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12
힘든 시절이다. 얼마전에는 하지도 않아 내버려 두었던 트위터에 갔다가 불쑥 이렇게 글을 쓰고 말았다. 나는 홍범도 장군을 존경합니다. 독립을 위해 인생을 바친 분에 대해 이런 걸 굳이 말해둬야 하는 시대다. 나는 이런 시대가 싫다. 요즘은 나보다 시사 뉴스를 더 많이 보는 아내는 한국이 절망적이라면서 화를 낸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어둠이 깊은 걸 보니 해가 뜰 때가 멀지 않았나 싶다고, 나라가 거의 망해가니 망하고 나면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 두었다. 즉 지금은 나라가 진짜로 망하기 전에는 제 길을 갈 희망이 없어보인다. 경제적 폭망이든 외교적 폭망이든 모두가 아니 이럴 수가 싶은가 정도의 대재앙이 진짜로 와야만 하나보다. 그러기 전에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입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국내 경제는 폭망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연구자들을 이권카르텔이라 부르며 연구비를 깍고 외국에 나가서 펑펑 인심이나 쓰며 일본 오염수 방출을 홍보하고 변명하는데 조단위의 돈을 쓴다. 이래도 된다. 이래도 되니까 집권을 한다. 도대체 한국은 왜 이럴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가지 말해질 수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바로 윤대통령이 입에 담기 좋아하는 그 카르텔일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대통령은 바로 자기 자신이 그 이권 카르텔의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이지 개혁자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연구 하는 사람들 중에도 연구비를 맘대로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한국의 연구자중에 누가 그렇게 해서 큰 부자가 되었나? 연구비 착복으로 빌딩이라도 세우는게 가능이나 하나? 땅투기로 돈을 버는 자기 주변의 사람에게서는 이권으로 뭉친 탈법적 집단은 보지 못하고 박봉에 힘들게 사는 연구자들에게서는 이권 카르텔을 보는 자가 제정신인가? 예전에 나는 검사들이 재산 공개할 때 그 재산이 전부 수십억대 이상인 것을 보고 새삼 놀랐다. 검사들의 공식적 수입인 월급이 그렇게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들 다 부자일까? 이런 현실을 보면서도 검사들은 스스로가 이권카르텔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보다. 마치 재벌 3세가 그냥 좀 노력했더니 돈이 막 벌리던데 가난한 사람들이 게으른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듯 검사도 자신들의 재태크를 당연한 것으로 볼 뿐인가 보다. 이권 카르텔? 검사들도 고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란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검사들 평균 재산이랑 교수나 연구소 연구원들 평균 재산을 한번 비교해 보자. 연구원이나 교수가 누가 큰 돈을 만진다는 것인가. 이권 카르텔이란 단어를 굳이 쓰자면 누가 더 어울린다는 말인가.
한국 정치는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수는 경제와 교육을 모두 잡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교육적으로 보수의 영향을 받는다. 민주 세력이 그나마 숨쉬는 쪽은 문화계 정도일 것이다. 이제는 노동계조차 별로 진보적이지 않다. 그들은 그저 이권단체에 불과해서 자기 손가락만 아파하는 것같다. 지금 정부에서 터져나온 이슈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간호원, 자영업자, 트럭운전사, 교사들등 여럿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지난 대선에서 누굴 찍었을까? 심지어 진보니 노동이니 여성계니 하는 단체들도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보수정부를 찍으면 여성평등이 이룩된다는 해괴한 패미니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의 철학인지 기이하기만 하다. 이런 걸 생각하면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마음이 가질 않는다. 이럴 줄 모르고 윤석열을 찍었다는 말인가. 이러니 세상이 보수로 기울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의 중심에는 돈이 있다. 한국 경제는 재벌과 부동산이라는 두 단어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업종에서 큰 손이라는 사람이 민주 세력을 지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왜 그렇겠는가? 그들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헌법에 반대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인데 그걸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이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는 도둑놈 심보정도로 여긴다. 아래에 더 말하겠지만 그들은 헌법정신을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지 그걸 진짜로 진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딴 세상에 있다.
