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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지식이라는 상품

by 격암(강국진) 2025. 2. 17.

지식은 오늘날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그리고 지식을 데이터라고 부르던 기술이라고 부르던 정보라고 부르던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식은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상품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걸 복제하는데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mp3 음악파일은 수만번 수백만번 복사해도 재료비가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상품과 기존의 자동차나 콜라같은 상품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물론 이 차이는 진짜다. 하지만 이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는 않은데도 지식과 물질로 된 상품의 차이가 커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그 상품으로서의 지식에는 반드시 그걸 둘러싼 환경이나 플랫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단 이것에 주목하게 되면 우리는 물질로 된 상품에 있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먼저 상품으로서의 지식은 환경이나 플랫폼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앞에서 말했듯이 지식은 복제하기 쉽다. 특정한 mp3 음악파일을 내가 듣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음악을 못듣지는 않는다. 이건 내가 특정한 자동차나 집을 점유하면 다른 사람이 그걸 못쓰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음악에 돈을 내고, 프로그램에 돈을 낼까? 왜냐면 특정한 플랫폼 안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할 때 음악과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보상이 없다면 음악 파일을 만들거나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것이다. 다시 말해 상품으로서의 특정한 지식은 그것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것에 대한 보상이 있는 시스템 안에서만 생산된다. 

 

이러한 점은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잊혀진 것이기도 하다. 왜냐면 과거에는 지적 재산권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나 서양의 중세시대에 누군가가 남의 책을 손으로 필사해서 베껴 판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그 저자에게 나쁜 짓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지식은 보상이 없는데도 그냥 생겨나는 것같았고 일단 생겨난 지식은 모두의 것이 되는 것같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것은 과거에도 옳지 않았다. 과거에 지식을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었던 것은 거꾸로말해서 그런 유통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식은 지금처럼 인터넷과 컴퓨터를 통해 엄청난 속력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했다면 그 지식은 쉽게 퍼져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그걸 가장 먼저 생산한 사람은 보상을 받게 된다. 어느 정도 지식의 독점적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기 때문이다. 남들이 그걸 배우는데 시간이 걸린다. 발달한 시장과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누군가가 나의 지식을 배워가서 저 멀리서 이득을 본다고 해도 내가 그것에 대해 크게 뭔가를 주장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내가 그 멀리로 가서 그 지식을 가지고 이득을 얻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나의 지식이 나의 이름을 달고 퍼진다면 좋은 일이다. 

 

지식의 독점적 소유권이 주장되게 된 것은 뒤집어 말하면 지식이 아주 빨리 복제되고 퍼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을 둘러싼 환경을 보다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 안에 규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바로 지적 재산권같은 규칙을 도입해야 지식이 생산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식이란 어떤 환경, 생태계, 플랫폼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보다 분명해졌다. 

 

이것이 애플과 아이리버의 가장 큰 차이였다. 세계에서 mp3 플레이어를 가장 먼저 만든 것은 한국이었고 한때는 애플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던 것이 한국의 아이리버지만 애플은 음악에서도 나중에는 앱에서도 플랫폼 혹은 생태계를 만들었다. 음원이나 앱을 올리는 사람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낼 수 없었던 혹은 설사 생각을 해냈다고 해도 실천할 수 없었던 한국의 아이리버는 그래서 애플이 되지 못한 것이다.  

 

