되어 그저 돈이나 세고 있다면 우리는 세계가 경제적으로 파산할 때 함께 파산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의 힘이 뭔지 알고 있는 사회라면 급격한 성장을 할 것이다. 나는 한국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그러기를 바란다. 한국은 식민지 쟁탈이나 외국을 침략하는 일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성장한 드문 나라다. 우리의 역사는 한반도에 머물러 있고 광대한 영토를 추구하기 보다는 문화의 힘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한국은 방대한 역사 기록을 가지게 된 것이고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문자로 쓰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정복왕을 자랑할 때 우리는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자랑한다는 것은 알고 보면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디 이런 희망이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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