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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이해하기

문제와 해법

by 격암(강국진) 2024. 4. 10.

지금도 그렇지만 종교의 시대, 전근대화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문제들을 가졌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대개 그들이 그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예를 들어 비가 오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농사가 경제의 중심이었던 시대에 가뭄은 심각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과거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그들은 기우제나 정치가의 정책에서 그 답을 찾았다. 그러니까 하늘에 제를 올리지 않아서 비가 오지 않는 것이거나 세상에 노총각 노처녀가 너무 많아서 그들의 원한이 비를 오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동네나 집안에 안 좋은 일들이 계속 생기면 그걸 어떻게 해결하는가? 절에 찾아가서 기도를 하거나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문제를 해결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영험하다는 절에 가서 기도를 하거나 그 코를 만지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불상에 찾아가서 해결한다. 남근석도 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굿이나 당대의 의원이 해결한다. 그들은 이론도 있었다. 주역이나 음양오행설같은 거 말이다. 

 

물론 현대인의 눈에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사람들은 비과학적이고 문제를 가졌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채 고통받으며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비가 오지 않는 것의 원인이 기우제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 가뭄을 해결하는 과정이고 수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도 물론 기우제를 지낸다고 당장 비가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엉터리 치료법을 믿었던 사람들은 그런 치료가 언제나 병을 고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다른 해법과 이해를 가지지 못했던 그들은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집트에는 피라미드가 있고 한국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 나는 이런 과거의 유물들을 볼 때 과거의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현대의 자원과 기술로도 쉽지 않은 일들을 과거에 하려면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들의 믿음에 진심이 아니었다면 그걸 할 수 있었을까? 피라미드는 그렇다고 쳐도 팔만대장경만 생각해도 그렇다. 그걸 만들던 시절은 외적이 처들어 온 국난의 시절이었는데 15년에 걸쳐서 목판을 만들고 그걸 천년가까운 세월동안 유지하는 일이 진심이 아닐 수 있을까? 과거의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진심이었다. 그걸 오늘날의 눈으로 보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이걸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문제가 없는가? 이렇게 말하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세상에는 문제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할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떤가? 우리는 그걸 해결하고 있는가? 아니면 포기하고 있는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돌아볼 때 우리의 해법은 두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우리가 그걸 해결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은 본래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해결하는 방식은 대개 관행적이고 직관적이다. 우리는 대개 어떤 전문가를 키우고 그 전문가가 경험에 의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무당이나 의원이 그랬듯이 말이다. 경제문제는 경제학자가 해결한다. 병은 의사가 치료한다. 사회적 진실을 보도하는 것은 기자이며 법적인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법관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선택하는 일은 정치가가 하고 어떤 주장과 정보가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학자들이며 어떤 상품이 좋은가를 결정하는 것과 사람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것은 대개 시장이라고 믿어진다.

 

우리는 문제를 사라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문제를 이미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문제는 애초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고 믿게 해서 그렇다. 문제가 있었는데 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생긴다. 우리는 우리의 눈이 두개라던가 팔이 두개라서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눈을 3개로 만들 방법이 생기고 나서야 우리는 눈이 두개 뿐인 상황이 문제를 가진 상황이며 그것때문에 우리가 고통받아왔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마을의 흉한 일은 귀신때문이고 따라서 그걸 무당이 하는 굿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문제는 없다. 이미 문제를 무당이 해결하고 있다. 현대인의 눈에만 문제가 존재하는데 그걸 해결하지 못해 그 사람들은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보일 뿐이다. 