하나의 정보, 데이터, 지식, 기술은 그걸 둘러싼 플랫폼, 환경, 생태계가 있어야 의미를 가지게 된다. DNA가 인간이 아니다. DNA는 정보를 가졌지만 그것은 수정된 난자라는 형태로 엄마의 자궁이라는 환경과 결합해야 인간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다. 우주공간에 홀로 존재하는 DNA는 러시아어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는 러시아 책처럼 의미가 없다. 환원주의적인 철학에 중독된 우리는 어느새 환경을 자주 망각하고 당연시하며 어떤 것이 그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하지만 축구가 뭔지 모르는 우주인이 지구에 온다면 그 우주인이 우주의 자연법칙에 대해 아주 잘 안다고 해도 골이 뭔지 모를 것이고 월드컵의 우승을 결정하는 골에 미친듯이 열광하는 지구인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해리포터라는 책을 분자단위로 분석할 수 있는 그 우주인은 그래도 여전히 그 책이 가진 해리포터라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환경이나 플랫폼은 이제까지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거나 독점적으로 보였다. 그 환경이란게 우주 전체거나 인간 문명 전체거나 음원판매 시스템 전체였다. 따라서 여전히 지식이 그 환경과 가지는 관계는 약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점차로 바뀌어 왔고 AI가 발달하는 세상에서는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AI의 발달에는 여전히 시간이 걸릴테지만 AI가 충분히 발달한 사회에서는 사실상 모든 것이 정보 상품이다. 물질상품따위는 없다. 여기 한대의 자동차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재료를 가공하고 그걸 자동차로 만든다. 그 중간에 인간의 노동이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자동차의 가치를 재료값, 인건비 그리고 유통비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이 철이나 알루미늄을 만든 것도 아니고 인간만이 부품을 조립할 수 있는 것도, 유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AI로 대체된 세상에서 자동차는 마치 햇볕을 받고 스스로 들판에서 자라난 옥수수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지구라는 환경이 정화하면서 만들어 내는 공기나 마찬가지다. 누가 공기를 팔려고 하는가? AI는 인간이 만들어 낸 자연법칙같은 것이다. 즉 특정한 입력을 하면 특정한 출력을 해준다. 말을 하면 그림을 생성해 주듯이 말을 하면 자동차를 제조해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 에너지를 구하고, 재료를 구하며, 스스로 부품을 만들고 조립해서 최종적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AI를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이런 세상에서 자동차라는 상품의 가치는 모두 자동차라는 걸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에서 나온다. 나머지는 인간이 아니라 AI가 처리할 것이다. 물질상품과 지식상품간의 거리가 없는 셈이다. 이런 미래가 1,20년안에 오지는 않을테지만 물질상품이 지식상품화 되는 과정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행기나 자동차 엔진을 만들 때는 전에는 만들어서 실험했는데 이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그걸 대체한다. 약이 될 물질을 만드는 과정도 그렇다. 

 

그렇다고 할 때 다시 한번 우리는 이 글의 핵심 주제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의 지식은 그걸 둘러싼 환경과 플랫폼이 있을 때만이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플랫폼 혹은 환경의 창조가 지식의 창조다. 이제까지 지식이나 상품이 이런 특성을 가진다는 것이 무시된 이유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어렵고 느렸기 때문이다. 누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그걸로 하나의 공화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라고 천년전에 생각했다거나 현대인이 타임머쉰을 타고 천년전으로 간다고 해도 그때 지금같은 문명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동이 누적되어야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현대 기술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술은 물론 AI다. AI는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해 발생하는 복잡한 정보처리를 빠르고 자동적으로 처리해 줄 수 있다. 인건비가 없다면 사법시스템도 의료시스템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를 달성해야 지속가능한 이유는 매출이 어느 이상이 안되면 그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인건비가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AI는 더 빠르게 그리고 인건비 지출없이 이런 걸 해준다.  AI가 발달함에 따라 현실화할 수 있는 사업, 시스템, 플랫폼의 수가 급증한다. 카카오톡을 쓰려면 내 정보를 카카오톡 회사에 보내야 한다. 왜 우리 회사만을 위한 혹은 우리 가족만을 위한 메신저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걸 쓰지 않는가? 왜냐면 그런 걸 만들고 관리 유지하는 데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AI가 그걸 대신해 준다면 이제 그런게 가능하다. 공유경제 사업같은 것을 훨씬 작은 규모로 작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우리가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라지거나 그 특성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단백질 문제를 푸는 AI를 개발한 이유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구글 딥마인드의 CEO 허사비스는 자기가 그 문제를 푼게 아니다. 우리는 환경과 플랫폼에 주목해야 한다. 유튜브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라디오와 TV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의미의 환경과 지식 소비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다른 플랫폼들이 나타나서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그렇게 복잡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냐고? 그래서 AI로 무장하지 않은 인간은 앞으로의 시대에서 무력화되기 쉬운 것이다. 이미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는 노인들이 그 모습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AI 시대란 어떤 의미로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앱의 수가 무한대인 세상으로 세상에 어떤 앱이 있는지 그걸 어떻게 쓰는지 아무도 모르는 세상이다. AI로 무장한 인간은 그래도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다. AI가 적절한 방법을 찾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은 뭘할까? 플랫폼을 만들거나 생태계의 일부로 참여한다. 정보를 만든다. AI만으로 모든 것이 되지는 않는다. 어떤 AI가 존재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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