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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나쁜 짓과 국가의 희망

by 격암(강국진) 2024. 12. 8.

나쁜 짓은 돈이 된다. 그래서 이익만을 노리는 사람들은 나쁜 짓에 유혹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물론 나쁜 짓에는 댓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 댓가에는 사법적 처벌은 물론, 개인적 양심의 문제도 있지만 자본이 개인의 의지 이상의 것을 가지고 움직이는 세상에서는 이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같다. 법인화된 기업처럼 다수의 얼굴없는 투자자의 힘을 업은 자본은 항상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은 나쁜 짓인데도 처벌을 받지 않을 방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나쁜 짓은 나쁜 짓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하게 사는 일로 바뀐다.

 

그에 따른 법적인 처벌은 물론 개인의 양심문제도 시스템이 해결해 준다. 내가 어떤 소년을 착취해서 돈을 번다던가, 무지한 노인의 재산을 빼앗아 거지로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을 직접 하는 것과 그렇게 하는 기업에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이제 그런 일을 벌인 자본의 일부이며 그런 악행의 결과를 즐기기까지 하는 사람도 그게 내가 직접 한게 아니라는 생각에 수 많은 변명을 동원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런 시스템의 일부가 되면 거기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한국이 불의하게 돈을 번다고 해서 한국인이기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나쁜 일이란 단지 개인적 윤리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결과가 있다. 즉 어떤 일이 나쁜 일로 여겨지는 것은 적어도 대부분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공동체의 이익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동네에 하나 뿐인 우물을 차지하고 물을 비싼 값에 파는 일은 나쁜 일이다. 그렇게 하면 나는 돈을 벌지 모르나 전체 사회는 비싼 값에 물을 사야 하기 때문에 결국 우물로 흥청망청 사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이 부양해야 한다. 사회 전체로 보면 효율이 떨어지고 이것은 결국 공동체의 성장을 제한하게 된다. 어쩌면 그러다가 외적의 침입으로 망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우물도 빼앗기게 될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지 말라는 규칙이 생기고 그 규칙은 공동체가 생존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이득을 본다고 해도 인류공동체가 망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쁜 짓은 돈이 되기 때문에, 이 이익과 공동체의 생존은 서로 싸우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이 커지고, 시스템이 복잡해 질 수록 이 문제는 심해진다. 더 거대해진 자본은 더 강한 힘으로 공동체의 생명을 방어하는 규칙을 공격할 것이다. 그런데 시스템이 복잡해지면 구멍은 생기기 더 쉽다. 로켓을 만드는데 들여야 하는 노력과 소달구지를 만드는데 들여야 하는 노력은 큰 차이가 있다. 더 복잡하고 거대한 힘을 다뤄야 하는 시스템은 구멍 하나로 폭발하고 만다.

 

어쩌면 이것이 문명이나 사회의 성장한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즉 모든 사회나 문명은 그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지는 한계까지 빠르게 성장하고 그 이상은 성장할 수 없다. 왜냐면 그 한계를 넘는 순간 그 힘이 공동체의 성장 가능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 힘이 우연히 한계를 크게 넘으면 문명이나 사회는 파괴되고 성장은 커녕 몰락해 버릴 수 있다. 문제는 사회를 파괴하는 그 자멸적 힘을 사회가 어떻게 제어하는가 하는 것에 있다. 

 

힘의 제어에는 정보가 핵심적이다. 배고프다고 자기 발을 씹어 먹는 동물이 있다면 그 동물은 금방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안하는가? 그것은 그런 행동의 결과를 알 정도로 그 동물이 현명하기 때문이고, 자기 발을 자기가 물면 아프기 때문이다. 즉 행동의 결과를 분석하고 기억할 능력이 있고, 행동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빠르게 두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걸 사회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자기 파괴적인 행위가 사회에서는 꼭 이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는 복잡해서 어떤 행동의 결과가 어떤 건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의 '발'을 물어 뜯는 '입'은 그 고통을 곧바로 느끼지 못한다. 자기 살을 자기가 물어 뜯으면서도 만족해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비극중의 하나는 일제시기를 거치고 군사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교육이 망가진 데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윤리적인가 아닌가는 둘째치고 그 사람들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배신해서 잘먹고 잘산 사람들이 많다. 일제 시대 친일파의 후예라던가, 군사독재에 기여해서 부자가 되었다던가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니까 공동체를 지키는 규칙의 신성함이 교육을 통해서 잘 전달이 안된다. 그렇기는 커녕 나라를 살다가 보면 좀 팔아먹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만 반복된다. 사람은 이기적인 것이니 그냥 공부 많이 해서 너 혼자 부자되라고 한다. 

 

국가의 기득권세력이 하는 교육은 대개 이렇지 않다. 한국만 특이한 것이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그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이 일으킨 전쟁과 혁명으로 기득권이 된 것이기 때문에 역사의 숭고함을 외치고 이 나라를 지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전쟁이 나면 이 나라를 누가 가장 열심히 지킬까? 외국에서는 기득권 세력이다. 이게 자연스럽다. 왜냐면 기득권 세력은 누구보다 이게 나의 나라라는 교육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엉터리 이유로 군복무같은 것을 빼내고 국가를 배반하는 행위를 하면서 정치에서 성공할 수가 없다. 공인에게 애국심은 가장 먼저 따져야 하는 덕목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가 않다. 이명박때처럼 내각에 국방부 장관말고 나머지는 다 병역비리자인 경우도 생긴다. 윤석렬도 석연치 않게 병역을 마친 사람이 아닌가?