 

이는 우리에게 두가지를 가르쳐 준다. 첫째는 잘못된 해법에 대한 믿음이 없는 문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이런 저런 어려움들이 이런 저런 원인으로 생긴다는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 있다는 것이다. 해법이 있으므로 우리는 문제를 가진다. 그리고 그 해법을 써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굿이 아이를 낳게 만들어 준다는 믿음이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잘못된 이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실 현실의 많은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그다지 좋지 못한 이론들이다. 우리는 너무 이론이 많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당장 몇가지의 이론을 만든다. 학원이 문제일 수도 있고, 친구가 문제일 수도 있고, 아이에게 더 엄격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이론들이 꼭 옳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한번 해볼 수는 있는거 아니냐고. 뭔가 해야지 손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뒤돌아 보면 그런 식의 태도는 있지도 않았던 문제를 스스로 만드는 경우일 때가 많다. 나는 왜 부자가 아니냐고 고민하고 노력했는데 10년이나 20년쯤 지나 뒤돌아보면 어이없게도 나는 이미 부자였으며 아무 것도 안했으면 지금쯤 꽤 부자일텐데 부자가 되겠다고 이것저것 하다가 다 날려먹었다는 식의 결과일 때가 있다. 당첨된 복권, 앞으로 오를 주식이 이미 내 손에 있었는데 그걸 스스로 던져버린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이론덕분에 신중하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두번째는 그 반대의 것이다. 올바른 이론 혹은 진정한 관점의 확대는 문제를 보게 만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조선말엽에 사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 나라는 곧 망할 예정이다. 근대화가 이미 생겨난 뒤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눈에 전근대적인 그 나라가 해야할 일은 참으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 말엽을 사는 사람들중 대부분은 그 시대는 문제가 없으며 할 일도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근대화라는 것이 뭔지 모르는 그들로서는 세상은 그대로 좋았고 있는 문제들은 해결되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나머지 사람들도 대부분은 옳은 이론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문제진단과 해법은 엉뚱했을 것이다. 결국 조선이 망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이 그 시대로 돌아가서 산다면 할 일이 너무 많은데,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은데 세상이 너무 느리게 돌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물론 올바르다던가 진정하다던가 하는 관점의 기준은 애매하다. 그러나 전혀 아무런 기준도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은 말하자면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패러다임이 올바르다던가 진정하다던가 하는 표현을 받으려면 명쾌하고 더 큰 범주를 가져야 한다. 즉 기존의 방식이나 사회를 꽤뚫어 볼 수 있어서 시대적 과제, 시대적 문제를 분명하게 들어내고, 미래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많은 문제의식과 해법들은 깊이가 없다. 그냥 있는 현실에 대한 작은 수정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며 지금의 현실에 대해, 지금의 사회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다. 

 

예를 들어 선거철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세상에는 법하나만 고치면 세상을 확 바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별의 문제건, 경제 불균형의 문제건, 주택 문제건, 과학발전의 문제건 그들은 그냥 법하나만 고치면 된다고 말한다. 출산율이 낮아서 문제라고? 그냥 파격적으로 애를 낳는 부부에게 5억씩 주면 된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그걸 해법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파격적 방법들이 꼭 틀리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보면 대개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법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게 어렵거나 그런 법을 만들어도 세상을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문제의식과 해법은 올바르고 진정하지 못한 것이다. 

 

노자 53장에 큰 길은 지극히 평탄하건만 사람들은 샛길을 좋아한다라는 말이 있다. 크고 작은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기는 하다. 어떤 해법은 1년짜리지만 어떤 해법은 백년 천년을 본다. 크고 먼 길을 가는 사람을 짧은 길을 가는 사람이 보면 어리석고 도저히 갈 수 없는 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1년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오늘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어떤 사람은 코앞의 문제를 대처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긴 미래를 대비해야 하기도 하다. 

 

하지만 좁쌀같이 작은 관점에 빠져서 살아가면 진짜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보이지 않으니 해결도 물론 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에서 벗어나 과거를 보고 세상을 보면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진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인간답다는 것은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인간답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잘난 체를 할 수 있는 돈이나 명예를 얻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인간답다는 것은 그런 말을 붙일 만큼 세상을 넓고 크게 보는 것이다. 한껏 크게 본다고 해도 인간은 언제나 유한하기는 하다. 그러나 짐승처럼 살다가 사라지고 만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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