한국 정치의 수준은 바로 카르텔때문에 그렇다는 윤대통령의 말은 어느 정도 옳다. 그게 윤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문제지. 그리고 카르텔이나 패거리 정신이 꼭 보수에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카르텔이 넘쳐나는 세상은 한국의 보수지지층이 가진 사고방식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두번째 문제는 시스템 철학의 부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보수 지지층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시스템이란 걸 이해할 능력이 안되거나 그런 이해를 하지 못하도록 우민화를 열심히 하는 미디어에 중독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소위 '현실'이란 것에 지나치게 절망한 나머지 권력에 굴복하는 일을 너무 당연시 여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보수들은 여전히 봉건시대 왕조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시스템이 일을 하는게 아니라 왕이나 귀족같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서 제멋대로 척척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군인이 한명죽었을 때 그게 누구 책임인지 수사하는데 대통령이 끼어들어서 봐주라던가 엄벌하라던가 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벌 회장이 뭐든지 맘대로 하듯이 대통령도 왕처럼 무슨 일이든 끼어들어서 일처리를 할 수 있고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을 궁궐앞에 있는 신문고를 두드리면 왕이 나와서 듣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런 세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보수 지지층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바로 누가 누구보다 위인가 아래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세계에 드물게 깃수 따지고 나이따지는 것도 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만나이가 정착되지 못하는 것도 한국식으로 따져서 깃수처리하듯이 나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은 3학년에게 군림해야 한다는 식이다. 언니나 오빠니까 그렇다. 그들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단순히 지위의 높고 낮음만 따진다. 그래서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우리 집에가서 변소청소를 하라고 해도 되고, 의사의 부인은 레지던트의 부인에게 나는 너보다 높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행동한다. 다시 말해 더 높은 지위에 있으면 모든 일에 대해 아랫사람에게 명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파트 관리인보다 자신이 높다고 생각하는 입주민은 아파트 관리인이 휴가기간에 여행을 가고 오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뭐든지 명령하면 관리인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단골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사람을 길에서 만나도 웨이터로 취급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을 계급의 높고 낮음으로만 보고 그것에 경계를 두지 않으며 그걸 하나의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관계라고 보기 보다는 인간의 본질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분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보다 열등하다는 식의 생각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럽다.
이런 사고 방식을 긍정하면 우리는 한가지 결과를 얻게 된다. 그것은 상사의 잘못을 모두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가 사람을 죽여도 일을 하다보면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가족의 가장같이 몇사람이나 고작 2-30명의 사람들로 이뤄진 집단의 리더를 말하고 있는게 아니다. 5천만명의 국민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수십만명의 종업원을 가진 대기업의 총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런 거대한 집단에서 맨 정점에 서있는 사람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을 전권을 가지고 처리하면 반드시 살인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이건 우리가 길을 걷다보면 개미를 밟아죽일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시스템 안에서도 우리는 나름의 재량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 하지만 그 범위는 지극히 제한되어야 한다. 하나의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는데 법안을 하나 통과시키고, 행정명령을 하나 내릴 때마다 누가 죽는지 어떻게 다 알겠는가? 그리고 매우 많은 경우 무한히 옳은 판단이란 없다. 다시 말해 어떤 법이든, 어떤 명령이든 결과적으로 사람이 죽는 일을 피할 수가 없다. 문제가 전혀 없고, 고통이 전혀 없는 세상이란 없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하고 미묘한 포인트가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고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크고 복잡한 시스템에서 누군가가 전권을 가지고 일을 하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살인죄를 피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민주 세력은 박정희, 전두환을 살인자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독재를 했기에 자기 판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합의한 시스템에 따라서 일을 처리할 때는 사람이 죽어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기로 한다는것이 바로 시스템에 의한 행정이다. 대통령쯤 되면 거대한 비전을 내미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자신이 독단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게 정상이다. 그나 그녀는 그저 시스템이 정해진 원칙대로 굴러가도록 관리할 뿐이다. 누구도 시스템보다 더 우위에 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권력이 클 수록 아주 작은 행동만으로도 누군가의 생계를 끊어버리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적이라면 더 큰 권력을 가질 수록 사실 더 큰 제약을 느껴야 정상이다.