 

한국이 이런 나라인데도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전통문화때문이다. 한국은 교육을 굉장히 강조한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 교육에 힘을 아끼지 않는다. 게다가 한글처럼 익히기 쉬운 글자도 가지고 있어서 문맹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총칼들고 싸우는게 아니라 지식이 힘이 되는 세상에서 한국인들은 정치적 문제만 없으면 번성하기 쉽다. 국민들이 교육수준이 높아서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국에 살다가 온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의 슈퍼며 관공서며 은행의 일처리가 얼마나 느린지에 답답해 하고 한국은 빨리 빨리 문화가 있다는 둥 한다. 이 것들은 결국 한국인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비유해 말하자면 신경은 발달했는데 두뇌가 썩은 동물이 한국이다. 한국이 발달한 것은 대중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사회를 계속 성장시킬 지식인이 부족하다. 엘리트들을 보면 정말 외국이 뛰어나다. 부패하지도 않고 지적이다. 미국의 교수들이나 정치가들의 수준은 물론 일본의 정치가들이나 교수들의 수준도 한국이 따라가지 못하는데가 있다. 이 차이는 앞에서 말한 한국의 무너져 버린 사회적 정신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수준이 높고 양심적인데 성공하고 엘리트가 되면 성공과 돈의 유혹을 받고 한국 시스템에서 피를 뽑는 일에 종사하기 쉽다. 성공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한탕 해먹고 이 나라를 뜨자고 하는 것같다. 그래서 엘리트가 스스로 한국의 성장을 막는다.

 

예를 들어 지금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대금 대출도 이명박 정권때부터 크게 확대된 것이다. 일반 은행까지 참가해서 전세금 대출을 해주기 시작하자 금방 전세금은 으례 대출받는 돈이 되었다. 이건 이명박 정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가계 부채는 산더미처럼 커졌다. 수도권과밀과 지방 발전의 문제도 20세기 때부터 지적되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정부를 세종시로 이전하려고 노력하고 세종시까지 건설했으나 헌재의 말도 안되는 판결로 이것이 좌절된다. 20세기에는 지잡대라는 말이 없었다. 부산대가 서울의 왠만한 4년제 대학보다 높게 평가받았고 의대에만 목매달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은 수도권의 이익, 특히 부동산 가격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 지방이 소멸 수준이라고 하고, 출생율이 말도 안되게 떨어진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기득권이 어떻게 한국의 성장을 막아왔는지는 명확하다. 

 

만약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실패했으면 한국은 북한과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이 부자가 된 것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뤄낸 대중들 때문이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엘리트의 예외가 되었던 사람들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다. 즉 민주당에서 당선된 정치인들인데 이들은 사실 민주당에서도 별종에 가깝다. 노무현은 민주당 사람들에 의해서 탄핵도 되었던 사람이다. 그의 죽음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김대중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크게 평가받을 것이다. 20세기때만해도 한국이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때는 절대 오지 않을 것같았다. 현대차가 1대라도 미국같은 나라에서 팔린다면 그게 신기한 일이라고 여겼고 지금의 젊은 세대는 유럽이 대단해 보이지 않겠지만 20세기 때만해도 정말 그렇지 않았다. 한국인은 열등해 보였다. 그러다가 IMF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나서 동반성장을 말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렬이 얼마나 나라를 망쳤는가를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이 된 이 나라가 참 대단하다. 세계에 자랑하는 한국의 의료보험도 실질적으로는 김대중때 이후부터 확대되었고 그래서 암환자가 있으면 집안이 파탄하는 일이 없어졌다. 학생들 무상급식을 막겠다고 보수의 오세훈은 직을 걸고 투쟁까지 했다. 출산률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같다고 하는 지금의 현실, 그리고 그 오세훈이 다시 서울시장을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한심하다. 

 

지금 다시 이 나라는 기로에 서있다. 나쁜 일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군사독재를 시도하는 대통령이 돌아온 것이다. 심지어 그걸 처벌하는 일도 못한다. 나쁜 일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국가는 엄청난 손해를 본다. 국민연금같은 걸 털어서 주식시장을 떠받치고 외환 시장을 지탱한다. 아직도 무지한 몇몇 한국 사람들은 이 군사반란 문제로 한국이 겪는 손해를 보지 못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0%가 아닌 이유다. 나쁜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정말 소수인데 손해를 보는 다수중에도 아직도 군사반란에 지지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입이 발을 물어 뜯어 먹고 있으며 그때문에 피가 흐르고 굉장한 고통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가지 않는다. 신경이 끊어져 있고 뇌가 망가져 있다. 이 나라는 김건희의 범죄도 수사하지 못하고, 유지 운운하는 희대의 괴작으로 학위를 딴 여자의 논문 심사도 못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런 국민대나 숙명여대가 지식인 운운할 수 있을까? 정부가 주문하면 태양이 서쪽에서 뜰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과학자인가?

 

이런 이유로 한국의 발전에서는 인터넷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중의 연결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종편이 생길 때만 해도 비판이 있었지만 방송국 3사가 컨텐츠 생산을 독점하던 과거대로 였으면 한류도 없었을 것이다. 희망은 깨어있는 사람들의 연결밖에 없다. 연결된 민중의 행동으로 상식이 자리잡게 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엘리트를 썩게 하는 한국의 약점보다 더 빨리 이 나라를 재생시킬 수 없다면 한국은 북한처럼 될 것이다.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가 될 것이다. 검사나 의사집단이 보여주듯 하나 하나는 나쁘지 않은 사람들도 집단으로 보면 희망이 없다. 나쁜 일이 돈이 되서 그렇다. 이 나라의 기득권은 애초에 애국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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