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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진보와 보수 그리고 시대적 착오

by 격암(강국진) 2024. 7. 15.

내가 좋아해서 종종 언급하는 나심 탈렙은 그의 책 블랙스완에서 돈을 투자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있다. 그는 본래 투자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투자법은 어떤 의미에서 블랙스완의 핵심적 행동강령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복잡하고 빨리 변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오늘날과 같은 환경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의 말은 진보와 보수라는 말을 바람직하지 못한 구분으로 보이게 만든다. 다시 말해 현대적 환경에서 우리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나심 탈렙의 투자법은 무엇인가?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들의 미래 예측이 틀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잘 일어나지 않을 것같다고 생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잘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 그의 책 블랙스완의 핵심적 메세지다. 그런데 잘 일어나지 않는 일에는 재앙도 있고 행운도 있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재앙도 행운도 생각보다는 많이 일어나니까 남들이 모두 이게 맞다고 말하는 평균같은 것, 적당히 위험한 일에 매달리지 말라고 한다.

 

왜 그런가? 그의 말을 내 식대로 요약해 보기 위해 예를 들어 3개의 투자처가 있다고 하자. 1번 투자처는 매우 안전하지만 그래서 수익이 좋지 않다. 2번 투자처는 적당히 안전하지만 그만큼 실망스런 수익을 준다. 그리고 적당히 안전하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약간의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3번 투자처는 매우 위험하지만 수익이 매우 크다. 이에 대해 나심 탈렙은 사람들이 전 재산을 2번 투자처에 놓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면 1번 투자처는 수익이 너무 안좋다. 그리고 3번 투자처는 너무 위험하다. 그러니까 적당히 중간을 택한다. 그런데 이게 바보짓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2번 투자처가 말하는 약간의 위험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약간이 아니라서 그렇다. 우리는 그것이 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고 IMF 사태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그래서 계속 그런 중간상태에 머물게 되면 전재산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수입도 별로다. 

 

그래서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전 재산의 상당부분을 1번에 놓으라는 것이다. 안전에 관한한 우리는 매우 보수적이 될 필요가 있다. 적당히 안전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매우 안전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재산의 나머지 부분을 3번에 놓을 것을 제안한다. 왜냐면 행운도 생각보다 자주 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돈의 투자에 대한 것이지만 인생을 투자하는 것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당신은 당신 생활의 상당부분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살아야 한다. 위험할 소지가 있고, 문제가 생길 소지가 없도록 아주 안전하게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라. 그리고 나서 남은 시간과 에너지는 무모해 보이는 꿈을 쫒으라는 것이다. 생각지 못한 불행과 성공한 꿈은 생각보다 더 잘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시간만 흐르다가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반드시 찾아오는 불행 한번에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심 탈렙은 평범하게 평범하게 계속 살면 필연적으로 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심 탈렙이 말하는 것은 미래의 예측불가능성이고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곳일 수록 옳은 말이 된다. 반대로 말하면 단순하고 변화없는 삶에서는 적당히 중간으로 사는게 답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심 탈렙이 추천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보수일까 진보일까? 이 사람은 이 두가지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안전만 추구하는 쪽은 여러번 확인의 확인을 거친 방식대로 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변화가 없는 보수의 얼굴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쪽은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심 탈렙에 따르면 그냥 모두 보수인 사람이나 그냥 모두 진보인 사람은 새 시대에 어울리지 않고 결국 망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메세지는 2차 세계대전때 나치 소년단 학생과 대화를 나누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하이젠베르크에게서도 나온다. 혁명적인 과학이론을 발표한 하이젠베르크가 나치 혁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하이젠베르크는 혁명이란 그냥 아무 거나 쉽게 부정하고 기존의 시스템을 전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와는 반대로 기존의 시스템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혁해야 할 부분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그곳에만 힘을 모을 때 혁명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너무 쉽게 부정하는 진보가 혁명을 이룰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것을 지키려고만 하는 보수도 비판한다는 점에서 하이젠베르크의 메시지는 나심 탈렙의 메시지와 이어져 있다.  

 

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것은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능하지 않다. 보수건 진보건 진짜로 성실하다면 자신의 사고 방식과 행동에 대해 검토와 검토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수로 말하건 진보로 말하건 성실하지 못한 것이 현실인 것같다. 그냥 뻔한 말을 반복하면서 대충 모든 것을 그냥 이대로 두자고 하거나 눈에 보이는 대로 부정하는 것을 보수나 진보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말이다.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그래서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원래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렇다.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냥 쉽게 사람들을 편으로 가르고 찬반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라는 것은 점점 더 백해 무익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문제들 중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그걸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푸는 동안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보수니 진보니 하는 선입견을 가져다 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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