그런데 위 아래 따지는 나머지 제일 윗사람이 모든 권한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지위의 높낮이 밖에 모르는 보수층은 이런 살인행위를 그저 통치하다보면 생기는 일로 비판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다. 지금이 왕조시대, 봉건시대라면 말이다. 독재는 확실히 필연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걸 그냥 정상적 통치의 결과로 여겨야 한다. 그래서 왕정국가에서는 왕의 통치속에서 누가 죽어도 그걸 왕탓이라고 하지 않는다. 왕은 그래서 백성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이 그런 시대인가? 그렇게 통치될 수 있는 단순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보수 지지자들은 이해를 못한다. 대통령과 왕을, 기업회장과 왕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여전히 회장아들이 또 회장이 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서울대 교수아들이 교수직을 세습한다면 그게 말이 안된다고 말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거대 기업의 총수자리는 대학교수보다 하기 쉬운 자리라는 말인가? 거기에는 전문성따위는 필요없나? 이걸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자기는 지금 봉건제와 공화제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기업에 대한 권리따위를 운운하는 방식으로 사고가 돌아간다면 당신은 지금 봉건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 회사의 주식을 모두 그 집안에서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왕건이 고려를 세웠으니 고려는 왕씨집안의 것이라는 식으로 돌아가는 사고는 오늘날 정상이 아니다.
민주적 시스템은 거의 저절로 돌아간다. 누가 누구보다 위가 아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니 나로호 발사하는데 가서 지금 로켓 발사하라고 명령하면 그렇게 해야 되는게 아니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높고 낮음이란게 민주적 시스템에도 있지만 그건 제한된 사항에 대해서, 제한된 상황에서만 따지는 것이지 사실은 다 각자 자기일을 할 뿐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일을 하고, 청소부는 청소부의 일을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청와대 요리나 경호에 대해서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요리나 경호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에 대한 전문가가 수두룩한데 말이다. 그러니까 시스템이란 걸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그저 위아래로 보는 보수 지지층들이 절망적이고 답답한 것이다. 점보여객기를 타고 있지만 사고방식이 소달구지 몰고 있는 사람과 같으니 조종간에 원숭이를 보낸다. 아무 스위치나 누르는 원숭이와 함께 여객기는 추락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는 소위 모더니즘의 폐해를 걱정한다. 이것은 시스템이 너무 거대해져서 관료화를 하고 나서도 생기는 문제인데 한국은 아직도 봉건과 모던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패거리 주의는 보수건 민주건 어느 진영에나 있지만 보수는 봉건적 사고 방식 때문에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한다. 절대 선진국을 운영할 수 없는 사고 방식이다.
한국이 이런 함정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IMF로 나라가 부도가 나고서야 비로서 민주 정권이 집권하기 시작했고 이 나라가 북한과 달리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이 생기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해야 부자가 되는 것이다. 보수지지층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는 보수가 잘 안다가 아니다. 그들은 후진국 경제만 알 뿐이다. 그런데도 한국 시민들중의 다수는 여전히 왕정의 시대, 무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무지는 결코 단순한 설득만으로 깨어날 것같지 않다. 살을 가르고 살을 태우는 고통이 있으면 그저 일부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길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나라는 지금 망하고 있다. 그래도 이 폐허속에서 사람들이 뭘 배운다면 우리는 미래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라가 망해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있으면 재벌이고 언론이고 은행이고 검사고 모두 꼴 좋은 일을 당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가진다. 나는 이 나라의 대중이 지능이 높다고 믿는다. 사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다르지만 문제는 마찬가지다. 일본이나 중국은 아예 정권교체도 제대로 이뤄본 적이 없다. 반면에 한국은 언제나 나라가 망할 것같아도 더 강하게 부활해 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을 나는 믿는다. 다만 눈앞의 참상은 피할 도리가 없는 것같다. 이미 나라꼴이 엉망인데 언론이고 재벌이고 여전히 한가한 소리를 하는 걸 보면 그렇다. 예를 들어 일반인은 그렇다치고 재벌회사들도 이 정권들어서 치명타를 입었다. 이런 현실에서도 언론들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 검사들도 기세등등하다. 이게 재벌들이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으면 가능할 일일까. 그런데 이래도 되는 걸까. 예를 들어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거의 퇴출되는 수준이라고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망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검찰이고 언론이고 재벌이고 경찰이고 학계고 언제까지 이 일들이 모두 남의 일인 것처럼 뒤에 있을 것인가. 나라가 망하고 있다. 계속 헛소리만 하면 이번에는 회복불능으로 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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