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체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너는 잘나지도 않았으면서 대단한 사람인 척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아주 자주 스며있는 의미도 있다. 그것은 첫째로 이 세상은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 우리는 모두 같은 상식에 따라 똑같이 살아야 하는데 너는 왜 다르게 사냐는 것이다.
나는 잘난 체하는 것이 주로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밥을 먹는데 옆에서 너는 짜장면 먹어라, 너는 탕수육을 먹어라하고 조언하다못해 강권하는 것이다. 자기 밥을 고르는 것도 아닌데 남의 일에 대해서 왜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할까? 그 이유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주유소에서 불장난 하는 사람을 보면 불장난하지 말아라라고 말할 때와 같은 정신이 여기에는 스며있다. 나는 주유소에서 불장난 하면 안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주유소에서 불장난 하는 사람을 말릴 때 내가 잘난 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는 왜 이 집에 와서 짜장면을 안 먹고 짬뽕을 먹는가. 너의 선택은 잘못되었으니 바꿔라라고 말할 때고 같은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남들의 일에 끊임없이 간섭하면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보기에는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일이란 복잡한 것이라 대개 정답이 없다. 1000원짜리를 누군가가 1200원에 산다고 해도 그게 꼭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쩌면 그 사람은 그 가게를 좋아해서 그렇게라도 구매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 사람은 살면서 200원가지고 일일이 따지는 것에 정신적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 오히려 낭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제로 돈버는데 아주 바쁜 사람들은 최저가 구매같은 걸 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보다 바가지 가격이라도 빨리 구매하는게 돈을 버는 일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에 정신적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외식 3번할거 2번하고 아이스크림 5번 먹을 거 4번 먹는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구나 대개 사람은 실패로 배우는 것이라 옆에서 자기가 정답을 안다고 해도 일일이 간섭해서 교정해주기 시작하면 그건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을 지배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에 간섭했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그 사람은 그 조언자에게 뭘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본래 모든 일들은 서로 얽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수 많은 일들을 잘 알 수가 있을까? 그건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섯부른 일반화의 대가들이다. 뭘 하나 보면 열가지를 이건 당연히 이렇다고 짐작해 버린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 대해서 정답이 척척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옆집아이가 서울대 갔던데 그 아이를 보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하더라같은 것을 보면 그 다음에는 공부는 반드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식이다. 세상일에는 확실한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꼭 바보라서 그러는게 아니고 실제로 세상일에는 예외가 많기때문에 이건지 저건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인데 단순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사려깊거나 조심스럽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바보라고 생각한다. 뻔히 이게 저건데 왜 모르냐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례중에 제일 인상 깊은 것이 공부에 대해서는 뭐든지 아는 엄마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연구소에서 일했던 시절 당연히 연구소의 남자들은 대부분 명문대 출신의 박사들이었다. 그런데 그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보다 공부를 못하는 그들의 아내들은 한결같이 공부에 대해서라면 자신이 더 잘안다고 확신에 차있다. 그러니까 실제로 공부를 더 잘했던 남편들은 그냥 재능이 넘쳐나서 공부를 잘한 것이고 공부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라면 자신들이 더 잘안다는 것이다. 연구소 박사들의 아내들은 대개 남편들을 바보로 안다. 그러면서 공부를 이렇게 시켜야 한다, 저렇게 시켜야 한다는 확신에 차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런데 이렇게 일반화를 잘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하자.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는대로 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옆에서 열심히 그게 아니라고 조언하는 그 사람의 말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조언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할까? 바로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너무 잘난 체를 해.
그러니까 내가 짜장면을 먹을 지 짬뽕을 먹을 지를 선택하는 문제를 주유소에서 불장난 하는 문제로 만들고 옆 사람의 조언에 따르지 않으면 내가 잘난체를 하는 사람이 되는 식이다. 이건 오히려 자기가 잘난 체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잘난 체를 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니까 어이가 없는 일이 된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흔하다. 내가 극단적인 예를 들었기 때문에 간섭하는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들어나지만 세상일이라는게 이렇게 극단적인 일들로 딱딱 나눠지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확신을 가진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은 여러가지로 얽혀 있다. 가족이라서, 직장동료라서, 친구라서, 이웃이라서, 비지니스 파트너라서 남의 일은 꼭 남의 일만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와 만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내가 보기에 정말 바보같은 일들만 하면서 미적대고 있다면 나는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내가 어떻게 일을 하건 내 선택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너와 내가 어떻게 그렇게 니일 내일이 구분되냐고 할 것이다. 오빠와 동생이 서로 간섭 안할 수 있는가? 동업을 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웃간에 옆에서 뭘하던 상관없을 수가 있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잘난 척하고 있는 것인가? 말했듯이 세상일이란 칼처럼 나눠지지 않기 때문에 몰상식한 일은 용납하지 말라라던가 남의 일은 간섭하지 말라는 원칙으로 일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극단적인 경우들이 있다. 그런 경우 상대방에게 잘난 척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에게 사실은 잘난 척하는 것은 당신 쪽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걸 이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고, 그렇게 확신할 수 없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상대방은 주유소에서 불장난하는 걸 어떻게 그냥 두고 보냐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들의 가치관에서는 그게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피곤해지는 한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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